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거화상廉居和尙은, 가지산문迦智
山門의 개산조 도의선사의 법을 이은
제2조로 주로 설악산 억성사億聖寺에
머물면서 선법의 포교에 힘썼고 보조
선사普照禪師 체징 體澄에게 법맥을 전
하여 가지산문을 대성시킬 수 있는 기
반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
게도 염거의 행적은 그 제자인 체징의
탑비에 간략히 기록되어 있을 뿐이고,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러
나 1914년에 강원도 원성군 지정면 안
창리에서 부도를 옮기는 과정에서 탑
지塔誌가 발견되어 그 부도가 염거화
상의 부도임을 알게 되었고, 그 건립
시기가 844년이라는 사실도 밝
혀졌다. 현재로서는 염거
화상의 부도가 그 주인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오래된 것이다.
염거화상의 부도와 같은 형태를 팔각원당형
부도八角願堂形라고 한다. 부도는 기단부基壇
部와 탑신부塔身部, 상륜부相輪部의 세 부분으
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기단부와 탑신부의 평
면이 기본적으로 팔각형이라는 뜻이다. 기단부
는 다시 하대석下臺石, 중대석中臺石, 상대석上
臺石으로 나눌 수 있다. 염거화상 부도를 보면
전시용 석재 위에 올려져 있는 가장 아랫부분
이 하대석인데, 팔각형의 하대석에는 각각 형
태를 다른 사자를 새겼다
하대석 위로는 3단의 얕은 층이 있는 것이 보
이는데, 이를 중대석 받침이라고 한다. 중대석
은 안상眼象이 새겨진 부분이다. 안상 안에는
향로, 꽃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안상 위쪽으로
다시 3단의 얕은 층이 있는데, 이를 상대석 받
침이라고 한다. 받침은 이처럼 서로 구별되는
요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한 부분을 가리
킨다고 할 수 있다.
3단의 받침 위가 상대석인데, 이 부분은 연꽃
이 핀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홑겹으로 된 연꽃
이 세 줄로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줄
의 연꽃은 어긋나게 배열되어 있는데, 꽃잎이
가장 많이 보이게 배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 사이에 서면 많
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찍을 수 있는 것과 마찬
가지 원리다. 그렇게 하면 뒷줄에 서있는 사람
은 얼굴만 보이는 것처럼, 셋째 줄의 꽃잎은 윗
부분만 살짝 보인다. 이렇게 홑겹으로 된 연꽃
잎이 위로 피어있는 것을 단판앙련單瓣仰蓮이
라고 한다. 판瓣은 꽃잎이라는 뜻이고 앙仰은
위로 바라본다, 우러러 본다는 뜻이다. 이와 달
리 두 겹으로 조각된 꽃잎은 복판複瓣, 꽃잎이
아래쪽으로 쳐지게 조각한 것은 복련伏蓮이라
고 한다.
상대석으로 연꽃으로 장식된 부분 위로는 부
도에서 가장 중요한 탑신부를 받기 위한 탑신
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먼저 2층의 받침이 있
고, 그 위로 다시 안상이 조각된 부분, 1층의 받
침이 이어져있는데, 이 부분이 모두 탑신받침
이다. 안상에는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렇
게 여러 받침과 조각으로 탑신을 받은 것은 그
만큼 탑신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도의 탑신부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마찬가지 기능을 한다. 그래서 탑지에서 보이
는 것처럼 이름도 염거화상탑廉居和尙塔이라고
하였다. 소중한 것이 들어있는 만큼, 집 안으
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손잡이와 큼직한 자물
쇠가 달려 있다. 문은 앞 뒤로 조각되어 있다.
앞ㆍ뒷문의 좌우에는 사천왕상이 자리하고 있
다. 사천왕은 흔히 사찰을 수호하는 존재로 생
각하기 쉽지만, 원래 세상의 중심에 있는 수미
산을 수호하는 존재이자, 불법을 수호하고 불
법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지켜주는 이른바 수호
신이다. 흔히 불탑에도 인왕상이나 사천왕상이
조각되는 것처럼 승탑인 부도에도 사천왕이 조
각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옥개屋蓋는 흔히 볼 수 있는 기와지붕의 모습
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팔각형의 지붕이기 때
문에 8개의 우동隅棟(귀마루, 지붕면이 서로 만
나는 곳)을 표시하였고, 그 끝에는 동물상과 같
은 것을 조각하였다. 서까래 아래로는 한 칸씩
건너서 비천상을 조각하였다. 이처럼 부도는
규모는 불탑만큼 크지 않지만, 만드는 정성과
섬세한 조각은 불탑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기단부와 팔각형 원당을 결합한 도의선사의 부
도와 달리, 염거화상의 부도에 이르면 전체를
팔각형으로 설계하는 원리가 성립된다. 이러한
형태의 부도는 이후 나말여초 부도의 기본적인
형태로 계승된다.
서당 지장
염거의 스승 도의는 서당西堂 지장智藏의 법
을 이었고, 염거의 법은 체징으로 이어졌다. 또
한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창한 홍척洪陟, 동리
산문桐裡山門을 개창한 혜철慧徹 역시 서당
장의 법맥을 이었다. 그런데 서당 지장을 필두
로, 사굴산문을 개창한 범일梵日의 스승 염관鹽
官, 성주산문을 개창한 무염無染의 스승인 마
곡麻谷, 사자산문을 개창한 도윤道允의 스승 남
전南泉, 봉림산문을 개창한 현욱玄昱의 스승 장
경章敬 등은 모두 마조 도일의 문하다.
그러나 마조와 서당, 서당과 도의, 또 도의와
염거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 길이 없
다.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짐작
할 수 있는 단서는 얼마든지 있다. 서당이 다른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또한 마조와 서당이 나
눈 이야기, 서당의 스승이었던 마조의 이야기
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속인이 서당 선사를 찾아와서 물
었다.
속인 : 극락과 지옥이 있습니까?
서당 : 있지.
속인 : 불보, 법보, 승보는 있습니까?
서당 : 있지.
그밖에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모두 있다고
대답했다.
속인 : 묻는 것마다‘있다’고 하시면 틀리
지 않습니까?
이에 선사가 되물었다.
서당 : 그대는 전에 다른 스승에게 배운 적
이 있는가?
속인 : 예, 저는 경산선사에게서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서당 : 그래, 경산선사는 그대에게 뭐라고
가르치던가?
속인 : 경산선사께서는 모든 것은‘없
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선사는 다시 물었다.
서당 : 그대는 처자식이 있는가, 없는가?
속인 : 아내와 두 자식이 있습니다.
서당 : 경산 선사는 아내가 있든가 없던
가?
속인 : 없습니다.]
서당 : 그것 봐라. 경산선사가 ‘없다’고
한 것은 맞는 애기가 아니냐.
이에 속인은 문득 깨달음을 얻고 절을 한 뒤
물러났다.
마조 도일
서당 지장의 스승인 마조 도일은 다시 남악
南岳 회양懷讓의 제자다. 이 남악과 마조의 대
화는 선문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땅의 부
도가 지니는 의미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최
소한 남악과 마조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악 : 스님은 좌선하여 무엇을 하려는 거
요?
마조 :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남악 :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 들
고 숫돌에 갈기 시작하였다.)
마조 :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려는 것
입니까?
남악 :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마조 :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남악 :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
면 좌선을 한 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마조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악 : 소수레에 멍에를 채워 수레가 가지 않
으면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
려야 옳겠는가?
마조 : ----
남악 : 그대는 앉아서 참선하는 것(坐禪)을
배우느냐, 앉은 부처(坐佛)를 배우느
냐. 좌선을 배운다고 하면 선을 앉거
나 눕는 데 있지 않으며, 앉은 부처
를 배운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묾이 없는 법에서
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
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
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
착한다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
이다.
마조 : (절을 하며) 어떻게 마음을 써야만 모
습없는 삼매(無相三昧)에 부합하겠습
니까?
남악 :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배움은 씨
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요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 같다. 그대의 인연이 맞았기 때
문에 마침 도를 보게 된 것이다.
마조 : 도가 모습(色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남악 :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
으니, 모습 없는 삼매도 그러하다.
마조 : 거기에 생성과 파괴가 있습니까?
남악 : 생성이나, 파괴, 모임과 흩어짐으로
도를 보는 자는 도를 보는 것이 아니
다. 나의 게송을 듣거라. “심지는 모
든 종자를 머금어, 촉촉한 비를 만나
면 어김없이 싹튼다. 삼매의 꽃은 모
습이 없는데, 무엇이 파괴되고 또 무
엇이 이루어지겠느냐.”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마조는
“각자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믿도록 하라.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부처님 말씀은 마음으
로 으뜸을 삼고, 방편없음(無門)으로 방편(法門)
을 삼는다. 그러므로 법을 구하는 자라면 응당 구
하는 것이 없어야 하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으며,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楞
伽經).”라고 하였다. 육조-남악-마조-도의-염
거로 이어진 가르침. 부도는 바로 이러한 “심즉
불心卽佛”의 가르침이 우리 땅에 전해지면서 피
어난 꽃이다.
필자 이근우 교수는 현재 부산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학자로 서울대학교와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