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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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학암
2009년 09월 331호
가야산의 푸르름을 바라보다가 문득 옛날에 어느 선사가 시절인연이 다하여 열반에 드실 때에 있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선사께서는 노쇠하여 법구인 육신은 기력을 다하여 자리에 누워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선사의 상좌(제
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멀리서부터 찾아와 방안 가득히 모여 스승의 마지막 열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에 제자 중에 한 스님이 말하길…
“스승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제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한말씀만 일러 주십시오”라고 불쑥 말을 뱉었다. 그러
자 순식간에 선사의 임종좌가 법좌로 바뀌는 듯 하더니 방안은 분위기가 꽁꽁 얼어 붙었다.
그때에 기력을 다하신 스승이 누워 눈을 지그시 뜨고 그 질문을 던진 제자를 바라보며 한참을 있다가 겨우 입
을 열면서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 착한 일은 하지 말아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제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또 다시 질문을 던지길
“그러면 스승님 이제부터는 나쁜 일을 할까요?”라고 물으니 기력을 다해 임종을 앞둔 스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격노하여 일갈하시길…
“네 이놈아! 착한 일도 하지 마라는데 하물며 나쁜 일을 하겠다는 것이냐 이놈아!” 하시며 곧장 열반에 드셨
다고 한다.
참으로 전·후제가 끊어내는 명쾌한 일갈이라 할 수 있다.
옛 선승들께서는 비단결같이 매끄럽고 아름답고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선승의 뱉는 말씀 한마디는 우리들이 평
생 동안 쌓아온 사고를 일순간에 백지화로 만들고 은산철벽이란 커다란 벽 앞으로 몰아붙인다.
위의 이야기 속 제자는 지금 은산철벽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은산철벽 앞에 서 있고 싶다.
누군가 나를 은산철벽 앞으로 몰아붙여 주길 매일 매일 원을 세우면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