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승보살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수행법인 6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미는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내가 먼저 화해하고 화합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해와 수용과 화합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참고 인내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인욕바라밀의 인욕은 존재의 모든 문제는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통찰로부터 일어나는 인내忍耐를 말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이나 괴롭힘도 근본원인根本原因인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임을 지각知覺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이익과 괴로움을 가하는 상대방은 원인이 아니라 반연攀緣이라는 시각과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견디고 참아내고 인내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진정한 의미이자 취향점일 것이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순탄하지 못한 경계가 주어지게 되었다고 인식認識과 자각自覺이 일어난다면, 수용이나 이해를 넘어서 상대에 대한 측은함과 자비심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인욕보살을 대표하는≪법화경法華經≫의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은 상대를 향한 자비심의 경지를 존경과 존중으로 승화시킨 분으로, 반목과 불화합의 작태를 치유하는 가르침을 시사하는 본보기로 수순隨順해야 한다. 이와 같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세존의 탄생게誕生偈인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증명하는 것으로,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들을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대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심菩薩心인 것이다. 또한 오역죄五逆罪를 범한 악인惡人 데바닷다에게 미래세未來世에 성불成佛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내리는 설명도 ≪법화경≫의 지향점이 소극적인 인욕과 인내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수용과 포용과 존중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역죄의 악인까지 부처로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최상最上의 인욕일 것이다.
조선 초기의 청백리로 꼽히고 있는 황희 정승의 삼당론三當論 역시, 각자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한 이해와 포용의 인욕과 다르지 않다. 셋이 모두 지당하다는 삼당론에 대한 고사故事를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신들과 조정의 중대한 국사를 논의하고 퇴궐한 황희 정승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마당의 청지기는 그 날 일어난 일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고하게 된다. 청지기의 설명을 모두 들은 뒤에 정승은 자네의 말이 옳다고 수긍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엌에서 일하던 찬모가 같은 일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였으며, 정승은 다시 그렇다면 네 말이 맞다고 하였다. 그 후에 안방에 들어가니 이번에는 정승의 부인이 영감은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다고 하니 줏대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듣자, 정승은 마누라의 말씀도 지당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동일한 사건이라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관점과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개별적인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황희 정승은 국정의 대소사는 물론 개인적인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불만을 품는 사람이 없도록 원만한 처리를 하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바로 인욕행자忍辱行者의 자세이며, 모든 사람과 경계에 대해서 선입견先入見을 두지 않는 열린 마음과 의식이라고 할 것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시문施門과 계문戒門과 인문忍門과 진문進門과 지관문止觀門의 다섯 가지 수행으로 신심信心을 이루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가운데에 인문忍門이란 다른 사람이 괴롭게 하는 것을 참아서 원수 갚을 마음을 품지 아니하며, 또한 마땅히 이익(이利)과 불이익(쇠衰), 헐뜯음(훼毁)과 가상히 여김(예譽), 칭찬(칭稱)과 나무람(기譏), 고통(고苦)과 즐거움(낙樂) 등의 경계를 참는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기훼찬예譏毁讚譽와 고락苦樂 등의 일체의 상황이나 경계에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평정의 마음과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자기와 동일한 견해와 의견만을 취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혹은 나와 다른 견해와 주장은 그릇된 것이라고 배척하는 취사선택取捨選擇은 인욕바라밀을 수행하는 보살의 분상分上에 위배違背되는 것이다. 불이익不利益과 비난과 고통이 핍박하더라도 열린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로 상대에 대한 존중을 포기하거나 잃지 않는 것, 자존自尊의 또 다른 방소方所이자 인욕을 실천하는 수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