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우들과 스님이 계신 처소를 찾았다. 큰 사찰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잘 알 수 없어서 익숙한 법우를 따라갔다. 쉽게 드나들 수 없는 문을 들어서서 스님 방문 앞에서 섰다. 기억의 저편에서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님의 안내로 방안에 들어갔다. 미리 준비해둔 다구에서 물이 끓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가사 한 벌, 앞에 놓여진 다구, 방 한쪽에 놓여진 책과 컴퓨터가 있었다. 작은 방에 꼭 필요한 물건들만 놓여 있는 소박한 방이다.
담소를 나누다가 예전에 다른 스님이 이 절에 거처하실 때 와본 곳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스님께서는 그 방이 맞다고 하시며 그 스님께서 소임을 맡으신 것이 벌써 언제 적의 이야긴데 하신다. 같은 소임을 맡으셨고 예전에 와본 곳이 바로 이 방이라고 하신다.
아마 십 년은 넘었을 것 같다. 친구를 따라 큰절에 왔다. 친구는 자주 드나들었던지 일반인은 들어가지 않는 문으로 주저 없이 들어선다. 밖에서 낮은 소리로 스님을 부르니 스님께서는 들어오라고 하신다. 나는 쭈뼛거리며 맨발이라 방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어쩌면 절에 가기에 옷차림부터 맞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회색빛이 아닌 노란 꽃무늬 원피스 위에 주홍빛 윗도리를 걸치고 여름이라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었으니 산문 밖에서는 어울리는 차림으로 스님 처소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의 차림에 주눅이 들었는데 스님께서는 꽃다운 청춘으로 바라보시며 넉넉한 미소로 괜찮다고 하신다. 방 안에 들어가서 인사를 올리고 원피스 치맛자락에 맨발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스님께서 물을 끓이신다. 차를 준비하시는 동안 친구와 안부를 건네신다. 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말했다.“스님, 방 안이 너무 간소해요.”벽에 걸린 가사 한 벌과 연꽃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만 눈에 들어왔다. 스님께서는 오히려 다른 스님들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방 안 구석에 놓인 오디오에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신다. 스님은 속가에 계실 때 음악을 전공하셨다고 한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방문 밖을 바라보았다. 화단에는 잘 가꾸어진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참으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동안 물끄러미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다 스님께 말씀드렸다. 사랑하는 이가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청춘의 가슴앓이를 시작하는 젊은이의 말에 스님은 끄덕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신다. 철없던 그때의 내 모습에서 어쩌면 언뜻 두고 온 속가의 인연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스님께서는 말없이 음악회 티켓을 건네주셨다.
음악회에서 처음 들어본 찬불가 중에서 나옹 선사가 시로 쓴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갈 것을 말하는 구절이 집착을 하고 있는 내 마음에 좋은 경구가 되었다.
독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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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일을 추억하며 지금 마주하고 계신 스님을 바라본다. 그 스님만큼 연륜을 가지고 계신다. 글을 쓰시는 분에 맞게 책상 위에는 습작한 메모도 보인다.
지난 번 스님께서 주신 책을 읽으면서 왠지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 방을 다시 들어서게 될 인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담장 안의 저 목련은 누가 심었을까.
그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해마다 피고 지면서 심은 이의 마음을 꽃향기로 전한다.
절 주인은 내가 아니라 저 나무들이다. 떠도는 스님들은 어디까지나 객에 불과하다.
나 역시 꽃에 대한 애착은 없다.
과거의 스님들이 그랬듯이 꽃을 바라보고 그 향기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꽃향기는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나는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스님께 묻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꽃향기에 취해 온 마음을 흔들릴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수행자의 마음을 닮아갈려고 할 뿐이다.
문을 나서 화단을 보면서 말했다.
“봄이 되면 여기에 꽃이 많이 피겠지요?”
스님께서 말씀하신다.
“목련도 피고 꽃들이 많이 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