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우리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장나영 2009년 09월 331호
커다란 목탑이 불타올랐다. 캄캄한 밤에 화염이 치솟아 주위를 벌겋게 밝히고 연기를 뿜으며 탑은 점점 숯불 기둥으로 변해가고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 할 바 모르며 그저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어떡하지……아, 이젠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충격적인 광경에 안타깝게 마음을 쓰라리다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눈을 떴다.
그 무렵 나는 주변 상황이 힘들어서 기도하며 살아갔다. 예사롭지 않은 꿈을 꾸고 나는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의 시절에 우리는 우정을 쌓고 사랑을 키우며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좌우할 인연을 만들어 간다. 나에게도 친구들은 참 소중하였다. 스무 살 초반 시절에 동창회 모임으로 만난 친구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 처지가 비슷하던 친구들이 서른 즈음이 되자 열정이 가라앉고 살아온 만큼 각자의 직업과 삶이 달라져서 예전과 달라진 너와 내가 되었다. 그 모임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두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처럼 맑은 눈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였다. 친구의 소박한 자취방에서 감흥이 일어나면 우리는 김소월 시인의 시집을 꺼내 “엄마야~누나야~”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한용운 스님의 시집을 꺼내 님에 대한 시에 젖어들며 우정을 쌓았다. 순수하던 그녀는 세상에 나가서는 잘 살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상처를 받더니 스스로 자신을 험난한 직업 속으로 몰아가며 술과 담배로 얼룩져 갔고 불안정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곁에서 마음을 세워주려는 나의 마음을 알고 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라고 말했었는데 차츰 시기하는 말과 비뚤어진 행동을 하였다. 그래도 나는 친구가 미안하다고 하면 모든 과정을 알기에 이해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비관하면서 내가 자신을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기에 자신과 함께 죽자고 하며 나에게 거친 행동을 하였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예전의 관계로 되돌리려고 하였지만 나의 충격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세월 속에 많이 변해버린 그녀를 더 이상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고 거리가 생겨버렸다.
나에게는 친구로 만나 사랑의 마음으로 발전된 이성친구도 있었다. 친구는 학창시절을 지나 사회에 나가자 성공하려는 마음이 커져 갔다. 서로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마음에 생채기를 내어 어느 시기부터는 애써 찾지 않으며 무관심한 척 지냈다. IMF 힘든 시기가 다가와 우리집의 상황도 어려워지고 아버지께서 의지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그 시기에 소식이 없던 남자친구가 전화가 와서 사업이 힘들고 마음이 지쳤다며 같이 있어 달라고 한다.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홀로 계신 아버지가 염려되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승승장구하다가 빈 몸이 되어 막막한 심정으로 나를 찾았는데 서운한 마음에 원치 않는 말을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내 마음속에는 늘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염려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는데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신 아버지 곁에 있어야만 하는 나의 상황을 그는 알지 못했다.
집안의 어려운 일로 힘든 시기를 극복해오던 어느 날 한 동창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친구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 하기에 찜찜한 마음이 들어 한 친구에게 그의 소식을 물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나는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렸고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가 없는 먹먹한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늦은 밤 전화가 왔다.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은 지 삼년 만이다. “미안하다……이 말만 꼭 하고 싶었다. 결혼을 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발을 뻗고 자지 못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도피한 거였다.” 나의 눈에서 안타깝고 애절한 눈물이 떨어졌다.
그 후 나는 차츰 맺힌 마음도 사라졌고 친구들과 소원해지다보니 잊게 되었다. 언젠가 친구들끼리 한 말대로 우리들은 전생에 얽힌 인연인 것 같다. 마음과는 달리 만나면 자꾸 어긋났고 서로를 힘들게 하다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다음 생에는 우리 만나지 마요’하는 노래가사처럼 다음 생에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연도 있다. 설사 우리가 이생에서 좋은 사이였다고 하여도 많은 생을 거듭하다가 얽힌 인연 속에서 헤어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애별리고(愛別離苦), 고통 중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큼 더한 슬픔은 없다고 했다. 누구든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서든 죽어서든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고 그 사람과의 이별은 늘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삶이 늘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고 인연에 대해 너무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지만 사람과의 이별의 순간만은 마음이 아프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젊은 날 친구와 함께 한용운 스님의 시를 읊조렸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마음에 씨앗 하나 남겨두면 좋았을텐데. 나의 소중했던 청춘의 인연들은 더 이상 사랑할 것도 미워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이 불타버린 재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
석가모니부처님은 사람들의 괴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이 언제나 항상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것이란 것을 자비심으로 일깨워 주셨다. 그것을 앎으로서 우리는 진실로 고통을 줄이고 평화로울 수 있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나간 인연의 아픔은 잊고 그들이 잘 살기를 바라며, 지금은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간다.
‘천겁만겁 내려오던 원수거나 친한 이나 이 세상 권속들도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얽히었던 애정 끊고 삼계고해 벗어나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모두 성불하사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