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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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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원행 2009년 06월 328호
머리가 아프다. 눈도 흐릿해진다. 팔은 축 처지고 다리도 쉬자고 버틴다. 가야포교당에서 아이들과 법회를 보고 해인사로 돌아오면 언제나 이렇다. 법회때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저녁만 되면 두통과 피로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멍해진 머릿속에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데 클래식 음악이 좋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놓고는 헤드폰을 쓰고 누웠다.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을 두려고 노력하니 한결 편안해짐을 느낀다. 바이올린은 경쾌하고도 강렬한 소리로 처진 몸을 부축해주고, 피아노는 보드랍고 따뜻한 손길로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음악과는 팔만유순이나 떨어진 나였지만 그 편안함은 느낄 수 있었던지 이내 단잠에 들었다.
둥둥둥~, 빠바밤~, 리리라~. 여러 악기의 소리가 함께 들리면서 잠이 확 깬다. 너무나 신기하고 감격스럽다. 사실 난 협주곡이나 오케스트라 연주곡을 들어도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주요 멜로디만 들을 줄 알았지 다른 악기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듣게 된 것이다. 어떤 악기는 바이올린의 흐름에 맞춰 화음을 넣어주었다. 다른 악기들도 때론 다 함께 웅장하게 울려주고, 때론 조용히 연주하여 바이올린을 한껏 살려주었다. 지금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서너 개밖에 안 되지만 실제 연주에 사용된 악기 종류는 훨씬 많으리라.
여러 악기가 만들어가는 기적에 푹 빠져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만약 바이올린 혼자라면 어떻게 될까? 북이 혼자만 둥둥 울리면 어떨까? 화음을 넣는 악기도 주음이 없어지면 안 될 텐데. 서로 합쳐 놓으니까 음악이 되네. 이 부분에서 음을 다르게 하면 어떻게 될까? 도미솔은 화음이 되는데 도미시는 왜 안 될까? 악기소리가 망상소리로 바뀌었다가 볼륨이 낮아지면서 잠으로 흘러든다.
화엄세계!
다시 한번 잠이 확 깬다. 잠들려는 찰나에 악기들의 소리가 또렷이 들려오며 화엄세계가 떠오른다. 절대 부정이 공空이라면 절대긍정은 화엄이라 했다. 역할의 경중을 떠나서 서로가 제 역할을 해낼 때 상생의 이익이 있다. 바이올린은 화음과 베이스 등의 도움으로 주선율로서 더욱 풍부해질 수 있고, 다른 악기들도 주선율에 의해 존재이유가 생긴다. 주연, 조연이 없다. 차이만 있을 뿐 차별은 없다.
현실로 사유의 방향을 바꾼다. 사람들 각자가 완벽하다. 각자의 세상이 있는 것이다. 깨닫지 못했기에 누구나 상처가 있으며 서로 어루만져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건들면 싸운다. 바이올린처럼 주도적인 사람도 있고 이름 모를 악기처럼 존재감조차 느끼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들이 서로 인정해주면 클래식 음악처럼 사랑 받을 테고, 비난하고 경쟁하면 휴지통 속에 버려진 악보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화엄세계를 장엄하고 있는가? 아닌 것 같다. 아니다! 불협화음을 낸 일들이 떠오른다. 포교당에서도 그랬구나. 아이들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니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구나. 즐겁게 놀 때조차 신경이 날카로웠나보다. 아이들이 가진 세계의 가치도 어른들과 동등하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자 두통이 사라져간다.
어느덧 일년이 지나버린 일이다. 이제 포교당은 도반스님이 더욱 풍성하게 꾸며가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생소해서 둘 다 나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의 시각을 바꿔주었기에 늘 함께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힘들 때면 여전히 생각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