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 이겸‘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는 아바나보다 작은 도시긴 하지만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 쿠바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아바나에 묶으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마 그네들이 이곳에 들르게 된다면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숙박료 또한 같은 조건을 놓고 비교해 봐도 아바나보단 저렴한 편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아직까지 시골 소도시의 정서를 잃지 않고 있다. 시내와 가까운 민박집 한 곳에서 계속 지내다 보니, 주인 할머니와의 친근감도 쌓여 간다. 보통‘까사 빠띠꿀라Casa Particular’에 묶게 되면 첫날 숙박계를 작성하게 되는데, 여권과 비자번호 체류 일정을 상세히 기록하게 된다. 주인은 숙박비의 약 50% 정도를 나라의 세금으로 내야 한다.‘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에서의 일정이 길어져 숙박을 연장하게 되었는데, 숙소 주인이 숙박계를 쓰면서 낮은 목소리로“피델Fidel 때문에 피곤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살짝 놀라는 기미를 하자 얼른 입을 막으며 웃는다.
“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숙박시설 점검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고….”현재 쿠바의 정치 상황뿐아니라, 경제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과거, 피델을 비롯한 게릴라들이 앞장서서 독립을 쟁취했지만, 현재‘피델Fidel’의 정책 때문에 국민들이 피곤하다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쿠바에 들어와서 정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을 처음 듣는 터라 귀가 쫑긋해졌다. 민박집 할머니의 푸념에는 많은 불편을 참으며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속내가 섞여 있다. 치열한 투쟁으로 얻어낸 혁명인 만큼 혁명 이후 쿠바인들의 생활 역시 투쟁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쿠바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독립을 스스로 쟁취한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이 땅이기 때문이다.
일부 계층의 협상 결과에 기대지 않고 모든 국민의 투쟁으로 되찾은 땅, 쿠바. 더구나 지난 투쟁은 세계 유일 강국, 미국의 어떠한 영향권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독립이었기에 그 열매를 소중히 여겨왔다.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의 쿠바 혁명이 시작된 해는1956년이고, 혁명이 성공한 해는 1959년이다. 당시 20대였던 청년들은 지금 70대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당사자들은 그 열매를 수확하지 못한다.
‘ 혁명을 주도했다’는‘보이지 않는 훈장’을 달고 늙어가기 마련이다. 수혜자가 된 이들은 혁명 2, 3세대들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고초를 겪지 않고 성장한 이들이다. 나름의 고생스러움은 있지만, 어떤 의미에선 농사를 짓지 않고 열매를 먹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과 윗 세대들의 공통점도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이라는 괴물이 모든 것을 막고 있다는 불안감. 수혜자로 태어난 이들이지만 열매를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현실의 벽을 개인의 힘으론 넘을 수 없는듯 하다.
젊은이들은 야구와 음악, 춤과 술을 즐기는 것 외엔 마땅히 할 것이 없다. 꿈을 꾸지 못하는 현실은 삶을 너무도 지루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탈출구가 있어야 한다. 괴물의 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들에게 미래를 위해 노력하라는 것은 난센스다.‘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의체제는 아직 건재하지만, ‘아바나La Havana’를 비롯한 전국의 유명 관광지는 이미 자본주의화 되었다.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마지못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쿠바 음악에서 열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달리 미칠 것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쿠바의 음악은 열정적이고도 슬프다.
결론을 내지 못하는 연애행각처럼….
이 시대에도 혁명은 필요하다. 총을 앞세운 혁명이 아니라, 개개인의 내적인 혁명이어야 한다. 각자의 삶이 혁명의 대상이길 바란다. 이타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스스로를 풍요롭게 하는 안으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한 시기다. 밖에서 답을 찾기 보단, 이미 안에 있는 것을 보는 혁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