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는 자가 낭선이었다.
그는 어느날 서울에서 나귀를 타고 가면서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지었다.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過橋分野色
移石動雲根
새는 못가 나무에서 잠을 자고,
사문은 달 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
다리를 지나감에 들 빛은 나뉘어 보이고,
돌을 옮기니 구름의 뿌리가 움직인다.
는 내용이었다. 그는 처음 이 시를 쓰면서 둘째 줄의 敲와 推를 어떤 자로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해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가도는 앞에서 다가오던 한유의 수레와 부딪쳤다. 한유의 당시 벼슬은 경조윤이었다. 이에 한유는 가도의 무례함을 탓하며 꾸짖었는데 가도는 그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한유의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한유는 그곳에 敲가 좋겠다고 하면서 서로 말머리를 나란히 해 길을 가면서 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한편의 시를 두고 성호는 그 뜻이 매우 어렵고 깊지만 숭상할 바가 못 된다고 하여 은근히 폄하하고 있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雲根이라는 제목의 본문 구절을 참고해 보자.
“새가 잔다. 僧이 두드린다는 표현은 밤이 깊어 사람이 잠자리에 들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요, 다리를 지나간다. 돌을 옮긴다는 구절 또한 역시 산을 오르고 물가에 다다랐다는 뜻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오직 물에만 다리가 있는 법이요, 물이란 들빛을 둘로 갈라놓는 것이기 때문에 ‘들빛이 나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돌을 옮긴다는 것은, 사람의 行坐가 차츰차츰 멀어져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자면, 오직 산에만 돌이 있고 돌은 구름의 뿌리가 되어 굴러서 높고 험준한 곳에 이르러가기 때문에, 운근이 움직인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따위는 호정교나 장타유 같은 무리들이 보여주는 작용의 유이니, 족히 숭상할 것이 못된다. 그런데 한퇴지가 이를 취한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도무지 수긍하기 어려운 성호의 폄하다.
그가 자신의 평 속에서 비유한 호정교와 장타유의 무리란 다름 아닌 저속한 시의 대명사다. 남부신서에 의하면 호생은 만두 만드는 것으로 업을 삼으며 白蘋州 가에서 살았다. 그는 매양 차를 마시면서 그 곁의 고분에 자기가 마시는 차를 한 잔씩 올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하루는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 일을 고마워하면서 하는 말이 그 고마움에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나의 성은 柳인데, 평생에 시를 잘하고 차 마시기를 즐겼었다. 그대가 차를 나눠 준 은혜에 감사하고 있으나 갚을 길이 없으므로 그대에게 시를 가르쳐주고자 한다.”고 하였다. 호정교는 자신의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들어 그 호의를 사양하였다. 유는 억지로 권하면서 “다만 그대는 내 뜻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하여 호정교는 마침내 시를 잘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호생의 시체를 두고 뒷사람들이 胡釘鉸體라 일컫게 된 배경이었다. 또 장타유는 당나라 시대에 활동한 사람으로 저속한 시의 대명사로 불리어졌다. 그 근거로 楊升庵集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예로 든다.
노란 개는 몸 위가 하얗게 되고, 하얀 개는 몸 위가 부어올랐다.
(黃狗身上白 白狗身上腫)
성호가 가도의 앞 문장을 평하면서 그 수준을 호정교나 장타유 같은 무리들에 견줌은 다소 지나치다. 어떤 편견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비평일 것이다.
당나라의 유학자 가운데 歐陽公이 주목했던 인물로 李翶가 있다. 그는 당대의 황보식과 더불어 한공에게도 지극한 평가를 받아 자신의 묘지를 이고에게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공의 묘지는 황보식이 짓고, 이고는 행장을 지었을 뿐이다.
그가 지은 저술 가운데 복성서 3편이 있다. 그 내용은 핵심이 사람의 성은 본래 착하지만 그 착한 성품이 인간의 정에 가려져 본래의 착함을 잃게 된다는데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정을 이기면 본래의 성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은 정을 없애고 성(性)을 회복해야 하니, 정(情)이란 것은 성의 사악함이기 때문으로 보았다. 다만 사람이 그 사(邪)가 됨을 알지만, 사람의 사악함이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사특한 생각이 스스로 사라진다고 하였다. 삶이 있으면 명(命)이 있고, 명(命)이 있으면 성(性)이 있고, 성(性)이 있으면 정(情)이 있으니, 정(情)이란 것은 하늘의 삿된 기운이요, 사람의 어지러운 행(行)이니, 삿된 뜻을 버리고, 어지러움을 멀리하고 정을 억제하면 원명(元命)이 바로 선다고 하였다.
뒷날의 주자는 그의 학문적인 근거가 불교에서 비롯됐다고 하여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율곡 이이와 장횡거도 마찬가지였다. 유교적인 분위기가 압도하는 사회에서 그들의 인생 여정에서 한때나마 불교에 몸담았었다는 사실은 종종 사람됨을 이야기하는 순간의 흠으로 이야기될 때가 많았다.
이로써 보면 이념은 종종 인간의 이성을 왜곡시킬 때가 많다.
남북으로 갈려 대치하는 동안에 보여준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근대사도 그 점에 있어서는 하나의 좋은 본보기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신념 체계를 우리 안에 바로 세울 때 항상 떠올려야 하는 명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정신이다.
왜 우리가 우리의 신념 체계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이 외려 바람직한 인간 정신으로 추구하는 부처와 조사를 우리의 마음에서 없애야 하는 것일까? 해답은 산중의 선지식이나 출가 수행자가 아닌 평범한 상식의 소유자인 우리 자신들이 더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므로 대답을 대신해 관점은 다소 달리하지만 잡아함경의 경구 한 구절을 거기에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본다는 것은 덧없는 것이다. 본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괴로움과 동요됨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본다는 것은 덧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