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택지전고노(揀之擇之田庫奴)라조주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나 간택하는 마음만이 허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것이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천성천하 유아독존이니라.”
“그러면 여전히 간택하는 일입니다.”
“야 이 촌놈(田庫奴)아, 어디가 간택하는 곳인가?”
그러자 그 납자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有嫌揀擇)이라
단막증애(但莫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이 말은 3조 승찬대사의 《신심명》 첫구절인 동시에 근본사상이기도 합니다.
당대의 대선지식 조주선사에게도 이를 물어오는 납자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선사께서는 묻는 납자의 근기에 맞추어 대답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조주선사에게 또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나 간택하는 마음만이 허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즘 사람들의 집착(과굴窠窟)이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서 선사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찌기 어떤 사람이 5년동안 나에게 물었는데 아직껏 설명할 수 없었느니라.”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도에는 어렵다는 것과 쉽다는 것이 없지만 어렵고 쉬움은 사람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또 쉬워서 결코 어려울 것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강에서 동전을 잃었으면 강물에서 건져야지 그곳을 떠나서 간택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금부처는 이미 간택을 벗어난 경지인데 다시 화로를 거쳐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이 역시 설명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문 위에 다시 문짝을 덧붙이는 짓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또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알고보면 그 길은 참으로 쉽습니다.
간택함에도 떨어지지말고 명백함에도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체를 놓아버리면 됩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디 새삼스럽게 떨어질 곳이 따로 있겠습니까?
다시 조주에게 또다른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나 간택하는 마음만이 허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말이 있기만 해도 벌써 간택하는 것입니다. 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을 지도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 화두를 전부 인용하지 않는가?”
“저는 겨우 거기까지 기억할 뿐입니다.”
그러자 선사께서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나 간택하는 마음만이 허물이 된다고 했느니라.”
조주선사는 평상시에 꿰맨 틈이 없고 또 동시에 광채도 뿔도 없는 경지를 내보이신 어른입니다.
만약 이치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서로 꾸짖은 곳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런데도 꾸짓는다는 말에만 걸려 있다면 이는 해답을 내리지 못한 것이며, 또 얼른 제 때 대답을 제대로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물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설사 아무리 친절하게 나불나불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그 참뜻을 절대로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간택할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간택하는 용어로 밖에 설명을 해줄 수 없는 선사의 무진고뇌와 다함없는 자비심을 후학들은 하안거 반산림을 지나면서 다시금 알아야 합니다.
지극한 도라는 것은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오직 간택함만을 꺼릴 뿐입니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통연히 명백해질 것입니다.
민롱공리맹풍(蚊弄空裏猛風)이요
누의감어철주(螻蟻撼於鐵柱)로다
모기가 허공의 바람을 희롱하고
개미가 무쇠기둥을 흔드는구나
불기2553(2009)년 하안거 반산림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