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숫물소리에 유월장마도 지나가리라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부처님 오신 날, 해 저무는 것도 모르고 방에 앉았다가 연등불빛이 창호지에 스민 그 불그스레함에 환호한 적이 있다. 조지훈 시인은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 우련 붉어라... 하고 노래했는데 연등불빛으로 절집 창호문이 우련 붉어짐이라니, 그때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변숙현 교장의 한옥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물었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였어요. 늦도록 책 보다가 측간에 다녀오는데 정면 4칸짜리 기와집 띠 살창에 번지는 불빛은 그야말로‘향연’이었어요. 제가 태어나자란 집인데 그런 순간포착은 처음이었어요. 그로 인하여 전통건축으로 전공을 정했고 지금도 남아男兒방에는 띠 살창을 즐겨 답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띠 살의 수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남성적인 기백이 느껴지거든요.”
이렇듯 한옥에는 사색할 수 있는 꺼리가 있고 전통 건축의 철학이 배어 있다.
틀이 없는, 틀이 깨어진...
한낮의 권태로움이 있을 만한 시각인데 강의를 마친 학생들에게서 조용하지만 단호함이 느껴진다. 각자 의미 있는 결심을 하고 찾아왔으리라.
“사실 돌아가라고 종용해본 사람들도 여럿입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 아직 젊은 공직자, 국가기관의 중요인물, IT분야에 어느 역량 있는 이는 결국 한옥학교와 사무실을 왔다갔다하기도 했지요. 종교계의 수행자로 스님, 신부님, 목사님도 여러분 졸업했는데 한옥은 종교를 초월하더군요. 그런데 하나같이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노동을 통해서 삶의 보람을 찾고 건강하고자 하는 마음이 깔려 있지요. 그 힘과 기운들이 한옥학교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한옥학교를 찾은 그이들은 물론이고 우리는 그동안 마음을 너무 혹사시켜왔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쉬게 하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 치유되리라.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라는 영화도 있구요. 유명한 도시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직 텐(magic 10)이 있습니다. 청도한옥학교에 이런 인연들이 찾아드는 데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찾아온 그들은 행복해 하는지요.
“한옥학교에는 얼핏 보면 집짓기와는 관계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컴퓨터를 배우고, 음악회를 열고, 명상을 하고, 특강을 듣고, 답사를 하는 동안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이 열리고, 딱딱한 설계도면에 풍류가 실리기도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헝가리에 한국전통사찰을 짓고자 발원하는 스님도 찾아오고 한옥교회를 준비하는 목사님도 있거든요. 건축은 종합학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옥학교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행복이요? 100% 만족보다는 행복을 만들어가고 챙겨가는 거겠지요. 한옥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말이죠. 티베트에서 온 스님이 무염식과 생식으로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한편으로 자극제 역할을 하기도 하거든요.”
행복을 만들어간다는...그럴지도 모른다. 온전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삶을 경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야트막한 언덕배기의 너와집, 기와집, 팔모정, 육모정에 눈 맛을 키워가고 손맛을 내어줄 온갖 것들이 다정하게 어우러져 있다. 변숙현 교장은 제도권교육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런데 노가다 판이라 할 수 있는 한옥 짓기 현장에서 그동안의 공부가 아깝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그간의 공부가 절름발이더란다. 공부의 근간인 자연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동안 직관력이 생겨나고, 노가다~ 가다가 없는, 틀이 깨어진 노가다 판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고.
부처님 빽이 가장 든든합니다
한옥학교에는 깡통집이라 불리는 컨테이너하우스가 있다. 그 집에 부처님을 모시고 무념정사라는 근사한 당호에다 부처님을 모셔놓았는데 부처님 주택문제가 급선무였다. 며칠 전에 기와를 올렸다니 지금쯤 부처님 이운식을 준비하는 변숙현 교장 얼굴이 꽃처럼 피어나리라. 환희심으로.
그는 집 짓는 것이 수행이었으면 한다. 지난 2003년, 태어나 자란 곳인 청도에 한옥학교를 짓겠다고 터를 고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고난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을까. 불모지에서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이만큼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오직 부처님의 힘, 부처님 빽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어머니 이 세상 뜨시고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49재를 지낼 동안만이라도 적천사 새벽예불을 올려보자 생각하고 내자와 함께 시작했지요. 그렇게 시작한 새벽예불을 49재 끝나고도 100일씩 3번을 마쳤어요. 그러는 동안 이웃들도 동참하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도시로 나가자 재촉하던 아내가 부처님 인연 맺고 남편의 지지자가 되어준 것입니다.”
청도지역 불교행사에 가면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다. 행사 기획자로, 행사 진행자로, 자원봉사자로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불교합창단인 그의 아내까지.
매일 아침 출근하면 무념정사부터 들러 부처님께 예경하고 다라니를 독송한 다음에야 일과를 시작하는 그, 조곤조곤한 말씨에 단정하고 반듯한 모습의 변 교장이지만 그의 내면 가득한 부처님향심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넉넉하고 좋은 심성 가진 사람들이 한옥학교에 함께 하지만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토양이 다르니 격한 마음에 때로는 상하고, 서러움도 있고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한 순간 호흡을 길게 하고 추스를 수 있음은 부처님 법 안에서 함께 함이 아닐까.
나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이제 한옥학교 졸업생들은 어디서건 제 몫을 다하며 후배들을 챙겨주고 학교도 웬만큼 자리 잡은 것 같은데 또 다시 걱정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단다.
글쓴이 최현태(圓音性)는 울산 MBC 아나운서를 거쳐 대구불교방송에서 8년여 포교프로그램을 진행한 프리랜서방송인이다.
문화재위원이나 한국건축역사학회 같은 사회적인 활동도 그렇지만 한옥의 현대화, 대형화, 집단화, 공동화에 따른 신소재 개발이 요즘의 화두다.
하지만 잘 될 것이란다. 내게 어떤 일이 생겨날지 앞질러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무슨 일이 다가오든 감사히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는가.
아직 은퇴라면 이른 감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회향하고 싶은지요?
“좋은 집은 자연과 소통하는, 그래서 방과 방이 나뉘었다가 하나로 통할 수 있고, 햇살과 바람과 새소리를 끌어안을 수 있는 안과 밖이 열리고 닫히는 그런 집이죠. 이런 철학으로 집짓기 교육을 할 겁니다. 그리고 한 10년 후에는 그동안 내 방식의 삶을 요구한 것 같은 가족들을 좀 챙기며, 나도 모두를 놓아버리렵니다.”
한옥학교를 찾아오는 이들이 모두 놓고 오듯이 그렇듯 놓아버리고 자유롭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도! 나도! 하는 인연들이 수도 없이 많으리라.
이제 다가올 장마철, 기왓골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는 잠시 우리에게 자유와 한가로움을 선물하겠지.
비 오는 날, 빗길을 걸어 한옥마루에 한번 앉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