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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혜암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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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원각 2008년 12월 322호
원각 스님 가야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천년 암자(신라 애장왕 802년 조성) 원당암願堂庵.
최근에 와서는‘공부하다 죽어라’는 말씀을 남기고 입적하신 혜암慧菴대종사(1920-2001. 대한불교조계종 제
10대 종정과 해인총림 방장 역임)에 의해 국내 최초의 시민선방인 달마선원이 개원되었고 스님, 재가불자 가릴
것 없이 모든 대중들이 함께 참선하는 새로운 수행풍토가 만들어지면서 전국 내노라 하는 선객들이 모여드
는 최고의 수행처가 되고 있다. 현재 이곳을 지키며 혜암대종사의 유훈을 이어가고 있는 분은 해인 총림의
유나, 원각스님(법납 43년. 원당암 감원. 달마선원장). 12월 14일(음 11.17) 혜암대종사 추도 7주기를 맞는 원당암
을 찾아가 그리운 선지식 혜암대종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집 안의 분위기는 주인의 성품을 담는다고 했던가. 가
지런히 깎여 잘 정돈된 정원수와 떠도는 낙엽 한 점 없이
말끔한 마당은 청정 도량으로서의 기품을 더해준다.
영락없는 혜암 큰스님의 생전 모습 그대로이다. 비가
와도 산길 걷는 옷자락에 흙탕물 한 방울이 안 튀길 정도
로 늘 깔끔하게 도량을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우선으로
하셨다는 큰스님. 원각스님은 혜암 큰스님의 두 번째 상
좌로 스승을 가장 오래 모신 제자이기도 하다.
“물론 타고난 성품이 반듯하고 정확하시니까 그렇게도 하
셨지만 더 깊게는 이치와 원칙을 중히 여기신 탓입니다. 수행
처인 도량을 지키는 것이 스님들의 중요한 본분이니 시작은 산
불 방지를 위해 그리 원칙을 정해놓고 마음을 쓰신 겁니다. 경
내 어디든 바닥에 늘어진 물건들이 없고 절 주변 나무들이 없
어야 불이 나도 가람에 옮겨 붙지 않을 거잖아요. 혹시 있을 수
있는 사고를 위해 미리미리 철저하게 대비 하신거지요.”
스승의 이러한 가르침은 그대로 제자에게 이어져 거창 고견사 주지를 살던 시절, 전기톱을 다루다가 행
여 아랫사람이 다칠까봐 주지인 스님이 직접 전기톱을 들고 산판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 당시 고견사는 차도 못 다니는 곳이었거든. 일은 많고 왕래는 불편하니 사람이 다치거나 톱날이 상하면 병원가
랴 시장가랴 산길을 오르락거려야하는 불편들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이 서툰 사람들에게 위험한 톱날을 맡
기질 못하다보니 주지가 직접 톱을 들고 다녀야 했지요.”
스님이 일손 빠르고 정확한 것은 생활에 빈틈없는 스승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빗자루 질을 해도
먼지 안 나게 하는 요령이 있고 걸레질을 해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게 하는 큰스님 나름의 방법들이 있었
다. 그 모든게 지혜로 생각없이 했다가는 그 순간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 밥 먹는 방법부터 일하는 것까지 원칙이 있어. 행자 때는 둘이 바루공양을 했었는데 밥도 딱 떠서 입에 쏙 넣어
야지 행여 밥을 떠서 그릇 가장자리에 묻히면 안 되는 거야. 나중에 바루를 씻을 때 정갈하게 씻겨지지 않거든. 나무
도 그냥 켜면 안 되는 거야. 나이테를 봐서 결이 성근 쪽으로 켜야 힘이 안들고 잘 켜지고 톱날도 안 망가지지. 돌도
깨는 방법이 있어. 밑에가 조금 떠있는 부위를 내려쳐야 힘 안 들이고 톡 떨어지거든. 그걸 모르고 무조건 생각없이
했다가는 멍청하다. 어벙하다...야단이 나시지. 스님 모시는 초기에 내가 늘 듣던 소리였거든.”
그렇게 야단을 맞으며 몇 번을 반복 해보면 스승의 가르침은 모든게 지혜로 습관이 들면 수행하는 삶의 편
리함을 가져다주었고 시간도 절약되니 현실을 살아가는데 효율성이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
록 무조건 믿고 따르
는 마음이 생겨나니
어느새 당신을 닮아
가는 제자가 미더워 마
냥 흐뭇해 하셨다.
“ 어느날은 신도 한 분이 왔는
데 나를 가르키며 요즘 사람 같지 않다
고 칭찬을 다 해주시더라구요. 어찌나 좋은
지 신심이 더 생겨 무조건 스님 하라는 대로만 했지.”
지혜와 법을 두루 갖춘 여법한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것은 부처님 법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귀하
고 감사한 일이다. 스님이 지금껏 한결 같은 선방 수좌로 외길 한평생을 살아올 수 있었던 힘도 바로 스
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일종식과 장좌불와로 두타행을 실천해 오셨던 혜암대종사. 돌아가시는 날까지 눕는 것보다는 앉는게
더 편하시다며 병으로 지친 몸조차도 누이지 않고 의자에 기대어서까지도 선방대중들과 함께 용맹정진
을 하셨다.
\"스님은 늘 참선하고 용맹정진을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또 공부에는 다 때가 있으니 젊을 때 부지런히 공부하라
고도 하셨어요.\"
이 말은 말년의 효봉스님이 돌아가시면서 혜암스님께 당부하신 유지로 원각스님에게도 고스란히 전
달돼 대물림 교훈이 되었다.
혜암 큰스님이 중생제도의 뜻을 펴고자 지난 85년 개원한 달마선원은 옛 선객들의 이름난 수행처였
다는 원당암의 정신을 잇는 곳으로 현재 재가선방으로는 최초이자 최고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곳
이기도 하다.
특히 규모와 시설면에 최고라고 이름이 나면서 동안거, 하안거 용맹정진 기간 중 전국 최고의 재
가‘고수’들이 이곳 선방으로 모여든다. 올해 동안거 용맹정진에도 벌써 400여명이나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하루 8시간 정진과 매주 1, 3주 토요일 법문과 함께 8시부터 다음날 4시까지 실시하는 철야용맹정진,
각 안거 때마다 해제를 앞둔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용맹정진이 달마선원의 \'\'기본\'\' 프로그램이다.
이는 혜암 큰스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이어 온 원당암의 전통으로 아무리 몸이 아파도 큰스님은 신도들 과 함께 철야정진을 하시곤 하셨다. 큰스님 입적하신 후에도 원당암
의 철야 용맹정진은 변치않고 원각스님에 의해 그대로 이어오니 스
승의 유지를 받드는 이유에서다.
아침, 저녁 재가불자 수행자들과 선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올곧
은 수좌로서 그리고 법을 펴는 참선 지도자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원각스님.
“ 내가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울 때도 있지요. 그럼 보살님들이 벌써
은근슬쩍 경책이 옵니다. 큰스님 계실 때부터 용맹정진을 지속적으로 해
오셨던 분들이라 80넘은 노구에도 일주일 철야정진을 하시는데 꺼떡없고
어떨 때는 스님들보다 더 꼿꼿하니 앉아계십니다. 모두가 큰스님의 원력
이고 흔적이지요. 저는 그저 만들어 주신 프로그램을 그대로 지켜갈 뿐입
니다. ”
요즘 원당암에는 처사들도 많아졌다. 대개 사회적으로 안정된 자
리에서 열심히 살아낸 분들이지만 정 년퇴직을 전 후하여 자신의 삶
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건지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이 옵니다. 늙어가는
몸과 변화하는 세상 앞에 자꾸 끄달리는 경계가 있으니 힘이 드신게지요.
그럴 때 참선만한게 없어요 참선은 생사해탈을 극복하는 수승한 방법으로
본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것은 율사처럼 부처님 법에 메이는 것도 아니요
오직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참선을 오래하다보면 생각이 자유롭고 삶
이 활달해집니다. ”
자기의 본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선禪”이라며 환하게 웃
으시는 원각 스님.
“ 나에게서 자유로워야 남에게도 자유로우며 그럴때 비로서 너와 내가 따
로없어 경계가 무너지니 곧 부처의 세계요 동체대비가 되는 것이지요”
마치 법문을 듣듯 편안하게 이어진 스님과의 시간을 뒤로하고 원
당암을 내려오는 길. 해인사로 이어지는 다리에 써있는 무생교無生
橋란 이름이 새삼 활구活句가 되어 마음에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