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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 빚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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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8년 08월 318호
사진 / 임우석 자비로 빚은 빵 / 박재은


모 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 취재차 군산에 다녀왔다. 군산 시민들의 사랑방인 빵집‘이성당’의 빵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이성당’빵집은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것을 해방 즈음부터 인수하신 오남례 할머님의 시부모님부터가 그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그 연차로 따져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빵집인 것이다. 내가 취재를 갈 때 지키는 룰이 있다. 바로 취재 약속시간보다 30분쯤 일찍 간다는 것. 먼저 도착해서 그 매장이나 식당의 일반 손님처럼 쓱 앉아본다. 그곳의 일상적 느낌을 먼저 본 후, 주인장을 뵈면 취재에 도움이 된다. 하나 더, 취재차 가는 집들은 대부분 내가 맛을 본 음식에 대해 돈을 안 받으시려고 하기 때문에 미리 가서 후딱 맛을 보고, 돈을 내버리고 취재를 시작한다. 그 편이 공정한 기사를 쓰는 데에 이롭다.
각설, ‘이성당’에도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하여 빵을 먹어보고, 북적 북적한 분위기를 느꼈다.


<맛의 근원은 마음>

직접 팥소를 만들기 때문에 팥빵은 정말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일일이 채소를 다듬고 버무려 만드는 야채빵이 압권. 사각사각 씹히는 양배추 맛이 신선했다. 자, 내가 이 이야기를 왜〈해인지>에 쓰고 있을까. 이미 신문 칼럼에 한번 썼던 소재를 왜 재탕하고 있을까. 신문지면에 못다 한 사연이 남아서다. 60년이 넘게 빵을 만들고 인기를 얻어 온 그곳의 진짜 비결은 신문에 쓰지 못했다. 바로 불심佛心.

매장에 들어섰을 때부터 오 할머님의 단주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피부가 고우시고, 정정하신 자태로 빵 쟁반을 정리하고 계시던, 그 모습의 중심에 꼭 차고 계신 단주가 눈에 띄었다.
막상 취재가 시작되어 현재‘이성당’의 운영을 맡고 있는 며느님을 만났을 때, 아, 이 집의 맛이 이거구나 느낄 수 있었다. 며느님도 불심이 대단하셨다. 그래서인지 안색이 밝고, 표정이 편안한 얼굴. 고부가 깊은 불심으로 한마음 되어 빵을 만드니 그 빵 맛이 변할 리가 있겠나.

“저는‘이성당’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고마워요. 그 사람들은 제 것을 가져가는 일이 없지요. 뭐 하나라도 다 여기에 주고가요.”사장님은 빵 사러 오는 손님들이 마음을 주고 간다고 하시며 진정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마음을 나누는 법>

취재 말미에 앞으로의 계획을 여쭈었다. 제빵 기능사들이 만들고 싶은 빵에 도전할 수 있는 작은 작업장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사장님의 계획. 그걸 듣고 또 놀랐다. 사실, 업주가 말이라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빵사의 근무시간은 정말 무지막지해요. 가뜩이나 체력이 소모되는 일인데, 새벽 같이 나와서 밤까지 한시도 못 쉬고 반죽과 씨름한답니다. 그들이 몸 감당할 만큼의 근무 시간을 갖고, 정말 희소한 빵을 희소한 개수만 딱 만들어 팔고 퇴근하는, 그런 곳을 시험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참 좋았다. 그러나 하루 300여 개 팔리는 야채빵의 채소를 다듬는 아주머니들의 노고를 제빵사들이 잊으면 안 된다고도 하셨다.
아주머니들이 채소를 깨끗이 씻고, 촘촘히 다지고, 버무리는 과정을 게을리한다면 제빵사들이 부지런히 만든 빵 반죽이 무용지물 될 것이기 때문. 즉, 손바닥만한 야채빵 하나도 혼자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가끔은, 이렇게 취재 중에 혹은 촬영 중에 혹은 출장 요리 중에 인생의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처님 생각을 게을리하다가, 이렇게 번쩍 정신이 든다. 길에 세 사람이 지나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선생이 있다지(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빵 만드는 사장님이나 아, 지난번 취재를 갔던 한산 소곡주 만드시는 나장연 사장님, 몇 년 전 찾아뵈었던 순창의 이귀남 할머님, 모두 하나같이 내게 배울점을 주신 분들. 그리고 배울점 많은 그 마음으로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시는 분들. 그분들에게 있어 음식은, 자비의 마음을 나누어주는 매개체인 것. 그런 좋은 음식을 더 많이 찾아 더 널리 알리고 싶다.
내 마음을 나누는 길은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좋을 것 같다.□


박재은님은 프랑스 꼬르동 블루요리 제과부문 전 과정을 수료하고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현재 요리사와 파티 플래너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