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간지주幢竿支柱는 한자로 기 당幢, 깃대 간竿이라하여 사찰의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높
이 달아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또한 그 위치가 산문을 들어서기 전, 일주문 옆에
있어 안에 있는 도량의 신성을 알리는 상징구조물이기도 했다.
천년 고찰 해인사의 당간지주는 일주문 바로 옆
에 세워져있는 것으로 조성연대를 정확히 알 수없
으나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기단 부위가 심
하게 마모되고 자연 풍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천
년 역사만큼이나 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특히 해인사는 그 이름이 바다 해海, 도장 인印
이라 하여 광활한 바다에 마음 속에 심상心象을 남
기는 도량이라는 창건주 스님들의 정신이 담겨있
는 사찰로서 이는 불퇴출의 용맹심으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위대한 탐험의 배, 곧 구도의 세계
라는 뜻이 담겨있다. 또한 가람의 형태가 앞으로
전진하는 힘찬 배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분명 깃대
를 꼽던 당간지주는 조성 당시 힘찬 돛대를 상징하
였을 듯 싶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당간은 주로 철로 제
작돼 당시 유행하였던 석탑 불사와 함께 사찰을
장엄하게 장식하는 거대한 구조물로 조성되었다
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석수만년石壽萬年이라하
듯 결국 돌로 기록된 역사만 남는다는 얘기처럼
해인사 당간지주도 당간幢竿은 간데없고 간공杆
孔과 간구杆溝의 위치가 표시된 지주支柱와 기
단基壇만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후기인 1866년(고종 3) 대원
군의 명령으로 국가에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기
위해 사찰의 많은 금속물들이 징발 당했다하니 이
과정에서 해인사의 당간도 소멸되지 않았는가 유
추될 뿐이다.
한편 당간지주는 근현대사를 넘나들면서 불교의
자존심으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지난 일제시대 민족정신이 침탈당하고 불교가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던 시절, 뜻있는 큰스님들이 모여 불교 정신을
계승하는 당간을 다시 세우자는 기치를 내어거니
바로 1941년 유교법회遺敎法會로 시작된 불교 개
혁이었다. 이어 1946년 해인총림의 전신인 가야
총림, 1947년에는 봉암사 수행결사, 1954년 전국
비구승대표자회의 등 수행종가의 선풍과 전통을
여법히 계승하자는 스님들의 자성과 개혁이 이어
지면서 오늘의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지와 종풍의
기강이 다시 서니 당간지주는 이제 우리들의 마음
을 지탱하는 굳은 정신으로 남아 부처님 가르침
대로 사는 것이 불교 중흥의 당간지주를 다시 세
우는 길이라는 새로운 수행 정신사로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