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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금과 같이 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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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9년 09월 331호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 과거 연애 풍속도를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몇 년전에 산골에서 사는 노부부 이야기가 방송된 적이 있다. 이 할아버지 말씀이 결혼하기 전까지 그런 말씀 한번 안 해봤다는 것이다. 미리 말과 행동으로 소위 볼장(!) 다보면 나중엔 무엇으로 마음을 전하냐고 반문하셨다. 실은 복잡하지 않은 시절을 생각해보자면 그 땐 마음이 순수하고 정신이 순일하여 말 안 해도 잘 안다. 그저 눈빛만으로 손짓 하나로 서로의 사랑을 믿고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절 사람 말을 못 믿어 그런지 세상에는 별별 사이에도 사랑한다는 말이 넘쳐 난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 시절이 되어버렸다. 실은 말을 해도 모르니 말 안 하면 더더욱 모른다. 오늘도 여러 매체의 수많은 사랑의 카운슬러들이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세요.”라고 부추켜 댄다. 물론 나도 요즘사람이다 보니 이 방법을 무시하지 못하고 혹시 늦어서 후회할까 싶어 사랑의 고백을 남발하고 지내기는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랑의 말이 진정 사랑에 꼭 필요한 것일까? 세상은 어쩐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선禪이나 선화禪畵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진심으로 통하는 마음은 긴 말이 필요 없고, 지극한 도는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듯, 단 몇 마디 말만으로도 진리를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수들 사이에서 몇 개 안 되는 생뚱맞은 단어만으로 서로의 내공과 진리를 확인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한편 선지禪指를 드러내는 그림을 그릴 때, 또 그림으로 선의 여유를 표현할 때 반드시 많은 붓질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주는 그림이 바로 선화이다. 먹을 쓰기를 금보다 아끼고 붓질을 최대한 참고 참으며 하나의 선線이나 점에 집중하는 것을 감필법減筆法이라고 한다. 선화는 감필법의 홈그라운드이다. 왜냐하면 선화禪畵가 지향하는 바가 바로 절제와 간결함이 최대치로 발현되는 ‘집중’이기 때문이다.
참선하는 공간인 선방은 간결하다. 불상이 없고, 치장이 없다. 아침, 저녁으로 행해지는 예불도 생략하는 것이 선방의 룰(rule)이다. 의례나 삶을 간결하게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생각도 최소한만 허락해야 해탈의 경지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객들이 의식과 장식을 최소화하고 간소하게 살기 때문에 이들은 화두에 집중하고, 수행에 몸과 마음을 던질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내공이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중국 남송의 유명한 선화가 양해(梁楷;1140?~1210?)가 그린 <시를 읊는 이백(李白行吟圖)>는 치장과 의례, 세밀한 묘사를 모두 뒤로 하고 간결과 집중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림 속에는 배경도 없고, 인체의 세밀한 묘사도 없다. 오직 허공 속에 그의 눈빛만 보일 뿐인데, 절제된 붓질 속에서도 그림 가득 이백의 싯구가 들리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화가의 붓질이 바빴다면 절대 드러나지 못했을 경지가 오히려 감필 속에 들어 있었다. 앞으로 양해의 그림은 우리에게 많은 선의 이야기 거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