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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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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我의 세상풍경 - 박경희 2009년 06월 328호
부처님께서는 늘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들을 관하며 이를 참회하고 거듭 실천하라고 하셨다. 그것이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이라고도 하셨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내면서 자기 내면의 소리인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 퍼센트나 될까.
지난 4월 16일.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한 기사를 읽고 뭉클함과 부끄러움에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관리실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들어와“양심에 가책을 느껴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흰 봉투 하나를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그 봉투에는 1만원짜리 지폐 여덟 장과 프린트로 출력한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서 이 여성은“2007년 10월부터 12월까지 ○○고속 버스를 타고 평택에서 서울로 출퇴근했다”며“대학 졸업 후 계약직으로 일할 때라 차비가 부담이 돼서 학생이 아닌데도 학생증을 내밀고 할인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그 당시 스스로‘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생각했는데, 깊이 용서를 구한다”며 당시 3개월간 지하철을 탄 날을 빼고, 버스를 탄 날을 계산한 금액, 7만6800원을 담아 자신이 승차했던 버스 회사에 전달했다.“정직하게 살아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이라…. 이렇게 뒤늦게 깨닫고 사과를 드린다”고 써 있었다. (기사 요약)
현실을 살아내면서 이 여성처럼‘이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도덕적 양심을 외면하고 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대인이다. 편리와 이익을 위해 저지른 치졸함과 부도덕이지만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을 저지른 듯 때론 바쁜 현실을 핑계하며 잠시 저지른 실수쯤으로 넘기고 이내 민망함을 잊으려고 한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면 자기 정당성이 없어지고 스스로 정당성을 잃은 삶이라 자책하면 행여 바쁜 현실을 사는 데 의기소침으로 발목이 잡힐까 하는 두려움과 나약함 때문이다. 이 여성 또한 편지 후기에 허약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일단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며 참회 후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 버스 회사를 찾아간 그녀의 용기에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라면 어찌했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실수를 말할 때 사람들은 작은 실수, 큰 실수라는 표현으로 잘못의 경중을 가리면서 책임을 면피하는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일단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솔직함을 잃어버린다. 용기의 부족이다. 때론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잘못을 누군가 지적을 하면 필요 이상의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애써 묻어버린 자신의 잘못을 들춰내는 상대방을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을 괴롭히는 이상한 사람 또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쯤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두가 자기 삶의 명분을 잃지 않으려는 심리적 자기 방어다. 돌아보면 나 또한 명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변명과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궤변을 늘어놓았는가, 심히 부끄러움이 앞선다.
명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회적 명분과 개인적 명분이다. 사회적 명분은 남들에게 칭송받고 존경을 받고자하는 이타적인 자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개인적 명분은 양심에 기준하는 것들로 그 양심은 자아에 대한 성숙도와 비례한다.
특히 사회성이 높아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면에 길들여질수록 이타적 자아는 늘어가고 반면 자기성찰의 시간은 줄어듦을 느낀다. 그로 인해 명분과 실리를 함께 찾아내야만 하는 현실 앞에 기준하는 사회적 도덕과 개인적 도덕이 상충될 때가 많다. 이로써 우리는 매번 선택해야만 하는 고통에 빠진다. 나를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인데 우리라는 조직을 위해서는 잠시 나의 양심의 눈을 감아버려야만 하는 일들 말이다. 그리고 내 양심의 눈을 감아버린 대가는 남으로부터 듣는 화려한 칭송이다.
다시 한번 기사의 주인공인 여성의 얘기로 돌아가 본다. 그녀의 행동은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두 개의 갈등 속에서 개인적 자아, 즉 양심에 손을 들어준 경우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너무나 큰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고 또 어느 누구도 모르고 넘어간 그 일을 두고 다시 사건화하여 마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듯 사람들에게 지난날 자기가 한 일을 들려주며 용서를 구하고 지금의 참회까지 모두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만 했다. 더구나 상대 회사 입장에서는 없던 돈이 생긴 것이니 회계장부에 차질이 나버린 경우이다. 나처럼 전해듣는 뭇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미담으로 들릴지 몰라도 다시 계산해내야 하고 당시의 관리부족을 질책받아야만 하는 몇몇 업무 당사자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정황상 사회적으로는 여러 가지 불편함과 자신의 체면을 구긴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는 이번의 고백으로 삶이 자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조차 홀가분하여 살아가면서 더 큰 용기를 가능케 하는 전환점이 됐을 것이라 짐작한다.
부처님은 모든 게 마음에 있고 마음은 자신을 존재케 하는 것이며 그 존재로 인해 생명의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올곧은 나로부터 출발해야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하셨다. 설령 사회적으로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라도 양심이라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당장의 불편이 결국 커다란 사회적 불신과 모순을 낳게 된다고 본다. 아마 부처님도 이를 우려하여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전부이고 양심껏 실천하는 내가 전부인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신 듯싶다.
무엇을 선택하여 사는가는 물론 개인의 몫이지만 자유롭게 사는 삶은 무엇인가 하고 물을 때 그것은 오직 하나, 바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따라 실천하는 솔직과 용기라 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늘 심한 부끄러움과 기사 주인공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을 함께 느낀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사회적 자아에 길들여진 지난 타성을 벗고 근본 내 마음자리인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결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