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열렬히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발산하는 희망에너지, 그것은 우리 가슴을 뜨겁게 흔들어 놓고, 또 아무리 강한 태클이 들어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증폭시킨다. 7월~ 더위에 몰리고, 안팎으로 산재한 지난한 문제들이 그대를 지치게 한다면 잠시 한 호흡 쉬어가며 다른 이의 삶을 한 번 들여다보자. ‘쟤 뭐하는 거야?, 어쩌다 저리됐지?, 왜 저런대?’ 하는 수군거림과 우습게 보는 시선들에서 자유로워진 여인, 불교계 최초의 실내악단으로 출발한 니르바나오케스트라 단장 강형진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더라.
음악 하는 이를 만나 함께 하는 것은 김치 냄새나는, 어쩌지 못하는 우리일상에서 소풍 떠나는 일 같은 것 아닐까? 그녀의 사무실은 음악이 들리기도 하지만 보이는 것도 같았다. 지난 1999년 이른 봄, 강형진 단장은 사막에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니르바나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불자들과 서양음악이 불교와 과연 어울리느냐하는 고정관념 속에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뿌리가 좀 내렸는지 묻는 내게 돌아온 대답은 간단치가 않다. “그간 여러 가지 일들을 해 왔지만 그 대부분의 것들이 무계획으로 이루어졌어요. 뭔가를 추진하고 도모하는 것이 어쩌면 빨리 무너지는 길 일수 도 있었던 거죠. 처해진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았고 안 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오는 대로, 가는대로 받아들이다 보니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애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지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아닌가? 사실 강단장이 이렇게 유연해지기까지에는 불교의 가르침이 바탕에 깔려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강형진 단장, 날카롭기도 하고 섬세하기도 한 바이올린소리와는 달리 넉넉한 품성의 그녀를 마주한 시간이 충만하다.
“저는 불교를 알기전과 그 후로 너무도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냉정하기가 말 한번 붙여보기도 어렵고, 흔히들 말하는 찔러도 피 한방을 나지 않을 것 같은 전형적인 전문음악인의 모습이었죠. 아이들과 자신에게 엄격하고 또 채근하고...그런데 불교를 알면서 그동안 똑같은 세상과 똑같던 사람들이 달리 보이더군요.” 과연 그럴까? 불교를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 아니던가.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받은 도반의 문자메시지를 다시 한 번 열어 보았다. <마음이 잘 숙여지지 않아 몸이라도 숙여보려고 오체투지단에 합류하러갑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이렇게 다른데..하면서.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삶의 휴식을 전해주고 싶은 강형진, 대부분 그렇듯이 아픔이 있어 부처님을 처음 만났다. 3천배수행도 두렵지 않은 그녀는 불교를 음악적으로 이해하고 비유하기를 즐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자면 성악가들이 노래하기 전 발성연습을 하듯이 스킬(skill)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매 순간 변하고 항상 하지 않는 나를 바로 잡고 살자면 절 수행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그래서 바이올린연주를 앞두고 스킬을 하듯이 절을 했고 참 나를 알아가는 공부를 하는 동안 자유로워졌단다.
중년의 남자들 무장해제 시키다.
이렇게 말랑말랑해진 그녀와 니르바나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딱딱하고 무디어진 중년의 가슴을 무장해제 시킨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으로 시작되는 동요 <섬 집 아기>연주가 미황사와 내소사도량에 가득할 즈음 4,50대 중년의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내 마음의 부처>연주는 그들을 펑펑 울게 만들었는데 그 광경을 주시하면서 강단장은 음악의 역할을 생각했다.
그렇지! 이곳은 사찰이구나, 사찰에서의 음악은 그냥 듣고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확 열어주는구나...에 마음이 미치자 그동안의 산사음악회를 돌아볼 겨를이 생겼다
“세간의 수많은 콘서트에서 들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잖아요. 그걸 절에서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가라 앉혀주고, 자기를 느끼게 하고,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자연스레 용서하고 싶고, 참회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천년고찰에서 해묵은 이끼와 탱화에 녹아있는 세월을 배경으로 영성을 이끌어내는 음악회~강형진 단장이 추구하는 산사음악회다. 그렇다면 그녀가 소망하는, 그리고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회의 모습은 어떤 거냐고 다시 물었다.
“황량한 들판이나 산중 깊숙한 곳 폐사지에서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연주하며 성주괴공(城住壞空)의 도리를 살펴볼 수 있는 음악회, 그리고 실력 있는 성악가들과 함께 우리가곡과 찬불가만으로 꾸며보는 음악회를 하고 싶어요. 그곳이 강남의 봉은사라도 좋고 성북동의 길상사나 가야산 해인사라면 더 좋겠지요.”
어떻게 하면 음악에 불교의 정신과 가르침을 담아서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그이는 이미 음악을 통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선불교의 수행체계를 열 가지로 나눠 묘사한 불화인 십우도(十牛圖)와 니르바나오케스트라의 만남이 있었고 <음악, 법 의학자를 만나다. 모짤트>편에서는 니르바나의 연주와 생노병사(生老病死)를 주제로 한 강연회를 통해 실험적 음악회를 선 보였다.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수고로움이다.
생각만하고 망설이고 꿈도 꾸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니르바나의 몸짓에 화답을 하지 않아도 될 경우의 수만 찾고 있는 당신~ 니르바나오케스트라가 한 발 나아가는데 힘을 실어줄 후원회원이 되어볼 만도 하다.
연습을 제1의 수행으로
니르바나오케스트라와 단장 강형진은 99년 창단연주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봉축음악회, 정기연주회는 물론이고 기획연주회, 키즈음악회, 난치성소아암 환아돕기 연주회등 연주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청소년을 위한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예술적 포교프로그램 쥬니어챔버가 그것이다. 절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나 절대빈곤으로 악기를 대할 수 없는 그들에게 바이올린이 인연되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고 싶은 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스쿨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시각장애인 김지선양의 경우도 니르바나와의 협연을 한 인연으로 그 끈이 이어졌는데 지선이 레슨을 하는 동안 세상의 가장 큰 장애는 마음의 장애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시간이 지나고 연주를 할수록 어려워진다는 강형진단장은 연습을 제1의 수행으로 삼겠단다. 그리하여 한국불교와 불교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색깔 있는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키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니르바나~이름에서 시사하듯 잘 한다 못한다, 불교다 아니다, 서양음악이다 아니다를 모두 내려놓고 니르바나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려주며 그 소리에 감동하고 치유하고 열반의 경지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로왕보살이 되고자한다.
열정과 끈기는 재능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하여 그이는 불교계에서 주는 상도 여럿 받았다. 행원문화재단의 예술상,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수여하는 대원상을 받았으며 불교여성개발원의 108여성불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모두를 그녀는 참으로 담담하게 “배고프면 밥 먹겠지 하는 심정으로 니르바나를 만들었고 10년쯤 지나면 웬만한 절에서는 연주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제도권에서는 살짝 비껴 있다보니 불교계에 니르바나오케스트라를 좀 알리자하는 격려차원으로 주시는 것 같애요. 역량부족이라는 자책감도 있지만 그래도 꿈에 그리던 후원회도 만들어졌고 막연하게 이해한 불교가 가슴으로 뜨겁게 들어왔어요.”
드레스 입은 그녀, 큰 절하는 강형진
니르바나오케스트라의 연주회장에 가 보셨는지? 연주가 끝나면 강형진 단장은 무대의상을 입은 채로 관객을 향해 큰절을 올린다. 잘못하면 쇼처럼 보일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절을 하는 그녀의 변은 이렇다. 비불자(非佛者)들도 동참하는 연주회에서 불교라는 것을 표현하고 감사의 그 큰마음을 담아내자면 절하는 것 이상은 없다고.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더 잘하겠습니다> 그녀의 모습에서 흑백의 삶을 컬러로 칠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전해진다. 뜨거운 7월의 햇살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