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가수행자出家修行者와 재가불자在家佛子는 수행修行과 외호外護, 전법傳法과 공양供養으로 서로 소통하는 상호복전相互福田의 관계로 출가수행자가 없는 재가불자나 재가불자가 없는 출가수행자는 존재와 의의가 불가不可하다는 중요한 위상位相임을 공인共認하는 절대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초기의 출가수행자들은 무소유無所有와 무집착無執着의 지침에 충실한 두타행頭陀行으로 생활하였으며, 동시에 재가의 신자는 출가수행자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수행자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것으로 상호간의 소통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음식을 제공하는 것에서 점차적으로 의복과 탕약과 정사 등의 사사공양四事供養을 시여施與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재가불자에게는 출가수행자가 복전의 위치에 있었으며, 출가수행자에게는 재가불자가 깨우침을 통해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관계는 어느 한 쪽이 베풀기만 하거나 혹은 그 상대방은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양 쪽이 모두 베푸는 동시에 받기도 하는 시혜施惠와 수혜受惠의 주객主客을 겸비兼備하는 이상적理想的인 관계를 유지하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십주비파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도 보시布施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로 구분된다고 설명하면서‘재가의 보살은 마땅히 재시를 행하여야 하고, 출가인은 마땅히 법시를 행하여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재가의 법시는 출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재가의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갖고 있으며, 출가한 사람은 모든 경전을 독송하고 불법佛法에 통달하여 사람들을 위해서 해설하여 모든 사람들을 무외無畏에 머물게 하는데, 이것은 재가의 사람들이 능히 미칠 바가 아닌 것이다’라고 하여, 재시는 재가자에서 부여된 소임이고 법시는 출가인의 행법行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출가교단出家敎團인 승가僧伽에게 보시를 하는 것은 5계戒를 지키는 것과 함께 재가불자만의 독자적인 행법이다.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출가자로서 미칠 바가 아니며, 정법正法을 해설하여 무외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재가자로서 능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출가교단은 재가불자의 경제적인 지원을 기초로 존속하기 때문에 만약 재가불자의 보시가 중단된다면 출가교단도 동시에 무너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재가불자의 보시는 불교교단을 존속시키는 불가결의 요소인 것이다.
출가수행자는 재가불자에게 법시를 실천하는 보살이며, 재가불자는 출가자에게 재시의 보살행을 닦는 관계이다. 정법을 알지 못하고 미혹迷惑 속에 헤매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없을 것이므로 출가수행자는 재가불자에게 법으로 무외시無畏施를 베푸는 것이며, 또한 의식주의 기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행 이전에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두려움에 놓인 것이므로 재가자 역시 재물로 무외시를 베푸는 것이 된다.
법시와 재시와 무외시의 다음 단계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설명한다. 무주상보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아상我相과 인상人相과 중생상衆生相과 수자상壽者相 등의 사상四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너라는 주관과 객관은 물론 나와 너를 확대한 우리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공간적인 설명 이외에 나아가서 숫자의 시간적인 개념까지 그 어느 것에도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4상相의 출발점은 바로 아상, 나에 대한 집착이다. 그러므로 무주상보시란 내가 잘났다고 뽐내는 거만함이나 자만심이 없이 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심下心을 가리키며,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공경한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보상報償이나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가불자로서 출가수행자에게 재시로 공양할 때에 법을 듣기 위한 대가로 보시하는 것이 아니며, 출가수행자 역시 공양을 받기 위한 방편方便에서 재가의 불자에게 법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혜와 수혜의 소통에서 수혜를 예상하고 계산하지 않은 시혜가 먼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시이든 재시이든 무외시이든 만약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면서 자신을 높이는 아만我慢과 공고심貢高心으로 하거나 혹은 보상이나 응분應分의 대가를 구한다면 보살의 행법이 아니며 나아가 불과佛果의 증득證得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베푸는 보시의 소통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하심과 상대를 공경하는 존중과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자발적自發的이고 능동적能動的인 참여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자 소통을 완성하는 기틀이 되는 동시에, 나아가 사회 각 계층 간의 소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신분, 계급과 권위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본보기로 수순隨順해야만 하는 선행 조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