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 집에서 행자는 예비 출가인으로 스님들을 모시고 후원 살림을 도우며 사찰의 다양한 문화와 수행자로서의 기본적
인 덕목을 배워나간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이 인욕과 하심 수행으로 온갖 궂은 일을 해내며 자신의 출가심이 어느
정도 절실한 것인지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 또한 이 시기, 자기 점검 과정을 통해 수행자로서의 오
늘을 살 수있게 되었으니 나의 행자시절은 내 삶을 변화시킨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으로 추억되고 있다.
내가 출가한 곳은 관음암으로 전남 광주 무등산
기슭에 자리잡은 조그만 암자이다. 그 곳에는 서화
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도인으로 통하는 성
지 효 智曉 스님 ┃ 해인총림 율원장
호性淏 스님이 계신다. 스님은 나의 출가 은사이자
출가 전, 나에게 서예를 사사해 주셨던 예술적 스
승이셨다
성호스님은 한 때 국전에 당선될 정도로 서예가
로서도 명망이 높으신 분이지만 그 모든 것은 수행
생활을 돕는 재미일 뿐 늘 산사에서 조용히 홀로 삶
을 즐기시며 정진을 하고 계신 전형적인 수행자이
셨다. 특히 사람간의 번잡스러움을 멀리해 지금까
지도 행자는커녕 공양주조차 두지 않고 혼자서 조
석공양을 끓여드시니 그 단아한 모습이 나에게는
늘 커다란 감동이 되곤 했다. 또한 여리고 고운 성
품을 타고 나셨기에 아무리 괴로워도 남에게 짐이
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을 못하시다보니 가르치고
시봉받는 당연한 절 집 생활도 익숙치 않은 스님이
셨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첫 번째 행자요 마지막
행자였다. 돌아보면 나의 출가를 받아주신 것만으
로도 스승의 큰 사랑이요, 행자로 살던 지난 2년.
그 사랑으로 내 스스로 출가심이 된 예술을 마다하
고 공부에 빠져들어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스님 계
신 관음암의 이름 그대로 성호스님은 나에게 오신
관세음보살이 아니었나 싶다.
어릴 적 나는 꽃가꾸기를 좋아하고 하루종일 화
선지를 놓고 붓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놀았
다. 그러다보니 커가면서도 담장 밖을 나가는 시간
이 적었고 자연 소극적이고 조용한 청년으로 자라
났다. 부모님들은 그런 나를 여간 걱정스레 바라보
시는게 아니었다. 오남매 장남인만큼 사회에 나가
서 일을 하고 동생들을 챙겨야 마땅하건만 낮이면
마당에 앉아 꽃을 가꾸고 밤이면 화선지 앞에서 붓
과 씨름하며 하얗게 날 밤을 새곤하니 어느 부모가
이를 반기겠는가. 더구나 전국을 돌며 장사를 하실
정도로 활달하신 아버님으로서는 현실감없고 나약
하게만 보이는 맏아들이 눈에 찰 리 없었다. 나는
나대로 부모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
달리면서도 붓을 포기할 수없었다. 하루는 할 수없
이 부모님의 뜻을 따라 아버님 친구 분이 경영하시
는 건설회사에 나가 공사현장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아보기도 했지만 영 의욕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붓을 잡고 앉기만하면 힘이 솟고 밤새 100장이나
되는 화선지 한묶음을 거뜬히 써버릴 정도로 글쓰
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신명이 지폈다. 영낙없이
예인의 업을 타고난 듯 했다.
붓을 잡고 앉아있는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들과
는 달리 스님들은 평소 나의 재주을 무척이나 아껴
주셨다. 그 중 부모님들과 연이 있던 몇몇 스님들
은 의재선생 문하로 인연을 지어주시겠다며 오히
려 더 많은 격려를 해주시기까지 하셨다.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선생은 한국화단의 거목
이자 남종화단의 대가로 당시 내가 살던 남도 땅에
서 많은 문하생들을 기르고 계셨다. 평소 같으면
벌써 따라나섰을 법한 일이지만 무슨 이유인지 나
는 그 쪽으로는 맘이 가질 않았다. 서예를 하고 그
림을 그리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또한 큰 스승
으로부터 사사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
을 잘 알면서도 화가라는 직업으로 화려하게 세상
을 사는 모습에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다. 그
저 조용히 독선생을 만나 붓글씨를 연마하고 그림
을 배우며 호젓하게 자유로운 영혼을 키우는 그런
환경을 찾고 싶었다.
당시 서예에 심취해 있던 나는 관음암을 드나들
며 성호스님에게 개인 사사를 받고 있었다. 가까이
서 지켜 본 스님의 모습은 늘 나에게 부러움을 일
으켰고 그것은 바로 내가 찾던 모습으로 스님 앞이
라면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예
술에 대한 나의 열정까지도 모두 이해받으며 행복
하게 살 수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스님의 그 모든
것을 닮고 싶었다. 그것이 출가의 직접적인 이유였
다. 스물일곱 어느 봄날의 결심이었다.
출가를 며칠 앞두고 부모님께 결심된 바를 말씀
올렸다. 평소 스님들 시봉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절에 올라갈 정도로 신심이 두텁던 두 분인지라 별
다른 반대는 없으셨지만 부모 곁을 떠나는 자식이
기에 서운함만은 역역하셨다. 맏아들인 나에게 유
달리 정이 깊던 어머니에게는“아들 본다고 절을
찾으시면 그나마도 금생에 다시는 저를 못 볼줄 아
십시오.” 일부러 못을 박는 인사까지 올렸으니 지
금 생각해도 참 모진 소리였다.
아버지를 대신 할 장남이라며 내 나이 스무살이
넘고부터는 하대조차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였다.
아버님과 똑같은 대접으로 늘 존중해 주시며 키웠
기에 야박하게 돌아서는 내 모습은 크나 큰 상처가
되셨을 듯 싶다. 그러나 정에 지핀 여린 마음을 그
렇게라도 끊어내지 않으면 모처럼 낸 출가심이 무
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출세간으로 들어서는 날. 어머니는 집을
나서는 나를 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저
사람이 네 살부터 절에 보내 달라고 하더니 기어이
가네”기억도 없는 어린시절, 그저 맛있는 무지개
사탕을 쥐어주시던 노스님들이 좋아 별 뜻없이 내
뱉던 말들을 기억해내시며 어머니는 예고된 숙명
인 듯 그렇게 나의 출가를 받아들여주셨다.
절에 들어 온 나는 누가 시키지않아도 절실한 마
음으로 절집 생활에 부지런을 떨었다. 새벽 2시 반
에 일어나 쌀을 씻고 불을 때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여느 제자가 그리하듯 정성껏 조석공양을
지어 스승을 모셨다. 또한 절집에서는 몸이 힘들어
야 속가에 두고 온 모든 인연들과 번뇌를 내려 놓
을 수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행여 찾아 올 끄달림을
막아보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도량 곳곳을 쓸고 닦았다. 어찌나 마당을 쓸어댔던
지 내가 와서부터는 빗자루가 닳아 형태의 온전함
이 보름을 넘기기 힘들었다. 붓을 다시 들어 본격
적인 수업을 받기 전에 세간의 모든 것을 다 털어
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일을 찾아가며 바삐 몸을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그 많던 생각들은 절로 사라
지고 오늘 내 앞에 있는 일들에 몰입하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스님은 내가 무엇을 하든 그저 묵묵히
바라봐 주실 뿐 말씀이 없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부처님 법을 배우겠다고 발심하여 출가한 행자가
아닌 당신의 재능을 배우겠다고 들어 온 젊은 사람
이다보니 머리만 깍았지 그저 부지런한 속가 사람
하나 있다가겠지 하는 마음이셨을지도 모를 일이
다. 어쨌든 나는 나대로 행자가 하는 그 모든 일들
을 해내며 절 집 사람으로 자연스레 습관을 들여갔
으니 나도 모르게 절로 수행자로서의 면면을 갖춰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스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화단의 잡초
를 뽑는다는게 너무 열중하다보니 그만 꽃나무까
지 죄다 뽑아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또한 시키
지도 않은 일들이었다.
스님이 들어오시다 이를 보시고는“아이고 이
사람아 잡초를 뽑는 것은 당연한 이유지만 꽃나무
까지 뽑아서야 쓰겠는가”아끼시던 화초들이 뿌
리 채 뽑혀 나뒹구는 모습에 크게 안타까워 하셨
지만 더 큰 경책은 않으셨다. 그 후로도 나의 분주
함으로 이런저런 실수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스님
은 내가 무엇을 하든 계속 묵묵히 바라보실 뿐‘하
라, 하지마라’하는 계율에 준한 경책들은 하지않
으셨다. 단 하나 출가 목적이 어디에 있든 머리를
깍은 이상 출가자가 해야 할 도리와 기본적인 배움
에는 게으름이 없어야한다시며 시간을 정해 큰 절
행자들이 배우듯 똑같이 초발심 자경문과 천수경,
염불을 가르쳐 주셨다. 경전공부는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부처님 말씀 하나하나가 어찌나 자상하게
들리는지 한귀절 한귀절이 모두가 마음으로 와 닿
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외곬수로 빠져드는
타고난 열정이 있으니 공부가 빨랐다. 늦깍기 행자
로 시작하여 큰 절 행자들에 비해 공부가 늦을지
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또한 한 몫을 했다. 반야심
경은 이틀만에, 천수경은 일주일만에 다 외고는 다
음날부터 내가 직접 도량석을 돌겠다고 나서자 스
님은 또한 말없이 목탁을 내주셨다. 새벽 도량석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우
리 행자님, 목소리 좋은데.”절집 들어와 스승에게
받은 첫 번째 칭찬이었다. 갓 들어 온 행자가 염불
을 외는 것이니 목소리가 좋으면 얼마나 좋았겠는
가. 그러나 스님은 그 후로도 불경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또한 내가 발심
한 순간부터 스님은 하지 말 것과 해야 할 것에 대
한 가르침을 시작으로 수행자가 지켜야하는 덕목
들에 대해 자상히 일러주셨다. 당시 붓은 놓았으
되 그래도 오래도록 습이 된 예술심은 남아있어 틈
나의 행자시절만 나면 노트에 끄적거리곤 했었다. 이를 보신 스
님은 공부하는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고 지나가며
한마디를 하시는 것을 듣고 난 그 즉시 습관을 내
려놓았다. 뭐든 스님을 따르면 칭찬이 이어졌고 그
것은 좋은 습관으로 몸에 배어 공부에 도움이 되었
다. 또한 어려서부터 숱기없고 소심했던 나의 모
습은 어디가고 부처님 법을 배우는 일이라면 뭐든
지 해보겠다고 나서보는 용맹심까지 생겨났다. 결
국 은사스님의 칭찬은 나를 발심케한 최고의 교육
법이 된 것이다.
어느덧 나로 인해 잠시 깨졌던 관음암의 일상이
다시 새롭게 자리를 잡아갔다.
아침 예불을 마치면 스님께 올릴 공양을 짓고 공
양을 마치면 사시예불 오르시기 전에 스님 드실 약
초즙을 준비하고 소소하게 들어오는 기도며 제사
준비까지 그간 스님이 혼자해오시던 일들을 조금
씩 물려받아 혼자 힘으로 대물림 절 살림을 살아
냈다. 몸은 힘들었지만 수행에 대한 기대가 나에
게 지치지 않는 생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출
가 당시 지녔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점점 까마득한
옛 일로 마음에서 멀어져만갔다. 국내 최고의 독선
생도 모셨겠다 내가 배우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배
울 수있는 붓글씨였지만 붓을 다시 잡고 싶은 마음
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경전에
비해 내가 찾던 예술심은 너무나 부질없는 것쯤으
로 느껴졌으니 나에게도 출가에 대한 전생연은 있
었듯 싶다. 더불어 스승 복 또한 타고난 듯하니 두
루 감사할 뿐이다.
훗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 내가 일반 행자들
처럼 부처님 법을 배우겠다고 찾아들었다면 은사
스님은 어쩜 큰 절로 가라하시고 옆에 두지 않으셨
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평소 드나들며 소일삼
아 가르침을 주셨던 서예제자가 한평생 붓글씨만
쓰며 살겠다고 출가를 빙자해 당신 옆에 살러 온다
니 반은 눈 먼 장님으로 세상을 사는 젊은이에 대한
측은지심이요 반은 큰 부담없이 한시적 인연이란
생각에서 선 듯 받아 주셨을 법도 했다. 그러나 스
님 입장에서는 당신의 조용한 수행을 깨는 객식구
하나가 늘어버린 셈이니 당시 스님은 나를 위해 큰
희생을 하셨던 것이라는 것을 나 또한 공부 욕심이
많은 수행자가 되고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출가란 영원한 자유를 얻기 위한 대장부의 위대
한 포기라고 했던가.
그러나 나의 출가는 순전히 예술에 대한 열정으
로 인해 시작된 것이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수행자
의 위대한 포기란 말 앞에는 다소 옹색한 감이 있
다. 그러나 머리깍은 후 뒤늦은 발심으로 한 때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붓을 스스로 놓아버렸고
그 후 후회없이 외길 한평생으로 공부인의 길을 걸
으니 어쩌면 내 경우 위대한 포기란 말보다는 위
대한 선택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출가 후 2년동안 줄곧 스님을 모시고 살면서 경전
을 배우고 절집에서 사는 습관을 몸에 익히니 그 후
강원에 들어가서는 모든게 그리 수월할 수없었다.
우바리존자의 출가송에도 나와있 듯 행자시절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않은 것을 분간하여 가야할
길만 묵묵히 걸어가는 용기가 무엇이고 지계란 무
엇이며 또 삶의 원칙을 지킴으로서 더 큰 자유를 얻
을 수있다는 계율에 담긴 의미까지 모두 이해하는
시기인 듯싶다. 그로인해 초발심으로 올곧은 수행
을 실천하게되니 이는 부지런한 공부인으로 살아
가는 근기를 만든다. 이 모든 생각이 바로 행자 시
절에 뿌리를 내린다. 나 또한 오늘을 있게 한 뿌리
가 바로 행자시절이었고 눈밝은 공부인의 원을 세
우도록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시며 지금도 나의 운
수행을 지켜봐주시는 은사스님이 계시기에 그 은
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게으름 없는 오늘과 부처
님 법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잃지않고자 노력하
며 달려가고픈 마음을 한 켠에 묻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