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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존자 진영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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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성보 - 홍성희 2009년 09월 331호
벽암존자진영 한국 정신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불교의 맥을 이어온 고승 진영은 덕 높은 스님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 조사신앙祖師信仰의 예배 대상이 되는
불화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사상적 배경 아래 조성된 고승 진영의 대부분이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가부좌한 평자상한 얼굴에 무릎 위로 내린 오른손의 검지를 들어 변화를 주었으며, 왼손은 의자 팔걸이에 기댄 채 왼쪽 어깨에 걸친 불자拂子를 잡고 있다.
내의 깃과 소맷자락 및 흰색 동정과 대조를 이루어 깔끔한 느낌을 주는, 다갈색 섞인 녹색 장삼을 전반에 걸좌상으로 형식이 고정되어 있고 양식의 변천도 다양한 편
은 아니다.
고승 진영은 초상화가 갖는 보편적인 성격이 상황보다는 인물 속에 내재한 진실을 강조하는 내면 심성 표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17C 이래 불교 그리고 승려들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애모와 무한한 긍정에서 출발한 고승 진영에서는 주인공의 정신세계 또는 내면세계를 얼마나 잘 표현 했는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것이다.
해인사에 있는 많은 진영 중에 국일암에 있는“사국일도대선사 벽암존자 지진상賜國一都大禪師碧巖尊者之眞相”은 18세기 후반 고승 진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의자 등받이의 홍색 바탕에는 구름무늬와 함께 고리 형태의 동그라미무늬와 마름모무늬를 장식하였으며, 테두리에는 화려한 꽃무늬를 둘러 경직되고 무거운 분위기에 변화를 주었다.
의자는 오른쪽으로 향해 있는데 사선을 이루며 앉아 있는 인물의 자세와 달리, 앞뒤 다리 길이의 차이를 두지 않고 원근법에 다소 어긋나게 모두 똑같은 수평선상에 둠으로써 표현의 미숙함이 보인다. 이와 같이 인물 및 대상물의 묘사가 경직되고 사실성이 떨어지는 점이 18세기 후반 고승 진영의 양식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진영은 화면 중앙에 앉아있는 모습의 벽암존자를 단독 배치한 진영으로 대각선 구도를 보여 정적인 화면에 운동감을 부여하였다. 근엄하면서도 쳐 녹색 돋을 선을 사용하여 옷 주름과 문양을 표현하였으며, 왼쪽 어깨에 매듭을 지어 걸친 선홍색 가사에는 금색 문양이 화려하다. 그림의 배경은 의좌상擬座像 진영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화문석 바닥과 벽을 구분하여 공간 구성을 하였다.
왼쪽 윗부분에는 아래로 기다랗게“사국일도대선사벽암존자지진상賜國一都大禪師碧巖尊者之眞相”이라는 제명이 쓰여 있는데, 사국일도 대선사는 벽암 스님에 대한 경칭으로 생각되어진다. 이런 제명을 잘 보면 진영 주인공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당시 불교계의 한 흐름도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의 성품이나 업적등을 간략하게 적는 찬문과는 구별되지만 그 그림의 성격에서 좀더 핵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찬문은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의 제목이나 다름없는 제명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을 수 없다.
이처럼 고승 진영은 불교의 가르침으로 수행한 주인공의 인격과 경륜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보편적인 인상과 표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생전 그 고승들의 모습을 기억할 수도 없고 뵐 수도 없지만 이런 진영이 있으므로 해서 더욱 그 고승들을 기리고, 생각하며, 한국불교를 이어온 그들이 당시의 사회에 대하여 얼마만큼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역사 발전에 기여하였는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