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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서 세월을 낚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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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8년 08월 318호
단원 김홍도 / 염불서승도 벼랑에서 세월을 낚는가 / 김현정


매앰…, 앗, 올 여름 드디어 내 집 앞 느티나무 위에 매미가 안착했나보다. 나무 위의 매미는 암컷의 마음을 낚느라 땡볕 아래서 분주하다. 옆집 꼬마는 우리 집 현관 앞 까만 고양이의 마음을 낚느라 네로~, 네로~ 하며 제가 붙인 이름을 부르며 안달이다. 올 여름도 해변가에서는 선남선녀들이 자태를 뽐내며 서로의 마음을 낚으려 또 난리이겠지. 누가 낚시꾼인지는 알 수 없고, 허긴… 낚는 자와 낚기는 자의 구분은 무안한 일이다.

어떤 이는 세상을 낚으려 절치부심切齒腐心, 낚시 바늘로는 빈약하여 나름 칼을 갈고 있을 터이고, 빈둥빈둥 빈 허공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나는 이참에 세월도 함께 낚아 보려 헛심을 쓴다. 내 마음도 제대로 낚아보지 못한 채 마흔 해도 더 지났고, 세월은 나를 비웃으며 구름보다 허망하게, 강물보다 더 쏜살같이 가고 있는것이 아닌가. 어리석은 자여, 네가 바로 낚시꾼이로다.

간밤에 비로 집 앞 개울물의 수위가 제법 늘었고, 물도 제법 맑아졌다. 엊그제 장대비 덕분에 물구경 재미있게 한 터였다. 바위를 감아 도는 물살이 장쾌하기까지 하다. 장맛비 덕분에 물은 맑아졌지만 오늘 아침까지도 하늘은 아직도 꽉 빗장이 걸려 있었다. 매미 소리로 주문이 통한 탓인가 꽈악 흐렸던 하늘이 다시 열린다. 먹장 구름 사이사이로 그동안 참았던 파란 하늘과 쏜살같은 햇볕이 내리꽂을 심산이다.
그래야 여름은 여름이지싶다.
이럴 땐 바다 위에 고무 튜브 하나 띄워놓고 동동 파도타기나 즐기며 더위를 즐길 일이지만, 여름날 나가면 고생이다 싶어서 물소리 들어가며 대야에 물이나 떠놓고 탁족으로 만족하여 올 여름을 보내기로 작심하였다. 그림이나 보며 피서避暑축에 끼어볼까 책을 폈다. 단원 김홍도金弘道는 불교 소재의 그림을 여러 장그린 작가인데, 그가 그린 불교계 인물(!)들은 모두 구름 위에, 허공 위에 바다 위에 떠 있다. 관음보살이 그러하고, 동자가 그러하다. 또한 뒤태만으로도 발심發心을 할 만한 선사의 모습도 그러한데, 구름인지 바다인지 연꽃을 배경으로한 선사의 뒷모습은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돌아앉은 스님의 안광眼光은 볼 수 없으나 이미 머리에 있는 두광頭光만으로도 그 경지를 알 수 있다. 꼿꼿이 세운 상체는 수련의 깊이를 보여주고 부드러운 옷자락으로는 외유내강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단원이 말년에 즐겨쓰던 필법이다.
당시 금강산 건봉사에서는 만일회萬日會염불결사를 도모하여 대중들이 염불 공덕으로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서방 극락세계로 왕생하기를 기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욱면郁面이라는 여종이 강주(康州, 지금의 진주 또는 순안) 미타사 만일염불계에서 주인을 시봉 들며 열심히 염불하다가 지붕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 연화대에 앉아 광명을 놓으며서 방 극락세계로 왕생해갔다는 내용이 이 그림에 적혀 있다고한다.

나뭇가지를 잡는것은 족히 기이한 일이 아니니 得樹攀枝未足奇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懸崖撒手丈夫兒
물은 차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 찾기 어려우니 水寒夜冷漁難覓
빈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도다. 留得空船載月歸

송나라 때 선사였던 야보 도천(冶父道川; 1127 ~1130) 스님의 선시이다. 욱면이란 여종은 하늘로 바로 승천하고, 선사들의 가르침 속 장부는 천길 아래 낭떠러지도 무색케 손을 놓아버린다.
우리같은 사람으로서는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도천 스님은 군의 집방직執方職에 있다가 재동齊東의 도겸道謙선사에게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정인계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스님의 6세손이 된다. 그는 특히《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를 통해 자기의 견해가 송으로 후학들에게 많이 알려졌는데 간결하면서도 한 번에 내리치는 듯한 그의 활구活句가 백미였다고 전한다.
어느 날 경덕景德에 있는 도겸 선사를 찾아가 법法을 묻자, 예의 그 조주 무자 화두를 들려 주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알겠느냐?”
새벽부터 밤까지 직무도 보지 않고 화두를 안고 낑낑대는 것을 보다 못한 상관이 화가 뻗쳐 곤장을 쳤는데 볼기짝을 맞는 순간에 적삼은 홀연히 깨쳤다. 이에 도겸이 그의 이름을 고쳐주었다. “이제까지 너는 적삼狄三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도천道川이다.”

하릴없이 빈 배로 들어오는 이가 하나 둘이었던가. 이 시를 두고 무비 스님 해설에서는“알아듣는 이가 없어도 이러한 선경이 있는데야 그 아름다운 경치를 숨길 수 없다. …(중략)… 언젠가는 이해하고 감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 또 이렇게 동문서답하는 말석의 후학이 있어 먹이를 덥석 물지는 못하더라도 미끼를 집적거리는 날이 있을때를 기다려서다”라고 적고 계시다.

세월을 낚고, 달빛을 낚고, 물을 흘려보내고… 그렇게 보내는 이가 고금에 참으로 많긴 많았나 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두고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하는 처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한다.
그래도 벼랑에 달리거든 죽기 살기로 나뭇가지를 잡아야 할 일이다. 나뭇가지를 손에서 놓는 순간 벼랑만 좋은 일이다. 다만 절대로 부러지지 않을 튼튼한 나뭇가지 골라서 잡는 일이 일생 일대 대사大事중에 대사이다. 손의 감각으로 알 것인가, 밝은 눈으로 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가가呵呵.□


김현정님은 상명대학교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하였으며, 석가여래설법도상 연구로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전통문화학교 강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