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쉴 헐歇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효원 2009년 07월 329호
쉴 헐歇 기축년(己丑年)의 새해가 어느덧 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해의 전반기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경제가 너무나도 어려워 신음하신 분들도 계셨고 노무현 대통령님도 돌아가셨고 북한이 핵무기 등으로 세계를 위협하면서 시끌벅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속에서 저희 중생들은 또한 각자의 삶을 새로이 개척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름하면 생각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푸른 해변이나 시원한 숲속에서의 심신을 쉬는 바캉스 또는 피서(避暑)의 계절입니다. 중생들이 새로운 삶에서 복잡하고 힘든 고통을 쉬기 위해 하는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삶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피서(避暑)는 잠시동안 고통을 잊는 것일뿐입니다. 그러기에 고통을 잠시 잊는 것보다 영원히 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집착을 쉬는 것입니다.
능엄경에 외모에 극도로 집착한 연야달다(演若達多)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연야달다는 외모가 아주 빼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준수한 모습에 흠뻑 빠져 거울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야달다는 크게 착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이 머리가 거울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라는 착각에 빠져 미쳐버리게 됩니다. 그는 거리를 오가며 외칩니다. \"나의 머리를 찾아 주시오\"라고 말하는 그를 사람들은 미친 사람 취급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착각을 깨어 주었습니다. \"네 머리는 그대로 있다. 머리를 만져 보아라\"라는 말씀에 연야달다는 착각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아, 내 머리는 원래 그대로구나!\'라고 자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하듯 우리들의 고통은 허망함을 갖는 것이면 착각 속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러함을 대중들과 부루나에게 세존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富樓那妄性如是因何為在。 부루나망성여시인하위재。
汝但不隨分別世間。 여단불수분별세간。
業果眾生三種相續。 업과중생삼종상속。
三緣斷故三因不生。 삼연단고삼인불생。
則汝心中演若達多。狂性自歇。 칙여심중연약달다。광성자헐
歇即菩提。勝淨明心本周法界。 헐즉보리。승정명심본주법계

“부루나야, 허망함의 본성이 이런 것이니, 원인이 어디 있겠느냐? 네가 다만 세간(世間). 업과(業果). 중생(衆生)의 세가지 상속(相續)을 따라서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가지 연이 끊어지므로 세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여, 너의 마음에 있는 연야달다(演若達多)의 미친성품(狂性)이 스스로 쉬게 될 것이며, 쉬기만 하면 곧 보리(菩提)이다. 뛰어하게 청명(淨明)한 마음이 본래 법계(法界)에 두루 퍼진 것이다.”
(신수대장경 T19n0945_p0121b23-b26)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세간, 업과, 중생이라는 그리고 그것에 의해 생기는 여러 가지 번뇌를 쉬면 그것이 바로 보리를 증득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란 곧 ‘쉬는 것’입니다. 무엇을 쉬는 것일까요? 마음의 분별심과 몸뚱이 집착을 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터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因地修行)을 해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무상보리이며 불생불멸인 깨달음과 하나 되어가는 수행(果地修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임제스님은 임제록에서

捨頭覓頭。自不能歇。 사두멱두。자불능헐。

“자기 머리는 놔두고 다른 머리를 찾느라 스스로 쉬지를 못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임제록에서의 이 대목은 본래무사(本來無事)의 제목으로 본래 할 일이 없음을 알고 닦을 것도 깨달을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중생들은 자기 머리는 놔두고 다른 머리를 찾느라 스스로 쉬지를 못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고통과 번뇌를 만들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글을 읽는 불자님들은 어떤 피서를 떠나시겠습니까? 잠깐 동안의 몸을 쉬는 피서를 떠나시겠습니까? 아니면 집착을 쉬어서 영원한 피서를 떠나시겠습니까? 진정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 사찰의 고즈넉함과 함께 몸과 마음의 집착을 벗어낼 수 있는 체험의 장을 찾아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