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깨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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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경회
2009년 09월 331호
하트브레이크(Heartbreak) 란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심장이 깨지는 듯한 슬픔이나 감정적 고통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하트브레이크를 십팔, 구세의 나이에 겪어낸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대학입시 발표가 있는 날이다. 발표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며칠째 제대로 잠을 못 이룬 탓에 토끼 눈을 한 채 지원한 대학의 교문 앞에 이르렀다. 합격자 벽보가 붙어있는 장소를 향하여 종종걸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작년에 겪었던 낙방의 쓰라림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은 벌써부터 두근 반 세근 반 그 맥을 바쁘게 하고 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합격자 벽보에 이르러 차례로 읽어 내려가는 순간 모든 것이 또 무너져 내리는 아찔함을 맛보았다. 작년, 재작년에 이어 올해 3번째 낙방이다. 이미 처절히 깨져 가까스로 챙겨왔던 그 온전치 못한 심장이 다시 깨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너덜거리는 심장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또 그렇게 그 대학의 교정을 내려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3, 재수, 3수 세 번의 쓰라린 낙방을 통해 깨어진 심장을 이젠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런 그 순간에 막연하지만 육조스님의 오도송 두 구절이 문득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본래로 한물건도 없는 것이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끼일까? ”
10대 후반의 나이에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부적처럼 받아 가슴에 지녀왔던 그 구절이 힘이 되어왔던 것이지요. 이 오도송은 재수시절 국어선생님이 어느 날 칠판에 적어주시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고 그 이후 염불처럼 가끔씩 입으로 만 되뇌던 구절이었습니다. 그런 그 구절이 이렇게 심장 깨어지는 순간에 마음에 다가올 줄이야. 심장이 깨지는 듯한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또 다른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체험이었습니다. 그렇게 갖게 된 육조스님과의 인연, 대학진학 후 불교학생회 활동, 대학 1학년 초심과 간절심으로 임했던 해인사 홍제암의 첫 수련대회, 그리고 대학 지도법사스님과의 만남, 그리고 그 법사스님의 가르침 하에서 맺은 선지식동문들, 그 동문중 출가하여 구도의 길을 걸은 지 30년이 되어가며 한국 수좌회 중진역할을 하고 계신 동문스님... 그날 이후 주어진 상황에 대해 늘 그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현명한 시각으로 흔들림 없이 살아오고 오고 있습니다.
고려보조국사어록高麗國普照國師語錄중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人이 因地而倒者 因地而起라하니 離地求起는 (중략): 사람이 땅 때문에 넘어지며, 땅으로 인해 일어난다 하니, 땅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것같이 (중략)” 인생여정에서 우리가 겪는 상황에는 늘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 상황이 겉보기에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말입니다. 마슬로(Maslow)박사도 사람이 긍정적 발상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통계적으로 70-80%는 부정적 발상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안정을 바라는 본능적인 사고태도’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현대의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중 하나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심신의학)을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이나 상황이 우리 자신의 신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기쁨이나 분노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 상태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뇌가 활동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결과물은 몽땅 우리 몸 안에서 특정한 화학물질(호르몬)로 변해 분비됩니다. 이것을 ‘감정의 분자’ 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겪은 후 몸의 활기가 없어지고 소극적으로 변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럴 경우 뇌에서 코티졸이라는 신경호르몬이 분비되는 데 이 물질은 우리의 몸이 닫혀있고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화하고 감사가 넘치는 얼굴을 보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와 비교해 보십시오. 긍정적인 만남이나 감정을 겪을 때는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과 옥시토신 호르몬이 뇌로 흘러듭니다. 이들 화학물질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삶을 보다 적극적이고 의욕적이며 즐겁게 여기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사고할 때와 부정적으로 사고할 때의 단백질 분해 방법도 서로 다릅니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이것은 하나의 시련이다. 좋은 경험이다.’ 라고 받아들이면 단백질이 부신피질 호르몬과 베타엔돌핀으로 분해됩니다. 부신피질 호르몬은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베타엔돌핀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작용을 합니다. 스트레스라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뇌의 생성물질이 상이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습관의 지배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부정적 발상을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부정적 사고를 하고 긍정적 발상을 하는 사람은 늘 긍정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삶을 즐깁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모두는 보다 넓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긍정적 사고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사고를 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친다면 전 인류의 의식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요심요圓悟心要 상권上卷 45절, 영상인瑛上人에게 주는 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애초에 나라는 생각이 없는데 어찌 성색聲色에 맞고 거슬리는 경계와 마군이니 부처니 하는 경계가 있으랴!”
우리 인간은 우주의 모든 것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에너지를 주고, 또는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 라는 존재는 우주의 모든 것입니다. 즉 그 것이 경계로 나타나건 , 마군魔群으로 나타나건, 부처로 나타나건 동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것은 상호간에 에너지란 형태로 주고받을 수 있으며 본질적으로 하등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없는 “나” 라는 존재를 구태여 “나”라고 이름 붙여 군더더기만 만들어 냈을 뿐인데, 본래 없지만 이렇게 만져지는 생명으로서의 “나”를 철저히 비워내기 위해 피나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중생견을 -알고는 있지만, 체득하지 못한- 내봅니다. 成佛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