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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대원사 대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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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철순 1990년 12월 106호
한국불교의 해외진출은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로 잡을 수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활동 중인 삼우스님이나 전 세계를 통해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승산스님 및 구산스님의 제자들은 해외에서 한국불교의 포교활동이 두드러진다.
하와이 대원사를 창건한 대원스님도 해외포교에 있어서 단연 선구자이며 개척자이다.
스님께서는 고암스님을 은사로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스님께서 하와이와 인연이 맺어진 것은 1972년으로 거슬러 을라갔다. 그 당시 하와이 주립대학 정치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글렌 D.페이지 박사가 한국의 신홍사에 머물면서 저서를 집필하던 중, 그곳에서 수행하던 스님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불교가 하와이로 진출한다면 여러 측면에서 교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제의를 받아들여 페이지 박사의 주선으로 1975년 6월 하와이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스님께서는 한국불교의 해외진출을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입장도 없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고 평가한다.
ꡒ어떤 일이든 보는 시각에 따라 양면성을 갖게 마련이지만 종단적인 차원에서 해외진출 포교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한 적이 없는 가운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뜻있는 스님들이 해외에 진출하여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짧은 기간 안에 정착한 점으로 볼 때 한국불교의 해외진출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싶어요.ꡓ
요즈음은 스님들의 해외출입도 잦은 일이 되었지만 스님께서 하와이로 갈 때만 하더라도 여권 만드는 것에서부터 비자발급, 비행기표를 구입할 돈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하와이 대원사는 가람 자체로서의 규모도 웅장하지만 한국에서 직접 목재, 불상, 석조 등 불사에 필요한 재료들을 가져다 전형적인 한국사찰 형식을 따라 지은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스님께서 그렇게 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신다.
ꡒ사실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승속을 막론하고 외국에서 학위만 따오면 인정받고 안정이 보장되었던 시절이었어요. 처음에는 나 자신도 그런 분위기에 발맞추어 공부하여 학위나 받을 생각을 하였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하여 다른 나라 승려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생각을 바꾸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분이 바로 나를 초청해준 페이지 교수에요. 그분과 한 달 동안 같이 지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였어요. 그분은 학위를 받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승려로서의 근본 본분은 포교에 더 뜻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듣고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생각 끝에 포교 쪽에서 최선을 다 하겠다고 결심을 굳히고 불사를 시작했어요. 그곳에 있는 서양식 건물을 빌려서 포교당을 개설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힘이 들더라도 이왕에 시작하는 것인데 한국의 전통적인 사찰형식으로 사원을 건립하는 게 긴 안목으로 볼 때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ꡓ
나라 안에서 가람을 건립하기도 힘이 드는데 하물며 남의 땅에서 그것도 아무런 근거지도 없이 대가람을 창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스님께서는 초창기 어려웠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신다.
ꡒ경제적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었어요. 모든 것이 어려운 여건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때의 어려움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어요. 한편에서는 남의 땅에 그런
외형적인 큰 불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인 비판의 말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격려의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굽히지 않고 불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시작할 때의 신념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불사를 통해 경험하지 못했던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어요.ꡓ
하와이를 여행하는 한국의 많은 여행자들이 하와이 대원사에 들르면서 한국인의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ꡒ불교씬보다 오히려 비불교인들이 더 깊은 감명을 받아요. 때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어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느냐고 하면서 상상 밖이라는 표정을 짓곤 하지요.ꡓ
하와이 대원사는 부처님의 교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각적인 측면에서부터 남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포교의 큰 몫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스님께서는 이런 외형적인 것도 결국 실질적인 내용을 충실히 하려한데 그 뜻이 있다고 덧붙여 언급하셨다.

올해로 창건 15주년을 맞는 하와이 대원사는 세계의 저명한 학자, 평화운동가 및 불교전문가를 초청한 ꡐ평화세미나ꡑ를 주관하고 대원사에서 두 차례(l차, 3차)나 회의를 개최한바 있다. 이런 인연으로 스님께서는 그동안 네 번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 이제 동 ․서의 냉전시대도 끝이 나고 세계의 이목들이 남북통일이 곧 세계평화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을 때인지라 스님의 북한 방문은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ꡒ하와이 대학의 학자들이 의외로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요. 그들의 생각은 불교가 인류평화를 구현하는데 가장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미래종교로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믿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남북통일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모든 정보와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소련․중공 동공산권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학술모임이었어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사정 때문에 북한측의 참여가 어려웠지만 그로 인해 북한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요.ꡓ
스님께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북한에는 순수한 의미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사실을 짐작 못한 것은 아니지만 웬지 아쉬운 생각이 들어 그곳의 불교 실정에 대하여 여쭈어 보았다.
ꡒ기독교나 천주교 및 불교가 형식적으로 있긴 해요. 그 중에서도 서양인들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기독교가 가장 활발한 듯이 보였어요. 전통적인 종교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고 종교의 미명 아래 사상교육의 선전장으로 이용되고 있었어요. 금강산, 묘향산 등 중요한 사찰이 산재한 곳에 가보았는데 6 ․25 때 소실된 것도 많고, 종교활동이 없으니까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어요.
불교사원이라기보다 하나의 건물로서 보존하고 있었어요. 요즈음은 외부인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재적 차원에서 복원도 하고 보수활동을 벌이는 것을 보았어요. 지난 번에 갔을 때 대승산 광덕사는 콘크리트로 복원작업이 한창이었어요.ꡓ
북한 사회는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ꡐ김일성 수령님ꡑ으로 시작하여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먹고 잠자고 배설하는 것까지도.
최근에는 ꡐ통일ꡑ이라는 주제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체제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총리회담을 기점으로 체육 및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남북 불교교류도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스님께서는 지적하신다.
ꡒ얼른 생각하기에는 그쪽에도 사원이 있으니까 다른 분야보다 종교적인 교류가 쉬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축구나 영화, 음악 둥의 분야는 북한에도 직접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요. 그러나 종교활동은 지난 45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 성직자들도 없는 상태여서 종교적인 대화를 스스로 피하려고 해요. 불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불교를 모르고 있어요. 제 생각으론 다른 민간인 차원에서 교류가 있은 다음에 종교적 교류가 가능할 것이며, 그 중에서도 불교교류는 가장 늦을 것으로 생각해요.ꡓ
비록 북한 사회에서 불교활동이 미진하다고 해도 해외에 나가 있는 스님들께서 남북 불교교류에 있어서 교량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오히려 밖에서 한국불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오늘의 한국불교를 보는 시각이 자못 날카롭다.
ꡒ한국불교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인 배경에서 볼 때 다른 어느 것보다 수승한 위치에 있으며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불교가 국가발전이나 민족을 위해 그 역할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에요. 요즈음 한국불교는 그런 점에 대한 반성이나 구체적인 방법제시도 없이 비판만 무성한 것 같아요. 오늘의 한국불교가 제 구실을 다 하면서 사회적으로 기여하려면, 제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삼보사찰 중 어느 한 곳에서라도 관광을 개방하지 말고 문을 굳게 닫은 채 철저히 수행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바로 한국불교를 살리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ꡓ
많은 사람들이 이제 절집도 예전과는 달리 많이 풍요해졌음을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을 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가 오히려 수행의 가풍을 흐리게 할 위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지배를 받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보다 더 나은 향상을 위해서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은 더 없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된다.
끌으로 스님께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을 여쭈었다.
ꡒ우리 불교는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갖고 있으면서도 보다 합리적인 포교방법이 개발되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발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더욱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겠어요. 그럴려면 첫째로 지도자의 교육이 선결과제인데 국내에 계시는 스님 중에서 공부하기를 원하는 분이 있으면 힘 닿는대로 적극 후원하겠어요. 이제는 스님들도 견문을 넓혀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ꡓ
이제 하와이 대원사는 대원스님의 숨은 노고로 인하여 한국불교를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명소가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이곳 하와이 대원사에서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대담에 응해주신 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글/이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