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불교의 세계와 속세를 이어주는 나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박물관 이야기 - 김태형 2008년 12월 322호
해인사 성보박물관 16나한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약칭이며 아라한은 범어 아르한의 음역으로 오백비구五百比丘 오백상수五百
上首라고도 한다. 아라한은 공양받아 마땅한 자, 공양으로 복을 심는 밭, 진리에 상응하는 자,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난 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자 등으로도 불린다. 즉 나한은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
의 계위階位로, 이들은 생사윤회를 초월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며 매우 덕이 높은 성자로
추앙 받았다.
처음에는 아라한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였다. 부처님을 부르는 열 가지 명칭(십호十號)중의 하나
가 응공(즉 아라한)인 것을 볼 때도 아라한은 부처님에 대한 별칭이였다. 그 뒤 부처님과 아라한이 구별
되어, 부처님의 제자가 도달하는 최고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나한은 불교가 발달하면서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처음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 뿐이었는데,
그 뒤 부처님이 해탈한 뒤 최초의 제자가 된 교진여 등 다섯 비구가 아라한과阿羅漢果의 경지를 얻게 되
었다. 이어 야사耶舍와 그의 친구 54인, 가섭迦葉과 그의 제자 등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모두 나한이라
고 생각했다.
나한은 그 수가 16, 500, 1200등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을 말한다.
십육나한 신앙은 당나라 현장스님이 서기 645년에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
提蜜多羅所說法住記>에 기초한다. <법주기>는 부처님 열반 후 800년경에 난제밀다라難提蜜多羅 아라한이쓴 것이라고 한다.
<법주기>에 따르면 석가모
니 부처님은 16인의 나한에게
불멸佛滅 이후에도 영원히 이
세상에 머물며 각지에서 불법
을 수호하며 중생을 제도하라
는 부촉을 내린다. 이들은 모두
삼명三明, 육통六通, 팔해탈八
解脫의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어서 삼계의 오탁에 물들지 않는다. 이
들은 경經, 율律, 논論은 물론 외도外道의 경전에도 능통했고 신통력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륵하생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곁에 있었던
대가섭, 군저발탄, 빈두루, 나운 4비구가 4명의 아라한이다. 부처님은
이 4명의 비구에게 정법을 부탁하여 열반에 들지 말고 영구히 세상에 남
아 정법을 수호하여 미륵보살님의 출현을 기다리라는 말을 남겼다. <미륵하생경>이 서기 3세기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아 대승불교가 융성하면서 4대 아라한에서 16아라한
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소승불교에서 나와 부파불교의 수행자가 된 나한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 신앙의 대
상이 되었다.
한국에서 나한신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
시대에는 나한법회가 자주 열렸으며, 조선시대에도 대부분 사찰에는 나
한전 또는 응진전 이라는 전각을 세워 나한상을 봉안하였다.
박물관에는 원당암 나한전에 봉안되어있던 16나한상이 있다.
제작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종된다. 이 나한상은 2구의 판관상
과 같이 한 조를 이루어 조성되었으며, 대부분의 조선시대
나한상들이 흙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이 나한상은 백
자로 제작 된 점이 특이하다. 경남지방의 나한신앙을 엿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러한 나한은 실제로 천태만상의 인간적인 모습으
로 표현되어 불교가 일반 민중과 더욱 친숙해지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불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찾을
수 있는 매개체였다. 나한신앙으로 자기 속에 있는 불
성을 간절히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