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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불行佛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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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물결소리 - 월호/쌍계사승가대학교수 2009년 06월 328호
행불行佛하세요 ‘콸 콸 콸’흘러내려가는 계곡물이 정말 반갑다. 겨우내 쫄쫄 흘러내리던 시냇물이 오랜만에 쏟아진 빗물로 인해서 엄청 풍요로워졌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던 물고기들에게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군데군데 웅덩이에 오글오글 모여서 연명하던 물고기들이 안쓰러웠는데, 이제 어디든 갈 수가 있게 되었다. 마음대로 오고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자유다. 소통의 자유, 물고기의 자유, 마음의 자유. 넉넉히 흘러내려가는 물결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넉넉해질 때, 비로소 소통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도, 혈액도, 돈도, 인간관계도 소통이 잘 되어야 건강해진다. 아름다워진다.
특히 새벽에 좌선을 하고 앉아 있노라면 계곡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갖가지 새소리와 더불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연이 내는 최상의 화음이다. 계곡물소리는 베이스로 계속 깔리고 이런저런 새소리는 화음을 만들어낸다. 자연의 하모니야말로 진정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좌선시간이야말로 소통의 시간이다. 소리를 듣고,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으면서 자연과 소통하고 마음과 소통하고‘나’와 소통한다.
공양을 마치고 국사암에서 쌍계사로 통하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학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새벽에 이 길은 적적하다. 상큼한 공기가 싱그럽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홀로 걷다보면 스스로를 느끼게 된다. 나 자신의 발자국소리, 숨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변화하고 소통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다만 걸을 수 있음에 무한히 감사한다.
경전공부 또한 소통이다. 천년 전, 혹은 오백년 전에 만들어진 글귀를 들여다보며 선지식의 가르침과 소통한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원칙들이 있음에 사뭇 경이롭다. 인간살이의 형식이야 수시로 바뀌고 달라졌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이나 진리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진리로 향하는 방식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국사암으로 돌아오니 부산으로부터 많은 불자님들이 왔다. 소통하기 위해서다. 섬진강과 소통하고 지리산과 소통한다. 국사암과 소통하고 월호와 소통한다. 최근에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아예‘행불어록 10선’과‘행복창조 10원칙’을 만들어 복사해서 배포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해주고 나면 대체로 흡족해한다.
불자의 목표는 성불이다. 하지만 성불은 행불로부터 시작된다. 말로만‘성불하세요’해서는 성불의 길은 요원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불하기 시작할 때 성불에 성큼 다가선다. 그 비결이 바로‘행불行佛어록 10선選’이다.
1.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2. 고정된 실체로서의‘나’는 없다. 바로 지금 여기서 나의 행위가‘나’다.
3. 텅 비었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 내 작품이다.
4. 바로 지금 여기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완전 연소하자.
5. 인因도 충실하고 연緣도 충실해야 과果가 충실하다.
6. 수행은 연습이요, 생활이 실전이다.
7.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8. 나도 방생放生하고 남도 방생하자.
9. 부처님 덕 보려 말고 부처님이 내 덕 보게 하자.
10.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
첫 번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명확한 진리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고만 있지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콩 심어놓고 팥이 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팥 심어놓고 콩이 나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고 또 빈다. 요행수를 바라고 기적을 바란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기적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인과를 믿는 것이다. 콩을 수확하려면 콩을 심고, 팥을 수확하려면 팥을 심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무아설과 공사상이다. 역시 불교의 핵심사상이다. “고정된 실체로서의‘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나’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무아설의 핵심이다.“텅 비었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 내가 선택한다. 내 작품이다”는 것이 공사상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자면 불교야말로 진정 역동적이며,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임을 강조하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아홉 번째,“부처님 덕 보려 말고 부처님이 내 덕 보게 하자”는 구절에 이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처님 덕분에 이나마 살고 있는 것이다. 불보살님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인간의 몸 받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금생에도 엄청난 덕을 입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구걸은 이제 그만, 지금부터라도 부처님 은혜에 만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갚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어릴 적이나 아주 어려울 때는 구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걸만 하다가 가서는 안 될 것이다. 구걸하는 마음 연습하면 거지종이 되고, 베푸는 마음 연습해야 부자주인이 된다. 거지종이 될 것인가, 부자주인이 될 것인가? 내가 선택한다. 내 작품이다.
소통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간에 흘러 통하여야 한다. 부처님과 소통하려면 이제 그만 떳떳한 마음을 연습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복전함에 돈을 넣으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부처님, 용돈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