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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我의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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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我의 세상풍경 - 박경희 2009년 09월 331호
90년대 초반,“여교사 김00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한 사건을 소개해본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느 여교사가 식칼로 남편을 수십 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 한
후 구속됐다. 세상은 그녀를 희대의 독부로 손가락질했으며 재판부는 1심에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
을 선고했다. 재판정에 선 그녀는 시종일관 빨리 형을 집행시켜달라고 요구할 뿐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그 어떤 항변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한 그녀의 이야기가 여성단체를 통
해 세상에 전해지고 뜻 있는 인권변호사들이 모여들었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이 배경이기에 인권적
측면에서 보면 진짜 가해자는 죽은 남편이고 살인자 김OO 씨는 오히려 피해자라는 입장에서였다.
목숨을 위협하는 남편의 폭력 앞에 자기 방어를 하다 벌어진 우발적인 살인이었고 당시 순간적이나
마 김OO 씨가 심각한 정신 공황상태에 이를 정도로 극심한 공포감에 싸여 있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여론이 높아만갔다. 변호인단은 죽은 남편이 아내인 김OO
씨의 옷을 벗기고 매질을 하며 칼을 들고 위협했던 사건 당일의 위급했던 정황을 들어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나섰다. 방송 또한 살인을 저질렀지만 전체적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그녀가 희생자라는
데 초점을 맞춰 여론을 형성해 갔다. 모두가 그녀를 살릴 명분을 찾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정작 살
려달라고 애걸이라도 해야만 할 김OO 씨 본인은 모든 게 귀찮다는 반응으로 변호인단 접견조차 거
부하며 조속한 형 집행만을 요구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취재진과 변호인단은 자신의 삶조차 포기하려는 그녀를 도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주
변 탐문조사에 들어갔다. 자녀와 이웃, 재직했던 학교, 그 외 가족들의 증언들이 채록되었다. 그녀
에게는 유치원생 딸과 초등생 아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아이를 대신 돌보고 있는 친척을 통해 결혼생활의 단면을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상습적으로 도박을 하고 동거녀까지 두고 이중생활을 하였으며 어쩌다 집에 돌아오
면 매질과 욕설이 심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는 죽은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과 잔인함이
드러났다. 아빠는 엄마를 때리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아빠만 돌아오면 자신들을 방으로 들여보내면
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엿보면 아빠는 소리지르고 욕했지만 엄
마는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때론 아빠가 엄마의 옷을 벗기고 혁대로 때리고 칼로 위협했을 때도 엄
마는 소리조차 안 지르고 참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깨서 험한 부모의 모습을 볼까봐 참은 듯했다.
수년간 계속된 이런 폭력은 외부와 단절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동네사람들은 김OO 씨에게 무
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가끔 큰소리가 들리면 부부싸움을 하나보다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동네에서는 뜻밖에도 남편에 대해 더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을 만나면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하는 신사였지만 부인 김OO 씨는 평소 웃는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늘 고개를 숙이
고 다녔으며 폐쇄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머리는 늘 헝클어져 있고 바로 옆에 목욕탕
이 있어도 씻으러도 오지도 않았다며 아내의 자기관리 부실을 이유로 잘생기고 멋진 남편이 바람피
우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취재진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의 위선이 드러나는 순
간이기도 했다. 재직했던 학교에서는 교육자로서 매우 훌륭한 선생님이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
다. 그리고 취재 중 서로 속내를 터놓고 지낸 한 동료 교사를 통해 이혼도 못하고 살아내야만 했던
김OO 씨의 마음 속 얘기를 전해 들었다. 김OO 씨에 대한 남편의 폭력과 무관심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사는 이유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여학교 교사로서 이혼할 수 없다는 관
습에 매인 지나친 도덕심. 어릴 때 계모 슬하에서 피해받고 자랐다는 남편에 대한 인간적 연민 등등
이라 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종교심이라고 했다.
김OO 씨는 독실한 불자였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고통을 업이라 여기며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절에 가서 기도하고 오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기도하며 고통을 참아내는 것은 김OO 씨 나름
의 업장소멸의식이었다는 것이다.
머리가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불자이고 때론 힘든 일 앞에 전생 과보를 떠올리며 억울함
과 분함을 참아내는 인내심를 발휘한다. 짧은 108배나마 절을 하고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 보면 어
느새 화가 삭혀지고 꼬인 일 앞에 담담해짐을 느낀다. 또 한고비 잘 넘겼다는 뿌듯함과 종교적 환
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많은 혼란을 느꼈다. 처참한 현실을 참아낸다면 과연 전생 업은 소
멸되는 것인가? 참다 참다 이처럼 억울하게 살인이라도 저지른다면 그 과보는 또 어찌하며 억울함
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자비와 보시행을 통해 전생 업장을 소멸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참아내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너
무나 많이 희생시킨다거나 인내의 미덕을 보이느라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고 간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부처님이 주신 가장 큰 말씀은 마음의 평화와 일체중생을 싸안을 만큼의 넉넉한 마
음을 가지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내가 지치고 힘들다면 남의 고통과 불행은 보이지 않
는 게 인간사다.
피해자와 가해자, 거미줄처럼 얽힌 인연의 고리 앞에 과연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일 수 있는
가! 그리고 우리는 그 시시비비를 가릴 밝은 눈을 가지고 있는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평화로부터 출발한 아름다운 배려와 자비. 이타자리利他自利 - 자리이타自利利他 에
대한 올곧은 이해가 바로 곧 행복이요 부처님 말씀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OO 씨는 그후 많은 분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정당방위와 죽은 남편의 오랜 폭력으로 인한 정
신불안을 이유로 무죄를 인정받고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