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목심 건칠 희랑대사상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성보 - 홍성희 2009년 06월 328호
목심 건칠 희랑대사상 해인사의 3대 조사였던 희랑 스님(889~956)은 언제나 남악과 북악의 종취宗趣가 서로 모순이 되어 구
분되지 않음을 탄식하여 많은 갈래를 막아 하나로 환귀되기를 희망하셨던 분으로써 신라 말과 고려 초의
두 왕조에 걸쳐 생존했던 희랑 대사의 생애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대사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
타나는 고려 화엄불교의 대가 균여均如(917~973) 대사의 기록과 최치원의 시‘증희랑화상贈希朗和尙’
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목심 건칠 희랑대사상
홍성희┃ 해인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사
步得金剛地上說 금강 같은 참다운 지혜의 말씀 모아
扶薩鐵圍山間結 미륵보살이 철위산에서 대승경을 결집했네
苾蒭海印寺講經 필추가 해인사에서 경전을 강하니
雜花從此成三絶 잡화가 이로부터 삼절을 이루리. (이하 생략)
이 시에서 최치원은 희랑 대사를 용수보살이나 문수보살에 비겼는가 하
면 하늘이 우리나라를 교화시키려 보냈다거나 부처님으로까지 비견하고
있다. 또한 해인사에 화엄경을 강의하여 화엄종을 크게 떨쳤다는 점을 강
조하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최치원이 해인사에 머문 때는 아마도 900년경
이후였을 것이므로 희랑 스님은 이 당시쯤부터 두각을 나타내어서 10세기경에는 북악파의 조사로 추대되
었을 것이며 아울러 해인사의 제3대 조사로 추앙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에는 희랑 스님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제작한 조각상이 있다. 보물 999호로 조성 연
대는 고려 초 930년경 이전으로 크기는 82㎝이며 목재심에 옻칠이나 직물 지류를 사용하여 조형된 목심
건칠상으로 장삼과 가사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고,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장삼은 목깃이 두 가닥으로
표시되었는데 흰색 바탕에 붉은색 점과 녹색 점이 엇갈리면서 둥근 점무늬를 이루고 있다. 신체에 비해 다
소 머리가 크고 얼굴이 길며 얼굴에는 살아 있는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다.
특이한 것은 희랑 대사의 가슴 한가운데 조그마한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사전寺傳에는 흉혈국인胸穴國
人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구멍은 여름에 모기가 극성을 부려 스님들이 수행에 지장을 받자 희랑스님이 희
랑암에서 자기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들에게 피를‘보시’하여 해인사의 모든 모기가 희랑암에 모여들
었고 다른 스님들이 편안히 정진할 수 있었다는 구전과, 화엄 삼매에서 방광放光을 한 자취라는 구전이 전
해져 내려오고 있다. 희랑 스님은 실제 생존했던 분으로서 희랑대사상 보수 보존처리 작업을 하는 과정 중
에 희랑조사상의 내부구조를 투시하기 위하여 X-ray를 촬영한 결과 지금까지 목조상으로 알려진 것과 다
르게 목재심에 옻칠이나 직물 지류를 사용하여 조형된 목심 건칠상으로 밝혀짐으로 인해 한국에서 유일한
목심 건칠상이자 가장 이른 시기의 불교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의 목심 건칠진영 조각이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품
으로 중국 요遼대에 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일련의 건칠 승려상과의 비교 검토가 요구되는 뛰어난 상像이
며, 그 초상기법이나 불상양식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