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수없이 부르던 이름인데 앞으로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되었구나.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이름이 되었구나. 그래도 생각이 나면 대답이 없는 그 이름을 불러 볼 것이다. 모든 것이 업 때문이라면 나는 전생에 그대에게 무슨 서운한 일을 했기에 이렇게 나를 가슴 아프게 하고 간단 말이냐? 많은 수좌들이 그대를 못 잊어 여기 49재에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참으로 보고 싶다.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효자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일찍 가버리면 스승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차라리 공부를 못해도 오래 사는 것이 더 효자가 아닐까? 그대의 부모형제와 일가친척의 눈가에 흘러내리는 저 눈물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저 흐느낌을 어이해야 하는가? 도반들의 서운한 마음과 슬픔을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가 48살 젊은 나이로 저 세상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전신에 힘이 쫙 빠지고 자리에서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멀쩡하던 사람이 어찌된 일인지 아들이 죽은 지 3일 만에 검은 머리가 완전히 백발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아들의 죽음이 더 마음 아프다는 뜻이 아닐까? 내 마음이 지금 그렇다네.
전에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도 독자였는데 늦도록 아들을 두지 못하여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여간 애처롭지 않았다. 그런데 늘그막에 아들이 태어났다. 얼마나 춤을 추고 좋아했을까! 그 아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고 예뻤을까! 땅에 내려놓지도 않고 길렀다. 그런데 아들은 성질이 급하여 무엇을 달라고 하면 빨리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바로 혼절을 하였다. 부부는 아이가 5살이었던 어느 화창한 봄날에 들로 소풍을 나갔다. 아들은 허공을 가리키면서 저것 줘! 하는데 무엇을 달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 뭐를 달라고? 하는데 벌써 아이는 숨이 넘어갔다. 그리고는 깨어나지를 못했다. 아버지는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술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약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그 무엇으로도 도저히 그 아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님이 되었다. 어느 날 그 스님은 이런 말을 했지. 그 아이가 죽은 것은 아마도 나를 중을 만들려고 그런 것 같다고.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대가 이렇게 빨리 간 것은 아마도 나에게 수행을 잘 하라고 한 것이 아닐까?
자네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올곧은 수좌였지. 아무리 보아도 그대는 인간의 오욕락의 그림자는 조금도 추호도 없었다. 오욕락이 얼마나 질기고 단단한 것인데 그대는 이미 그 단계는 넘어서 있었다. 젊고도 젊은 새파란 나이에 중이 되어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선원에서 살았고 토굴에서 정진하였다. 진실로 티 한 점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수좌였다. 선가에서 자네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요 진정한 수행자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아 얘기하였다. 그대로 인해서 나도 스님들에게 대접을 받았었다. 그대로 인해 나는 참으로 기뻤다.
그대의 제사를 모시겠다고 제방의 선원에서 요청이 쇄도하여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정중하게 진정으로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재는 수도암에서 2재는 대승사 3재는 백담사 4재는 양평 상원사 5재는 석종사 6재는 각화사에서 지내고 막재는 수도암에서 지내게 되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포교를 한답시고 군대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또 경전만 읽었다. 그래서 화두 수행은 못했다. 하지만 화두 참법만 수행이고 간경을 소용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두참법은 실상반야지만 간경은 문자반야로서 나는 문자를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수행 중에 참선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하니 수행을 잘하는 그대를 통해서 나도 도를 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대를 볼 때마다 나는 신찬(神贊)스님을 생각하였다.
중국 고령사의 신찬 스님은 스승이며 강사인 계현(戒賢)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경전을 섭렵한 신찬은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의 큰일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백장(百丈)스님 문하로 가서 수년간 불철주야 피눈물 나는 정진을 하여 견성오도 하였다. 신찬은 자신의 스승이며 경전을 가르쳐주고 지극히 아껴준 스승 계현 스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고령사로 돌아왔다.
신찬은 목욕탕에서 스승의 등을 밀면서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스승은 괴이하게 여겨 뒤를 돌아봤다. “부처가 영험은 없어도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 하였다.
계현 스님은 나이 80이 가깝도록 평생을 한결같이 경전만을 보아왔는지라. 어는 따뜻한 봄날. 이날도 창가 책상 앞에서 종이가 뚫어지도록 경전만을 보고 있었다. 꿀벌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 왔는데 반쯤 열린 곳은 놔두고 꼭 닫혀 있는 창을 향해서 나가려고 탕탕 부딪치기만 하였다. 이 모양을 본 신찬이 스승에게 들으라는 듯이 시(詩) 한 수를 지어 읊었다.
“활짝 열어 놓은 문은 마다하고, 굳게 닫힌 창문만을 두드리는 구나. 백 년 동안 경전만을 들여다본들, 어느 때에 깨치기를 기약하리오.”
이 시를 들은 스승은 신찬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네가 비록 나의 상좌이지만 공부로는 나의 스승이니 나에게 불법을 설하여다오.” 하고서 북을 쳐서 대중을 모았다.
법상에 오른 신찬은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빛나 육근과 육진을 벗어나니,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 문자에 걸림이 없도다. 마음은 물듦이 없이 스스로 원만하게 이루어졌으니, 단지 망령된 인연만 떠나라 이것이 부처니라.
늘그막에 무상의 법문을 듣고 스승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다가 제자로 인하여 허공의 밝은 달을 바로 본 것이다.
나도 자네로 인하여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제 그 기회가 물 건너가 버렸구나!
자네와 가장 가까웠던 도반 수연스님의 말에 의하며 자네는 상기병에 걸려서 공부를 할 수 없으니 몸을 바꾸어서 다시 이 세상에 와서 공부를 하여 도를 이루겠다고 하였다지. 이제 그 생각이 옳고 그름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 그렇게 하시게. 그것이 자네의 바람이었으니 꼭 다시 이 세상에 와서 다시 중이 되어 건강한 몸으로 도를 통하시게.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에게 생명의 봄소식을 전해주시게.
자네 같이 훌륭한 수좌가 내 상좌가 되어주었다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자랑스러웠네. 그러니 나에 대해서 미안한 생각일랑 조금도 갖지 말게.
가만히 생각하니 나는 스승이라고 이름만 걸어놓았지 자네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더군. 그것이 너무도 미안하이. 해준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것이 미안하이. 스승 노릇을 하나도 못해서 미안하네. 몸을 바꾸는 저승의 길이 편안하길 바라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