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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손을 내미시는 비로자나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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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선주 2009년 06월 328호
3차 1029일 천도법회를 회향하며

오늘 아침도 일주문 양쪽으로 늘어선 노목들의 연둣빛 환영을 받으며, 언제나 금빛 손을 내밀고 계시는 비로자나 부처님 손을 잡고, 대적광전에 인사드린 후 장경판전으로 오른다. 월요일 아침, 수다라장 동쪽 추녀 끝, 풍경소리가 머물다 간 자리에 서서, 가야의 품속에 고이 쌓인 해인사 뒷모습에 젖어드는 잔잔한 기쁨을 맛보며, 새로운 한 주의 햇살을 가슴으로 맞이한다. 저 멀리 산자락을 휘감고 돌다 멈추어선 흰 구름과 가야산의 만남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영롱한 아침 햇살과 연둣빛 잎사귀들의 만남이 눈부시게 찬란한 보석을 홍류동 계곡에 쏟아내고 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어울려 산사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로 울려 퍼져 해인사의 아침을 알린다.
가야산과 해인사의 만남, 해인사와 비로자나 부처님과의 만남, 비로자나 부처님과 팔만대장경의 만남, 이런 만남들을 바라보며 대적광전 지붕 위로 쏟아지는 해맑은 진주알의 행진이 비로자나 부처님 금빛 손 위로 수북이 쌓이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자비로운 모습에 시선이 멈춘다. 이런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 속에, 어느 스님의 책 제목처럼 삼천년의 생을 지나 이 모든 인연들과 만난 나의 만남도 속해 있음에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진한 감동의 의미가 해가 갈수록 더 진하게 다가온다.
삼천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가야산 품속에 고이 안겨 있을 해인사여! 다시 돌아오면 언제나 낯익은 모습으로 금빛 손을 내밀어 환희 반겨줄 것이리라.
해인사 1029일 영가 천도법회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불자들도 이와 같은 마음이리라. 이런저런 인연으로 해인사에 발길이 닿았지만, 우리 모두 부처님의 인연으로 맺어졌기에 해인삼매의 향기로운 법향기를 마실 수 있는 행복한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민 스님의 집전을 시작으로 1, 2, 3차 천도법회를 열어온 지 9년, 해인사의 중심법회로 자리 잡은 천도법회는 2009년 6월 22일 3차 천도법회 회향과 4차 천도법회(2009년 6월 22일 ~ 2012년 4월 16일)를 봉행하게 된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법보종찰 해인사의 영가천도법회는 종단의 큰스님들을 모시고 해인삼매 법문을 이어왔으며, 영가천도뿐만 아니라 불자들에게 바른길을 제시해주는 큰 이정표 역할을 했다. 특히 4차 천도법회에는 49재 때마다 세민 스님이 직접 집전을 하고 염불을 하게 된다.
해인사 천도법회에 참여하여 많은 공덕을 쌓으시고, 열심히 수행중인 보살님들을 모셔서 차를 마시며 천도법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부처님 없다는 소리 못하겠어요
천도법회 1, 2, 3차에 모두 참여하여 공덕을 쌓으신 보살님은, 불교와 인연을 맺은 지 오래된 신심있는 불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을 직접 했던 대구의 연등화 보살님(50세). 23세에 혼자 되신 친정 할머니가 아들 하나만을 위해 모든 인생을 바치며 살아오셨다. 불심이 지극하셨던 할머니는 연로해지면서 틈만 나면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49재를 꼭 지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불심이 없었고 절에 다니는 것조차 싫어했던 아들은 돌아가시면 아무것도 없는데 뭘 그런 것을 해달라고 하느냐며 돈이 많이 든다고 번번이 무시해버렸다.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는 아들을 잡고 적극적으로 부탁을 했지만, 그때마다 단호히 안 된다고 거절하자, 할머니 돌아가시면 제가 49재를 지내 드리겠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할머닌 오직 아들이 지내주길 바랐다. 끝내 거절당하자 할머니는 그러면 49재중 딱 한 번만 지내 달라고 마지막으로 요구했지만 그것마저 거절당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5개월 전부터 아버지 몸에 아무 이유도 없이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저리고 쑤시고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지만, 큰 병원에서는 당뇨로 오는 합병증이라는 진단만 내리고 별다른 처방도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보았지만 치료는 물론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했고, 입원할 필요가 없다며 입원도 시켜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건강하시던 할머니가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잠이 전혀 오지 않아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식사까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어갔다. 날이 갈수록 다리엔 찢어질 듯한 통증이 가해지고,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게 되자 결국엔 몸을 가누고 일어날 수조차 없어지게 되었다.
가족들 모두 할머니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큰 걱정을 하지만, 병원에서도 알 수 없는 병명 때문에 별다른 대책도 방법도 찾을 수 없어 그저 막막하게 애만 태우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주위에선 아버지가 곧 돌아가신다고 병문안을 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동아들인 아버지였지만 상주 노릇은 물론 장례식에 제대로 참석하지도 못하고 할머니를 모신 납골당에 따라갈 수도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49재를 준비하고 2번째 재를 지낸 후, 아버지의 몸이 신기하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별다른 조치가 없었지만 다리에 통증이 가시면서 잠이 오기 시작하고,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어 스스로 몸을 추스를 수 있는 너무나 신비스런 일이 일어났다. 이런 기적을 몸소 겪고 난 후, 3번째 천도재에는 그렇게 반대하던 아버지도 참석을 했다. 재를 올린 후 스님께 “부처님 없다는 소리 못하겠어요. 내 몸에서 구름 같은 무엇이 회오리바람을 치듯이 돌더니 쑥 빠져나간 후 몸이 신기하게 좋아졌어요” 하면서 마지막 49재까지 모두 참석하게 되었고 몸도 씻은 듯이 완쾌되었다.
어린 아들 하나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가 3, 4년을 계속 할머니 꿈에 나타나 애처롭게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사라지기를 반복해서 천도재를 지냈더니, 그 이후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셨고 그때부터 독실한 불자로 살아오셨던 분이다. 3개월을 병원에 누워 계시면서 눈을 뜨지 못하셨던 할머니가 휴대용 독송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드렸더니 눈을 한번 번쩍 뜨신 후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조상 천도는 나무뿌리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양복을 입고 꿈에 자주 나타나서 천도재를 지냈더니, 회색 옷을 입고 오셔서 마실 물을 떠주신 후, 어려웠던 모든 일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는 대구의 원만심 보살님(82세).
조상 천도는 나무뿌리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잎에만 물을 주면 잠시 파릇한 기운이 돌다가 금방 시들어 버리지만, 뿌리에 물을 주게 되면, 줄기와 잎이 모두 무성하게 자라듯이 조상을 모시는 천도재는 나무뿌리에 물을 주는 것이므로 지극정성으로 모셔야 한다. 자식에게만 잘하고 부모나 조상에게 못하면 나뭇잎에만 물을 주는 격이다.
자식들을 위한 나의 기도는 돈 많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자식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상사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절에만 찾아다닌다고 기도가 성취되고 보살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자신이 부처임을 바로 알고, 내 안의 부처를 끄집어내야 한다. 내 마음과 행동이 곧 부처다. 자신이 부처 행세를 못하기 때문에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이고, 내 마음을 부처처럼 쓰지 못하기 때문에 내 부처를 두고 다른 부처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부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마음 밖에서 자꾸만 부처를 찾으려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먼저 인지하여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소욕지족하는 자세로 일심불란이 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다란 욕심만 움켜쥐고 놓을 줄 모른다면, 영원히 만족은 느끼지 못하고 갈증에 허덕이는 삶이 되고 만다. 수천도의 높은 온도 속 뜨거운 용광로에서 쇠가 녹아내리듯, 뚜렷한 원을 세우고 잡념과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심불란이 되어야만 기도가 성취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 바로 살아야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으며, 부러움도 두려움도 없이 당당해질 수 있다. 나는 그 당당함으로 극락세계를 찰나에 가야 한다는 원을 세우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선으로 하루 5시간 이상 수행한다. 이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저절로 춤이 나와서 두둥실 춤을 추기도 하며 흥에 겨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용탑선원에서 30년 기도하고, 원당암 선방에서 20년을 참선 수행했으며, 지금은 청화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나무아미타불 염불선으로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어려운 시절, 정말 어렵게 살아왔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지금 자신이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 꿈만 같기도 하고, 아무런 부러움 없이 생활하고 기도할 수 있는 부처님의 가피에 한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수행을 이어갈 것이다.
하느님 맘대로 하소, 나를 죽이려면 죽이고...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왕성한 활동으로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주도했으나,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고 몰락 지경까지 갔다는 대구의 관세음 보살님(54세).
독실한 모태신앙으로 온 가족이 오직 하느님밖에 모르고 살아왔지만, 갑자기 온 집안의 형제들에게 온갖 어려움과 고난이 겹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삶에 지쳐가면서도 하느님만 찾아 열심히 기도하며 좋아지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돌아가신 아버지가 엄마와 언니 꿈에 자꾸 나타나 무엇을 요구했으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내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들 방에 들어가 누워버린 꿈을 꾼 후, 우연히 친구를 따라 절 구경을 가게 되었는데,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 짐을 느꼈다.
기독교와 불교는 극과 극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묘한 느낌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그런 편안함에 매료되어 다음에도 절에 가면 나도 좀 데리고 가라고 친구에게 부탁하곤 했다. 자신도 모르는 편안함에 이끌려 절에 가긴 했으나, 부처님께 절하는 친구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다볼 뿐, 자신은 우상에 절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워서 뒤에 앉아만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절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의 동요를 느꼈으나, 두려움이 앞서 얼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편안함을 주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부처님께 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큰 용기를 내어 친구를 따라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남동생 역시 교회에서 전국 청년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기독교 활동에 전국적으로 참여하며 적극적이고 아주 모범적인 기독교인이었으나, 크게 하던 사업을 실패하게 되고 거처를 서울로 옮겨 재기를 노렸지만, 아내에게까지 외면당하고 남은 재산까지 모두 잃어버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져 헤매던 동생이 가족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온 가족이 매달려 구하긴 했지만 그런 행동이 수차례씩 반복되자, 오직 하나님밖에 모르고 살았던 친정어머닌 “하나님이고 뭐고 다 버려야 된다. 자식이 너무 힘들어 죽는다는데 보호도 못해주는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냐”고 울분을 터트리며 평생을 하나님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자신을 한탄하며 울부짖었다.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하며 험난한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동생도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차츰 안정을 얻게 되자 개종의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만 목숨을 바꾸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가슴 속으로 스며든 법향기에 이끌려온 새로운 생명력을 보시고 부처님의 따뜻한 손길로 동생의 손을 잡아주셨다.
부처님 손을 잡게 되면서 생각했다. 아버지가 뭔가 아쉽고 원하는 것이 있어서 허름한 모습으로 가족들 꿈에 자꾸 나타나는 것이겠지? 아버지가 오고 감에 상관없이 교회 다닌다고 그동안 제사 한번 지내지 못했으니, 죄송한 자식의 마음과 부모에 대한 도리로 형제들을 설득하여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주위의 권유로 조상을 위한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고, 천도재를 지낸 후 늘 허름한 옷을 입고 누워 있거나 근심어린 얼굴이던 아버지가 깨끗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밝은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다가 이제 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꿈을 꾼 후, 집안이 안정되기 시작하여 형제들 모두 자기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수십년의 세월 동안 교회에서 많은 설교를 들으며 이치와 논리에 어긋나고,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모태신앙으로 자랐기 때문에, 전혀 내색하지 못하고 인정하는 척하면서 신앙생활을 지속해야만 했던 자신이 불교로의 개종은 정말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다. 기독교에서는 큰 징계나 벌을 받는다고 배웠기에 정말 두렵고 무서웠으나, 절에만 가면 이상하리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때문에 살아 있을 때 즐겁고 편하지 않으면 죽어서 보장 받은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앞서 ‘하느님 맘대로 하소, 나를 죽이려면 죽이고... 그래, 죽이면 죽지 뭐.’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부처님 곁에 본격적으로 다가서게 되었다.
49재를 지내고 인터넷에서 해인사 영가 천도재에 대한 안내를 접하게 되어, 2차 천도법회부터 참여하게 되었으며,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움직이고 만물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던가? 그때부터 모든 집안이 안정을 찾게 되었고 부처님께 기도하면 애쓰고 하는 것만큼, 절실한 만큼, 가피를 입는 것임을 체험했다. 지금 부처님과 인연이 닿지 못했다면, 다음생에 이런 고통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그러기에 늦게나마 부처님 손을 잡을 수 있었고, 특히 해인사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음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불법의 진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매일 3시 30분에 일어나 새벽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며 남을 위한 봉사가 곧 기도라는 생각으로 모든 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하여 참여하시는 온화한 인품을 지니신 한마하성 보살님(85세). 천도법회 참석을 위해 9년 동안 대구에서 해인사까지 매주 택시를 태워드리는 지극한 효성을 지닌 따님을 두고 계신다.

9년 동안 항상 설레는 가슴으로
해인사를 다니시며 천도법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다는 부산의 법용해 보살님. 매주 일요일 밤이면 내일은 해인사를 간다는 생각에 어린아이들이 소풍 가는 것처럼 마음이 들떠서 잠을 설친다.

남편의 신장 이식 수술로
해인사 천도법회와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는 대구의 무등심 보살님. 자신을 위한다는 욕심에서 해인사 천도법회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진정한 불법의 진리와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바른 공부를 지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하루 살았다’는 말은‘하루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또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총무원 재정국장 원철 스님(카페 http://cafe.daum.net/wcmunsu)은“천도재는 단순히 천도재가 아니라 연기의 세계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알게 되는 수행의 자리가 될 것이며, 공간을 달리하는 세계에서 모두가 잘살 수 있도록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원하고, 더불어 나의 수행공덕을 함께 쌓아가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영가천도가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덕과 지혜가 부족한 중생이기에 불법의 진리로 이르게 하는 다른 하나의 길, 즉 방편인 것이다. 해인사 천도법회가 사람에 따라 불법의 진리로 가기 위한 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고, 국도가 될 수도 있으며,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는 지방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각자의 그릇과 인연에 따라 어떤 사람에겐 징검다리이며, 어렵게 건너가는 외나무다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천도법회를 어느 길에서 만나든 불법의 진리의 길로 안내하는 연결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힘만으론 어쩔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마주칠 때가 수 없이 많고, 이루고 싶은 소망들도 한없이 많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으로 시작된 욕심을 채우기 위한 천도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효도하는 마음과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천도법회가 되어야 한다.
욕심을 벗어난 순수한 마음만이 불법의 진리에 다가서서 진짜 보석을 찾을 수 있지만, 더러는 욕심에 가려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으며, 보석을 발견했으나 보석인 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몫은 모두 천도법회에 임하는 자신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지 않을까? 갈길 잃고 방황하는 영가를 좋은 세상으로 인도하려면 나 역시 불법의 진리를 바르게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해인사 천도법회는 나와 내 주변을 다스리는 중요한 수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