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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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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호정 2009년 09월 331호
인연 예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예술가들은 누구나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저마다 고통의 근원이 있다 하던데, 당신에게 그것은 무엇인가요?” 당시에 나는 “내겐 숨쉬는 것조차 큰 고통이에요.” 라고 농담조로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그 질문은 한동안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렇다. 지금 내게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 고통의 원동력은 바로 고독이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유지시키고 있는 또 하나의 감정은 아마도 그리움일 것이다. 유독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나 친척, 지인들이 모두 외국에 살고 있어서일까. 내게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공연이 끝난 뒤 떠나는 여행이요, 희망이 있다면 여행을 통해 지인들과 만나는 일이다. 그러한 만남은 작품으로 인해 경직되고 지쳐있는 내 몸에 새로운 피가 수혈된 듯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연극을 시작한 90년대부터 나름 꽤 여러 곳을 여행하며 지냈다. 일이 없을 때의 불안과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 지금은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각별한 두 친구가 있다. 현옥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선용은 대학에서 만난 친구다. 이들 모두 내게는 친구 그 이상이다. 하필 둘 다 지금은 외국에 살고 있다. 우연히도 우리 셋 다 같은 대학을 나왔는데, 정작 현옥과 선용은 서로 안면은 있지만 그저 친구의 친구로 서로에게 인식될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친구들의 아버지 모두 우리의 모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셨는데, 현옥의 아버님은 인도철학과 교수님이셨고, 선용의 아버님은 불교철학과 교수님이셨다.
선용은 그나마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일년에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었지만 뉴욕에 사는 현옥은 가족 모두 이민을 가 10년 전 이후로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작년 가을, 작품을 마치고 상하이에 살고 있는 선용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리고 올 초 여름, 공연이 끝나자마자 절친한 또 한명의 친구 현옥을 만나러 뉴욕으로 날아갔다. 10년 만의 대면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함께 할 시간이 어떨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세월 속에서 조금은 변한 외모에 잠시 어색해 할 뿐 역시나 매일 함께한 가족처럼 정겹다. 현옥과 나는 만나면 항상 수다로 밤을 지새우곤 했는데 그 습관은 여전했다. 너그러운 가족들 덕분에 우린 거의 매일 예전처럼 밤이 새도록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의사가 되어있는 친구는 내게 보약을 먹이며 뜸을 떠주며 공연으로 지쳐있던 내 몸과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렇듯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깊은 애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관계는 어쩌면 까다로운 내 성격을 잘 받아주는 속 깊은 친구의 타고난 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옥은 어릴 때부터 수재였다. 또래들과는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 남달라 모두에게 월등하면서 동시에 다가서기 어려웠던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현옥은 항상 모두에게 마음을 열어두었지만 어수룩하고 생각 없이 용기 있는 나만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현옥의 집안 분위기도 여느 일반 가정과 사뭇 달랐다. 어린 자녀들에게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존중해주는 그녀의 가정은 내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현옥의 집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고미술을 공부하던 현옥의 언니는 “넌 무대에 서야해. 연극배우가 되거라.”라며 종종 말하곤 했다. 나에게 늘 멘토와도 같은 존재였던 언니의 그 말에 마법에 걸린 듯 난 지금 연극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현옥의 아버지는 내게 연극을 가르쳐 주시고 삶의 지표를 세워주신 대학 은사님의 스승님이시기도 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님의 스승님이 현옥의 아버지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세월 앞에서 많이 연로하신 아버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님이 예전에 젊으셨을 때 내 친구 선용의 할아버지(선용의 할아버지는 스님이셨다) 밑에서 스님이 되려고 수행을 하셨다는 거다. 아버님 말씀에 따르면 끼가 많아서 출가를 포기하셨단다. 불현듯 인연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이 시점에서 나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내가 연극을 하게끔 된 건 내 친구 현옥의 언니,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스승이 바로 현옥의 아버지, 현옥의 아버지의 스승이 또 다른 내 친구 선용의 할아버지.
이렇듯 내 주변의 인연이 서로 얽혀져있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하고 놀라웠다.
내일이면 떠나는 내게 아버님이 붓글씨 한점을 선물해 주셨다.

애락예도(愛樂藝道), 예술의 길을 사랑하고 즐겨라.

“예술(藝術)이라 쓰지 않았어. 술(術)은 곧 기술이란 말이기도 하니까. 난 도(道)를 쓸게. 즉, 삶이지. 네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사랑하고 동시에 즐기길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내 작업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오던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었다. 선물 받은 붓글씨 한점을 구겨지지 않게 달력에 곱게 싸서 가방에 넣고 현옥과 나는 작별인사를 했다. 서로 알아 온지 이십여 년이 훨씬 지났건만, 나는 그날 처음 현옥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나 역시 한동안 여행의 후유증으로 힘들었다. 마치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뒤 다시 타국으로 돌아온 유학생의 심정 같았다.
만남이란 곧 인연인데, 아마도 겹겹이 쌓인 전생의 무수한 만남의 결과로 이생의 좋고 나쁨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듯 하다. 적어도 나와 내 절친한 두 친구, 또 그녀의 가족들과의 인연은 분명 다음 생에서 또 다시 좋은 관계로 만날 거라 확신한다. 비록 당분간 볼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위안을 삼는다.
오늘 나는 선용에게 편지 한통을 띄우려한다.
“선용아, 너 알고 있니? 너의 할아버지가 현옥이 아버지의 스승이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