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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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我의 세상풍경 - 박경희
2009년 07월 329호
최근 인터넷 검색 순위 상위에 랭크된 것 중 하나가‘비참해진 공주들(Fallen Princess)’이란 제목의 사진작품들이다(자료사진 참조). 여류 사진작가 디나 골드슈타인의 작품들로 해피엔딩으로 끝난 동화 속 공주들의 이후 삶에 대해 상상한 것들이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면서 한편 허무감이 밀려든다.
사진 작품 속의 <백설공주>는 그 후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아 육아전쟁을 치르느라 지쳐가고 있지만 왕자는 손 하나 까딱 않고 TV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우리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여린 백설공주의 모습은 간데없고 생활에 지치고 화가 나 있는 여느 주부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신발 한 짝으로 왕자의 사랑을 얻게 되었던 <신데렐라>는 그때를 추억하며 늦은 밤, 홀로 술집에 앉아 왕자를 기다리는 고독한 공주로 묘사되어 있다. 또 탑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긴 금발머리를 내려 왕자를 불러들여 사랑을 나눴던 라푼첼(그림 형제가 쓴 동화‘라푼첼’의 주인공)은 암에 걸려 머리가 다 빠져버리는 바람에 금발머리 가발을 써야만 한다. 저마다 동화의 해피엔딩을 다시 뒤집는 작가의 역발상으로 세 살 난 딸이“동화 속 주인공들은 그 후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시작했다고 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 있는 괴리감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들이라 하겠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어린 시절, <백설공주>, <신데렐라>, <콩쥐 팥쥐> 같이 슬픈 일상 속에서도 끝내 행복을 만난다는 공주(소녀)들의 동화를 읽고 자랐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여리고 착하며 현실에 대한 저항력조차 없는 나약한 여성들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왕자들은 늘 우연히 지나다가 그녀들을 발견하고 구출은 물론 첫눈에 반해 당당하게 프로포즈를 하는 낭만적이면서도 책임감 강한 남성으로 그려진다. 왕자에게 구출돼 절망에서 빠져나온 그녀들은 화려한 결혼식과 함께 여성 최고의 권위로 상징되는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지난 고통 또한 시원하게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내용들이다.
이런 동화들은 출생 후 처음으로 자아가 막 싹트기 시작한 3살 이후 초등학교 입학 이전까지 읽게 되는 것들로 주인공들은 각각 어린 여자아이, 남자아이들의 우상이 된다. 최근 TV드라마에 나오는 F4 같은 꽃미남 스타 같은 존재들로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간접적인 첫 경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인생의 첫 번째 오류이기도 하다.
취학 전 아이들의 역할 놀이를 들여다보면 꼬맹이들의 머릿속에는 여자 남자의 구분이 별로 없는 듯싶다. 그저 공주와 왕자만이 존재한다. 여자아이는 늘 공주처럼 예쁘게 말하고 왕자로 인식된 남자아이에게 온갖 의지를 다하며 그 고마운 마음을 애교로써 보답한다. 반면 스스로를 왕자로 인식한 남자아이들은 가능한 한 몸짓을 강하고 크게 움직이며 여자아이들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줌으로써 그림책에서 본 잘생기고 멋진 왕자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보호받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과 자신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약자를 돕는 것으로써 존재감을 느끼는 남자의 마음 그대로가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를 통한 역할극에 담겨 있으며 이런 설정은 동화 속 주인공들로부터 배운 모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를 알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성이 남성에게 또 남성이 여성에게 가진 환상과 기대를 하나 둘... 그리고 나중에는 모두 내려놓게 된다. 더 이상 왕자도 공주도 될 수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나’라는 인식은 너무나 씁쓸하고 때론 인정하기가 너무나 가혹하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기는 것이 꿈인 셈이다.
현실 앞에 여자는 더 이상 나약할 수 없으며 남자는 더 이상 강한 척을 할 수 없을 만큼 현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않으면 사랑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럴수록 어린 시절 동화 속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허무와 더불어 묘한 배신감이 든다. 누가 그렇게 생각하라고 일러준 적은 없으니 대상 없는 분노다.
사진작가 디나 골드슈타인도 어린 시절 한동안 착각했던 기대를 현실 앞에 내려놓으면서 겪었던 대상 없는 분노를 작품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비참해진 공주들.’ 그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잃어버린 꿈과 이그러진 현실 앞에서도 씁쓸한 미소 한번 머금고 다시 툭툭 털고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자가 나타나 나의 절망을 구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듯, 그 후 읽은 위인전처럼 위대한 인물은 삶에 굴곡이 많고 이를 헤쳐나갈 때 영웅으로 탄생하는 것이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에 의지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세상의 모든 기대가 사라진다해도 내 마음이 끊임없이 꿈을 꾼다면 삶은 그래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자조해 본다. 그리고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잃어버린 꿈을 대신할 그 무언가의 희망들을 부지런히 찾아보는 즐거움과 꿈꾸는 자유, 그리고 상실에 대한 여유를 우리 모두에게 권해본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