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남동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108 참회>
“즐겁게 뛰어놀며 공부할 나이의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오도록 못난 나라로 만든 허물을 참회하며 아흔번째 절을 올립니다.”
낮았지만 또렷했다.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대형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맞춰, 수천수만 명이 일시에 아스팔트 바닥에 허리를 숙였다. 무릎을 굽혔다.
참회했다.
유모차를 탄 아이에게 물대포를 쏘는 정부를 만든 허물을 참회했다. 생명의 존엄을 위해 켜든 촛불을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한 허물을 참회했다. 민주국가에서 다시 피 흘리며 국민주권을 외쳐야 하는 나라로 퇴행시킨 허물을 참회했다.
그리고 걸었다. 묵언으로 말했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고,‘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추라’고,‘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이다’라고.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이하시국법회)’가 열린 7월 4일 서울시청 앞 광장은 참회와 희망의 마당이었다.
<연대의 힘으로 5일 만에 시국법회 준비>
불자들이 사회적인 문제로 거리에 나선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반도대운하를 비롯해 북한산, 천성산, 새만금 등 환경문제로 법회를 개최한 적은 있지만, 주로 불교계와 직접 연관된 일들이었다. 하지만 시국법회는 성격이나 규모부터 달랐다.
시국법회를 개최하기 1~2주 전부터 불교계 단체와 조계종 총무원 등에 불자들의 항의 전화가 잇달아 걸려왔다. 불교계가 나서 촛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드디어 불교계가 움직였다. 시국법회추진위원회(공동추진위원장 수경ㆍ명진ㆍ효림ㆍ정념ㆍ선묵ㆍ지홍ㆍ계호ㆍ능혜ㆍ박광서)가 꾸려졌다. 불교계 단체 활동가들과 수도권 사찰종무원들을 중심으로 실무진이 구성됐다. 연대의 힘은 놀라웠다. 5일만에 시국법회준비를 마쳤다.
실무진도 궁금했고 두려웠다. 과연 몇 명이나 모일까에 관심이 집중됐다. 법회 당일 순천 송광사, 부산 범어사, 구례 화엄사, 예산 수덕사,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 수원 봉녕사, 김천 청암사 등 전국에서 스님들이 도착했다. 하안거 기간이지만 중생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수행처를 잠시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옮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1000여 명의 스님들을 비롯해 3만여명의 참석자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시국법회추진위 상설조직으로 전환>
시국법회는 끝났지만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시국법회추진 위원회는 한시적이었던 조직을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상설조직으로 전환했다.
이 같은 배경에 대해 추진위는“현재의 난국이 풀리지 않는 배경에 혹여 대통령과 핵심공직자들의 그릇된 신앙적 신념에 뿌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시를 하나님께 통째로 봉헌한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대통령에 당선돼서도 소망교회 인맥을 등용해‘고소영’정부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복음화 기도회 포스터에 등장했다. 국토해양부의 대중교통이용정보시스템인‘알고 가’에 사찰은 배제됐다. 교회 장로인 주대준 청와대 경호차장은“정부 부처 복음화가 나의 꿈”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이후 7월 16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특히 23일에는 주권재민과 정교분리의 헌법정신 수호를 위한 시국문화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조계종 호계원장 법등 스님은“촛불문화제의 시작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었지만 이 촛불은 시민자치행동으로 진화하고 생명과 평화의 국제적 진원지가 되었다”며“우리 국민과 시민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는 성인으
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30일에는 광우병쇠고기 문제로 불거진 생명담론과 촛불문화의 평화담론을 주제로 출재가가 모여 토론하는 제1회 대중공사’가 개최된다. ‘촛불의 진화를 위한 성찰’을 주제로 김지하시인의 기조 강연과 우희종교수(서울대 수의과학대)의 내부발제에 이어 집중토론이 진행된다. 8월에는‘헌법과 한국불교, 그 미래지향적 교호작용’을 주제로 2차 대중공사를, 9월에는‘보살로서의 시민, 시민으로서의 보살’을 주제로 3차 대중공사를 펼칠 예정이다.
<‘사티아그라하’와 삼학三學>
시국법회추진위는“이제 대통령에 대한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다”며“오직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촛불의 진화進化”라고 말했다.
이런 시국을 맞아 불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간디의‘사티아그라하’운동에서 지혜를 빌려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현지 인도인 노동자들의 공민권 획득투쟁을 하면서 시작된 이 운동은,‘시민적 불복종 운동’‘비폭력 저항운동’의 다른 말이다.
‘ 아힘사(비폭력)’정신을 바탕으로 나 자신부터 생활에서 촛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티아그라하 운동에는‘브라마차리아’라는 자기 정화淨化정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단기간에 살을 찌우기 위해 소에게 육식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의 탐貪심 때문이다. 식육 중심의 식습관은 진瞋심을 부채질한다. 치痴심을 안다면 내가 먹는 쇠고기가 내 이웃의 눈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 정화, 즉 삼독三毒을 제거하기 위해선 계정혜戒定慧삼학三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현재 조계사에는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들이 피신해 있다. 다행히 조계종 총무원측과 조계사측이 경찰의 체포영장강제집행에 반대의 뜻을 보여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들을 부처님의 가피로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우리모두 지혜를 모아야겠다.□
남동우 님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부 문예창작전공 졸업. 한국불교신문사, 현대불교신문사, 참여불교재가연대에서 근무. 시국법화추진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