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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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손현숙
2008년 12월 322호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의 대학 모교 사진과에서‘사진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특강 요청이 온 거다. 사진은 내가 어려서 빠져들었던 유일한 매혹이
었다. 음화로 풀어보는 세상은 한 때, 내가 사탕처럼 빨고 싶은 욕구였다. 그
러나 나는 이내 사진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방인의‘뫼르소’가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듯이, 나는 카메라가 무겁다는 이유 하나로 사진을 간단히 외
면했었다. 그날 이후 내 젊음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소용돌이쳤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나 사이에는 오랫동안 화해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가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젊음은 수렁에 빠진 채 캄캄
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매사 신중하지 못했던 선택 앞에 보복이라도 당하
는 듯 나는 나를 보기 좋게 무너뜨리고 말았던 거다.“꿈이 없는 집에서는
비스킷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너무 슬프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꿈이 없
는 내 젊음은 미래를 담보하지 않았다. 내 속에는 아무것도 담지 않아 오히
려 무거웠다.
그 해 여름, 딱히 갈 곳도 없는 나는 경주 첨성대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카메라는 장신구처럼 내 어깨에 걸려 있었고, 나는 가볍게 셔터와 조리개를
열었던 거다.“저 하늘의 별이나 한번 따 보리라” 망상하며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마구 사랑을 하고… 그렇게 자해공갈로 탕진한 시기
가 있었다.
뜻밖에도 인화지 위에 떠오른 별은 내가 밤마다 목을 꺾어 바라보던 그것
이 아니었다. 쉼 없는 노동의 흔적이랄까,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가며 별들은
끈덕지게 생명을 잇는 듯 보였다. 캄캄한 배경 속에 흐린 불빛으로 가물가물
흘러 출렁거릴 뿐. 그곳 어디에도 반짝이는 황홀은 없었다. 다만 하늘의 시
간표 따라 움직였던 상흔만이 존재했다. 일찍이 시인이 간파한“별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는 그 암흑 속에서 별들은 제 스스로의 빛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한 삶을 살아냈던 것
은 아닐까. 누가 내 머리를 깨 부시는 듯 갑자기 먹먹했다. 먹고 노는데 이력이 난 내가 갑자기 어떤 부름
을 받듯이 새벽의 광기처럼 나는 내 몸을 활짝 펴서,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연필 세 자루를 깨끗이 깎아 필통에 넣었다. 삶이란 어떤 음모로 점철된 것일
까. 막 뒤에서 나를 조정하는 저, 커다란 힘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벽을 깨기로 했다. 슬픔이
오면 슬픔을, 환멸이 오면 환멸을 고스란히 문자로 받아 적기 시작했다. 종이와 연필은 무겁지 않아서 좋
았다. 나는 왜,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며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누가 나를 짓눌렀기에 몸부림치며 그
렇게 애써 가벼워지고 싶었던 걸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목숨의 아비인 우주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
며 비로소 내가 나를 깊이, 그리고 샅샅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거다.
강의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 녀석들의 젊음을 쪽쪽 빨아 내가 먼저 싱싱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그러나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초점 없이 멀뚱거리며 앉아있는 학생들, 그 젊음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답답하고 우울해 보였다. 지난날의 내가 그 자리에 고스란히 있는 듯 했다. “꿈이 뭐
냐”고, 학생들에게 던지기로 작심했던 내 질문은 아예 입 밖으로 내보지도 못했다. 아무런 의욕도 호기심
도 없어 보이는 젊음들. 무엇이 저들을 이토록 시들게 했을까.
절망은 운명보다 더 두려운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저들의 미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암담
한 것일까. 이 학생들에게 문학이나 사진, 혹은 예술을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억지가 아닐까. 저들은 다만
내일의 빵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준비했던 노트를 덮고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문학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세상
을 변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의 미래를 꿈꾸는 시적(詩的) 상상력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시작했다.
해리포터의 작가‘조엔 롤링’의 성공은 마법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상상력이었다는 것과,
달리기 선수였던 마이클 존스는 매일매일 피나는 훈련으로 10년 만에 단지 1.68초를 단축, 세계신기록
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과, 발레리나 강수진은 발가락이 뭉개지도록 자신을 몰아 부치는 연습광이었다
는, 등등.
그들의 성공은 오직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이 있었다는 것과, 자신의 현재에 크게 저
항하는 의식이 깨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강의실의 공기가 차츰 팽팽하게 부풀었다. 누가 저들을
저토록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학생들을 향해“당신들은 가능성 백 프로다.”라는 내 말을 믿어달
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징기스칸도 꿈꾸지 않았다면 그저 일개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
러니까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것까지도 꿈꿀 수 있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라는 것을, 따라서 꿈꾸지 않는 젊
음은 죄라는 것을 되새김질하라.”고 당부한 뒤 강의실을 나왔다.
어떤 기대로 초롱같이 살아난 학생들의 눈망울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온 몸에 뜨거운
피가 도는 듯 힘껏 부르짖고 싶었다. “젊음아, 일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