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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요가 수행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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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 John Park 2008년 12월 322호
메누힌과 아헹가 만약 이 글의 제목이 당신의 눈길을 끌었다면, 당신은 아
마 21세기가 불교신자들에게 신나고 흥미진진하면서도 동
시에 혼란스러운 시기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동방과 서
방, 과거와 현재,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낡은 경
계선은 이제 사라졌다. 아시아의 어느 도시에서든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고, 미국 거의 모든 도시에서 태극권을 배울 수
있다. 스트레스에 찌든 CEO들과 과학자들은 참선수행을 하
고, 스님들은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이메일(E-mail)을 이용
하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조용한 산간의 사찰에서 홈스테이
를 경험하러 휴가를 내는 불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
들은 이 같은 시대적 변화를 서둘러 받아들이고 한 번도 안
면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예불을 드리는 경우
도 있다.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든 간에, 우리는 더 이상 과거
의 불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되
는 것이다. 어떤 규칙들을 고수해야하며 또 어떤 것들을 바
꿔야 하는 것일까.
위와 같은 질문에 유일한 답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현재
우리가 속한 경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한 20세기의
두 인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는 있다. 당신이 요가를 하는
동안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불자라면, 그 두 인물 중 한 사
람이 바로 미국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거의 60년 전
인도요가를 세계에 알린 예후디 메누힌(Yehudi Menuhin)이
라는 사실에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예후디 메누힌은 191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3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7살의 나이에 그의 첫 번째
솔로 바이올린 공연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San Francisco
Symphony)와 협연했고, 10살이 될 무렵에 그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대열에 올라서 있
었다. 1929년 독일 베를린에서 메누힌은 바흐, 브람스, 베토
벤 등 세 개의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당시 그 공연을 지켜보
았던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나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한편 성인기에 이르러 메누힌은 인도주의적 운동을 지지
하고 나선다. 2차 세계대전 중에 그는 연합군을 위해 500번
의 연주회를 열었고, 후에는 독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갓
해방된 수용자들을 위해 연주했다. 그러나 바이올린 연주에
치명타를 입힐 정도의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그가 치료를 받
기 시작한 것 또한 이 시기 즈음이었다.
그러던 1951년의 어느 날, 순회공연차 뉴질랜드에 머무르
고 있던 그는 치료를 받기 위해 접골사(接骨師)의 사무실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메누힌은 하타 요가
에 관한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표현에 의하자면, 이
것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 만남”이었다. 그는 후에 이렇
게 회고한다. “그 때 나는 우연히 오래된 수수께끼를 풀어
줄 열쇠를 발견했다. 그것은 내 능력을 알게 해주고, 내가 자
라고 교육받은 과정에서 결여된 신체적 안정과 완화를 도와
주며, 바이올린연주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열쇠였다...” 그는 즉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1952년, 당시 인도의 수상이었던 네루(Nehru) 수
상은 인도 자선음악회 순회공연을 위해 메누힌을 초대, 메누
힌은 인도로 향하게 된다. 처음으로 인도에서 네루 수상을
만난 메누힌은 그가 읽은 요가 책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러
자 네루 수상은 미소를 짓더니, 물구나무서기를 해보지 않겠
느냐고 했는데 메누힌은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해 모두를 놀
라게 했다. 이에 네루 수상도 그의 물구나무서기 솜씨를 자
랑했고, 집사가 저녁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리려고 왔을 때는
수상과 바이올리니스트 모두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였다. 이
일화는 인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인도 방방곡곡의
요가 지도자들이 메누힌을 가르치겠다고 나서게 되었는데,
아헹가(B.K.S. Iyengar)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아헹가(Bellur Krishnamachar Sundararaja Iyengar)는
1918년 인도 카르나타카 주(州)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
났다. 아헹가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당시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런 환경은 아헹가를 병약한 아이로 만들었고, 9
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헹가는 어린 시절 줄곧 영양결핍을 비
롯해 많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자란다. 15살이 되면서 아헹가
는 이름난 요가 수행자인 매형(妹兄)과 함께 살게 되는데, 그
곳에서 아헹가는 요가를 배우고 그의 질병들을 극복할 수 있
게 되었다. 1937년 아헹가는 사람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기 위
해 뿌네(Pune)지방으로 떠난다. 그는 요가지도자로 왕성하
게 활동했고, 여전히 가난했음에도 요가 지도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인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1952년 인도에서 메
누힌을 치료하고 있던 의사의 아내는 아헹가의 학생이었는
데, 그 부인이 아헹가에게 메누힌의 치료를 도와달라고 부
탁하기에 이른다.
아헹가는 메누힌을 만나기 위해 7시간이 걸리는 먼 길을
나섰다. 아침 7시, 단 5분 동안의 요가 레슨을 위해서였다. 5
분은 메누힌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 짬을 낼 수 있는 최대한
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메누힌은 항상 피곤하고 긴장을 풀
수가 없으며, 잠을 잘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1분도 채 지
나지 않아, 아헹가는 메누힌을 꾸벅꾸벅 졸게 만들었다. 메
누힌에게는 수 일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일 이후로, 메누힌은 아헹가의 제자가 되었다. 아헹가
에게 훈련 받으면서 메누힌의 병은 사라졌다. 메누힌은 그의
요가스승을 유럽으로 초대해 요가를 가르칠 수 있도록 했고,
그로부터 몇 년 뒤 세계 곳곳에서 아헹가를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나 여러 나라에 요가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아헹가는
1966년 <아헹가의 요가 디피카: 육체의 한계를 넘어 (원제
Light on Yoga)>라는 책을 출판하였고, 이 책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요가의 바이블”로 불리며 17개국 언
어로 번역되었다. 후에 그는 타임 매거진(Time Magazine)에
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남은 일생동안, 아헹가와 메누힌은 비슷한
인생행로를 걸으며 우정을 유지해 나갔다. 두 사람 모두 학
교를 세우고 책을 쓰며 사회복지사업을 지지했고, 세계를 누
비면서 제자들을 키워냈다. 메누힌은 1999년 타계했으나 아
헹가는 여전히 그의 가르침과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21세기의 불자들이 위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
일까? 우리는 어쩌면 혼란스러운 새 트렌드 안에서 자신과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여러 일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우리를 더 나은 불자로 만들어주는 그런 일들
을 고수할 수도 있다. 문화와 직업상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
고 메누힌과 아헹가는 각자의 소명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길로 서로를 이끌어주었다. 메누힌을 통해서 아헹가는 전에
는 상상도 못했던 규모로 요가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마
찬가지로 아헹가는 메누힌을 더욱 더 위대한 음악가로 만드
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요가는 바이올린 연주의 기술을 의
식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나를 도와주었다”라고 메누힌은
말했다. 그는 심지어 아헹가를 일컬어 “내 생애 최고의 바
이올린 스승”이라고 했을 정도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기적적인 일을 달성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82년 메누힌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발
족 100주년 기념 콘서트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초청되었
을 때, 메누힌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첫 소절을 물구나
무 선 채 발로 지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