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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세계 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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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물결소리 - 현산 2009년 07월 329호
화장세계 발원기 ‘비가 얌전히도 내리시네’.
아침공양 끝에 댓돌을 오르시며 수좌스님께서 오랜만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두고 혼자말처럼 하신다. 나 또한 지금 오시는 얌전한 손님이 그 누구보다 더 반갑다.
바로 어제인 스승의 날 승가대학 대중 모두가 화장원에 수양벚꽃나무 10그루를 심었다.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식수도 되었지만 본래는 승가대학 4학년 스님들의 졸업 기념 식목 행사로 계획된 일이였다. 하지만 우연히 스승의 날과 겹쳐 스승의 은혜를 그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기분 좋은 운력이였다. 뒤늦은 식목 뒤에 때마침 비님이 얌전히 흠벅 내려주니 한층 마음이 즐겁다.
4학년 졸업 기념식수 계획은 올해 봄부터 시작되었다. 봄 학기가 막 시작됐을 무렵 4학년 교수사 스님께서 백운동 야산에 아름다운 수양벚꽃나무 네그루가 있으니 이걸 4학년 스님들이 졸업 기념으로 해인사에 옮겨 심으면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다. 앞으로 졸업식수가 해인사승가대학의 전통이 되어 화장원부터 일주문까지, 나아가 허덕교까지 학인들이 심은 나무로 장엄되면 스님네는 물론 해인사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환희심을 주지 않을까하는 10년을 내다본 장기적 계획이었다.
교수사 스님의 제안에 동의한 4학년 스님들은 직접 그 백운동 수양벚꽃나무을 찾아 나섰다. 말씀대로 가지가 축 늘어진 아름다운 수양벚꽃나무였다. 그 날로 스님들은 그 나무가 누구의 소유며 어떻게 이송하며 어디에 심을지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 나무 주인을 찾는 게 급선무인지라 임무를 맡은 두 스님이 그 동네 음식점 주인과 이장님을 만나 추적에 들어갔다. 그 분들도 그 나무가 마을의 명물인데 주인은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결국 성주군청에 찾아가 토지대장을 살펴보니 국유지가 아닌가. 마침 교수사스님께서 군청에 아는 분이 계셔 우리 식목계획을 밝히시고 협조를 청하셨다. 조바심으로 답변을 기다리던 스님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군청에서 보내온 공문에 그 땅은 사유지이며 그 지역은 이목이 허가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그 후 그동안의 노력에 지친 탓인지 우리의 식목계획은 한 동안 주춤해져 두 달이 훌쩍 지나가게 되었다. 이 계획이 스님들의 뇌리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갈 때쯤 4학년 명진스님이 보시한 5년생 수양벚꽃나무는 우리의 가슴속에 새로이 열정의 불을 지폈다. 당장 식수계획에 착수했고 나무를 어디에 심을 건지 분분한 의견이 오가던 도중 화장원이 거론되었다. 화장원은 화엄경의 화장세계에서 따온 명칭으로 성철스님께서 정식 인가받은 승가대학설립을 위해 처음 세우신 건물이다. 수만 가지 꽃으로 장엄된 화장세계는 우주의 실상이요, 깨달음의 세계라. 졸업기념식수를 시작할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또 기념식수일이 우연히 스승의 날과 겹치게 되어 기념도 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우리 식목행사는 그야말로 잔치마당이었다.
비록 4학년 졸업기념식수지만 스승의 날 기념식수행사가 맞물려 전 대중이 운력에 동참하게 되었다. 우리 4학년 스님들에게 있어서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택이다. 나무를 심기 전 화장원 앞뜰에 자생한 나무와 철쭉을 덮고 있던 잡풀들을 베어내고, 가지치기를 하면서 조경작업부터 시작했다. 모두 노련한 조경사나 된 듯 이런 저런 자신만의 노하우와 조경계획을 내놓는다. 이러다가 운력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에 의해 직접 가꾸어지는 화장세계를 그려보며 신이 났다.
보기 좋게 정돈된 화장원 앞뜰에 어디서든 보기 좋게 수양벚꽃나무가 심어질 구덩이가 하나 둘 파지며 허덕교까지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화장원 앞뜰에 다섯 그루, 화장원으로 올라오는 길에 나머지 다섯 그루가 심어졌다. 뿌리와 흙 사이에 공간이 있으면 나무가 죽는다는 전문가의 말에 물호수를 땅 속에 박아 연신 막대기로 땅속을 쑤셔 빈 공간을 메워갔다. 잔가지도 잘라주고 아직 어려 지지대도 보기 좋게 설치했다. 운력을 마친 후 다각스님들이 준비한 맛있는 차담을 들며 심어진 나무를 보니 마음이 넉넉해져 저절로 배가 불러왔다. 벌써부터 욕심내어 꽃핀 수양벚꽃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설렌다. 한 편으로 내년엔 졸업이라 보지 못하겠구나하는 아쉬움도 마음 한 켠에 자리 잡는다.
앞으로 신심과 원력으로 수행하다 인연에 따라 다시 해인사에 오게 되면 아름드리 자라있을 수양벚꽃나무를 볼 수 있으리라. 길게 늘어진 가지가지마다 흰 벚꽃이 아름답게 수놓아 화장세계 해인사를 장엄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만큼 찬란하고 굳건히 수행과 원력이 무러 익어 인천의 사표가 되어있을 도반 스님들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찾아온다.
문뜩 옛날 어떤 스님께서 지으신 깨달음의 시가 가슴에 스친다.

온종일 봄을 찾아도 찾지 못하고(盡日尋春不見春)
짚신이 다 닳도록 온 산을 헤맸네(芒鞋遍踏隴頭雲)
집으로 돌아오며 매화 밑을 지나는데(歸來偶過梅花下)
봄이 이미 매화가지 위에 있더라(春花枝頭已十分)

앞으로 매년 봄에 피어날 수양벚꽃을 보면 우리 학인스님들도 이런 깨달음의 시 한 구절씩 읊었으면 얼마나 좋으리요. 아름다운 꽃나무로 도량을 장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의 도량도 수행과 깨달음으로 장엄해야 함을 모두 명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이런 졸업식수가 계속되어 허덕교부터 화장원까지 우리가 만든 꽃나무길이「허덕교를 지나자 그곳은 화장세계였다」라고 인구에 회자되기를 발원해본다. 그 때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도반스님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