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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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피플 - 이겸
2009년 07월 329호

백운동 계곡엘 들어서니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짙은 안개가 여정을 더디게 한다. 빗소리와 섞인 계곡의 물소리가 세차다. 심원사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오르막이 계속되고 길은 구불 된다. 포장을 하려는지 산길을 넓혀 놓았다. 길 양편으론 물기를 흠뻑 삼킨 소나무들이 섰다. 안개와 섞인 회색 실루엣이 솔숲의 운치를 자랑한다. 안개가 물러서지 않아 절을 코앞에 두고도 전각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절집을 지키는 개 짓는 소리도 촉촉하게 들린다. 우유 빛 커튼이 숨바꼭질을 하며 신비스런 산사의 모습을 연출한다.
심원사는 가야산 국립공원 백운동에 위치한 8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추측되는 곳이다. 고려 말 관료이자 학자인 성주출신의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그의 시 ‘기심원장로 寄深源長老’ 에서 ‘\'심원고사재야산 深源古寺在倻山 심원사 옛 절은 가야산 속에 있는.......’이라고 하였다. ‘옛 절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사세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승려 지원(智遠)이 중수하여 크고 화려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廢寺)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이미 폐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내에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다수의 석물들이 있는데, 심원사 3층 석탑이 대표적이다. 폐탑(廢塔) 상태로 있던 것을 1990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탑은 외형상으로 통일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층기단 위에 쌓아 올린 삼층석탑으로 전체 높이가 450㎝, 지대석(地臺石)의 폭이 350㎝이다. 이층 기단은 장대석(長臺石)과 판석(板石)으로 구성되어 있고, 탑신은 각 층이 단석(單石)으로 면석(面石)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두 개씩 모각(模刻)했다. 옥개석(屋蓋石) 역시 각 층이 단석이고 4단의 받침과 1단의 괴임을 모각했다. 상륜(相輪)은 완전히 없어지고 각층의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은 잘 남은 편이다. 그 밖의 석조유물로는 석조불상대좌(石造佛像臺座), 배례석(拜禮石), 불상광배(佛像光背),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 신방석(信枋石), 석탑기단갑석(石塔基壇甲石) 등이다. 그중 불상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갖춘 주형광배(舟形光背)로 전체적으로 우수하다고 하겠으며, 향로 2좌를 배치한 예는 극히 드문 형식이다. 최근 심원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사지(寺址)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남북 약 80미터, 동서 100미터 정도의 대지에 4단의 계단식 축대위에 세 곳의 금당지를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산지사찰 형태임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사지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고 대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을 차례로 중창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