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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말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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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8년 09월 319호
서비홍 <분마 奔馬>1941, 종이에 수묵 달리는 말 위에서 / 김현정

해마다 더위의 정도가 한 눈금씩은 올라가는 것 같다. 여름날 태양의 높이는 그렇게 계속 올라가는가 싶더니 꺾이는 것도 한순간이다. 밤새 열어놓은 창에 붙은 풀벌레가 귓가를 어지럽히고 달빛은 눈가를 흔들어 깨운다. 아, 여름은 그렇게 한순간인데 가을은 또 얼마나 순간으로 스칠까.

세월이 그렇게 지나간다. 때로는 물처럼, 때로는 시위를 떠난 활처럼, 때로는 달리는 말과 같이, 때로는 소걸음 보다도 느리게. 한 순간도 쉬지 않는 시간이란 놈의 본질은 다르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이 녀석의 얼굴은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서비홍(徐悲鴻: 1895~1953)이 그린 말 그림을 보다보면 힘차게 달려가는 시간과 마주친다. 그의 의도가 그렇진 않았을 터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여기까지 달려왔고,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달려갈 시간이 바로 달리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림 속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있고,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도 담긴다. 두 마음은 같기도 하고, 또 때론 다르기도 하다. 붓을 든 사람은 붓 끝에 마음을 두고, 감상하는 사람은 눈길이 닿는 곳에 마음을 둔다. 그것이 그림의 묘미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서로 통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서비홍은 습작시절 사실주의 소묘에 몰두한 화가였다. 서양미술도 함께 공부하여서 그런지 순간을 포착하고 이것을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매우 능하였다. 그는 사실주의적 전통에 천착하면서 근대 서양예술이 고전적 전통을 거부하였을 때 쇠퇴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화가들이 사실주의를 경시하였기 때문에 명, 청대의 회화가 쇠퇴하였다고 생각하였다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등장한 그림이 바로 말 그림이다.

서비홍은 근대기 중국화단에 큰 획을 그은 화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말 그림에 능했다.
1941년 싱가포르에서 그린 <분마奔馬>의 제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신사辛巳년 8월 10일 장사에서 두 번째 전투가 있었다. 내 가슴은 걱정으로 애가 탔다. 이 전투의 결과는 아마도 이전의 전투와 같을 것이다. 나는 희망적이다.”
전쟁 당시 서비홍은 중국 군인들의 영웅적 정신을 말의 속성에 견주어 표현하였다. 그 말은 힘차고 쉬지 않는다. 그러니 영웅적인 자태라고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휘날리는 갈기며 꼬리 높여 뛰어오르는 말 발굽 등 말의 체형묘사는 실물과 견주어도 상당히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보는 순간 휘익 하고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뽀얀 흙먼지가 일어난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얼른 말 잔등 위로 올라탄다.

‘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驢事未去馬事到來)’는 화두는 일찍이 위산 영우( 山靈祐: 771~853) 스님이 던진 열쇠이다. 운문종을 꽃피웠던 위산 화상은 길들여지지 않는 말 위에서의 다급함을 일깨웠다.

달리는 말 위에서

三十年來尋劍客 삼십년 동안 칼을 찾던 길손
幾回葉落又抽枝 낙엽지고 새 가지 돋아나기 몇해나 되었는고
自從一見桃花後 복사꽃 한 차례 보고 난 뒤로는
直至如今更不疑 여지껏 단 한번도 의심치 않았네.

위산 영우 선사의 선시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난 여태 복사꽃조차 볼 여유가 없었다. 뒷산의 복사꽃과 앞산의 가을 단풍을 단 한번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바로 의심치 않을 수 있었을까. 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1879년 11월, 경허 스님이 동학사 조실방에서‘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馬事到來: 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한 지 석 달이 지났다.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때 동은東隱이라는 사미승이 스님의 시봉을 들고 있었다.

어느 날, 만화 스님의 제자이자 경허 스님의 사형인 학명學明스님이 동은의 부친인 이 처사를 찾아갔다.
찾아간 학명 스님을 보고 이 처사가 물었다.

“요새 동욱(경허) 대사는 뭘 하나?”
“그저 방 안에서 소처럼 앉아 있습니다.”
“중노릇 잘못하면 소가 되는 이치를 아는가?”
“그거야 공부를 하지 않고 공양만 받아 먹으면 소밖에 될 게 있습니까?”
“중노릇을 그만큼 하고 겨우 대답을 그렇게밖에 못한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선리禪理는 모릅니다.”
학명 스님은 당시 참선보다는 총무 소임을 보며 사무를 보기에 바빴었다.
“소가 되어도 콧구멍 뚫을 데가 없으면 되는 게지.”
동학사로 돌아온 학명 스님은 그 이야기를 다시 동은 사미승에게 말했다.
“너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셨는데, 너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그 이야기를 들은 동은 사미승은 경허 스님이 참선하는 바로 옆방에서 다른 사미들에게 수수께끼처럼 물었다.
“너네들, 중노릇 잘못하면 소가 되는 이치를 아니?”
“소가 되는 이치가 뭔데?”
“글쎄, 그게 뭘까?”
“야, 소가 돼도 콧구멍 뚫을 데가 없으면 된단 말야.”
동은 사미승은 커다랗게 말했다.
어린 사미승의 그 말이 참선중인 경허 스님의 뒤통수를‘꽝’하고 때렸다. 대지가 그냥 내려앉았으며, 만물과 자신을 함께 잊고 온갖 법문의 끝없는 오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풀렸다.□


김현정 님은 상명대학교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하였으며, 석가여래설법도상 연구로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 전통문화학교 강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