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마다 나름의 색깔을 갖는데 율곡사를 보고 있으면 건강한 결실들로 채워진 사과상자를 보고 있는 듯하다. 상자에 담긴 풍요로움이 질서 정연하여 조금만 흐트러져도 표가 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다. 율곡사와 그 주변을 둘러보니, 주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대웅전에 걸린 주인과 똑 닮은 13가지의 청규 중 일부를 옮겨본다.
1. 오계 십계 구족계 십중사십팔계 등 일체 불계를 고의로 어기면 안 된다.
2. 3일 이상 거주를 원하면 팔관재계를 수지하여야 한다. 오후에 불식치 못할 이는 허락 받아야 한다.
3. 매일 1회 이상 예불에 참여하여야 한다. 스님은 반드시 새벽예불에 참석하여야 한다.
5. 정근기도는 나무아미타불로 한다. 이 외의 일로 즐기거나 소일하면 안 된다.
6. 정근기도 외에 큰소리로 말하면 안 된다.
9. 오신채와 고기를 먹거나 음주 흡연 가무를 하
면 안 된다.
10.장신구를 착용하거나 화장품을 쓰면 안 된다.
계율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것으로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것들이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것을 눈여겨보게 되는 이유는 많은 절집들에서 이러한 계율들이 점점 퇴색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규를 통해 절집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이다. 원창 스님과 대화를 하며 느끼게 되는 것은 청규를 내걸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고민들이다. 청규를 만들어 걸고 난 후 부터는 도량이 더욱 청정해졌다고 한다.“방편이라고 말하며 개인의 욕망을 이루려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뜻은 운명이나 필연이아니라 능동적인 것입니다.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또한 무상은 허무주의가 아니지요. 불교 원론이 현실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불교는 철학이 아닙니다.”
원창 스님은 살아 있는 불교를 강조한다. 율곡사는
이렇듯 가까이 있는데, 그 길을 찾는 걸음은 멀다.
재정에 보탬을 얻고자 이름을 불러주는 축원문을 읽는 경우도 없다. 또한 여러 이유를 들어 금전을 모으려는 기도를 부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사찰의 외견도 더욱 정갈해졌으며, 절집 원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다고 전한다. 출세하고 돈을 모으려고 출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절집 경영 상황을 핑계 삼아 바깥사람들이 하는 행태를 좇는 경우를 참으로 많이 보게 된다. 산중 절이 여유롭지 못할 것은 자명한데, 이처럼 맑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으로 풍요로워진다. 율곡사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하여 절집에 맞게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다. 이 또한 그 절집만이 가지는 특징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율곡사는 651년 원효 대사가 창건하였고 통일신라 930년(경순왕 4) 감악 조사感岳祖師가 중창한 뒤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지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다포집계 불전으로 보물 제374호이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불단 위에는 화려한 닫집이 걸려 있다. 그리고 율곡사괘불탱栗谷寺掛佛幀은 보물 1316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로 475㎝, 세로 827㎝의 크기이다. 조선 숙종 10년(1684)에 그려진 이 그림은 화면 아래쪽에 화기畵記가 마련되어 있어 이 그림을 그린 사람과 조선 영조 5년(1729) 중수된 기록까지 확실히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인물의 두 발 사이에 왕과 왕비와 세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글이 있는데, 이는 다른 괘불탱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