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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강주 일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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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8년 08월 318호
송광사 일귀스님 송광사 강주 일귀 스님


촌철 같은 햇빛. 여린 풀이파리들이 바짝바짝 목이 말라 몸이 꼬인다. 그늘 한 자락 없는 길 위에서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이 꼬인다. 이런 더위엔 대체 이 몸을 어찌하면 좋을까. 덥다고 헉헉대는 나는 대체 뭔가. 자동차의 에어컨 바람도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는 한 낮.
일귀스님을 찾았다. 요즘 어찌 지내십니까?

더워서 가만히 있어요. 스님의 모시 적삼 안에는 등등거리가 보인다. 그걸 입고 가만히 앉아 조는 게 요즘하는 일이란다. 가만히 있으면 망상은 안 생깁니까?
오히려 돌아다니면 망상이 생기는 게 아닐까요? 별 도리 없으니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야 망상이 적다는 얘긴데, 나는 왜 가만히 누워 있으면 별별 망상에 사로 잡혀 나를 잊고 망상에 끄달려 다니는걸까.
부처님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아요. 망상을 하고 있는 나를 불현듯 알아차려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말씀. 자기 지혜로 상황을 판단하고 망상에서 벗어나란 말씀. 본래자기 자신 안에 있는 부처님의 성품, 자비와 지혜가 밝으니 따로 배울것이 없다는 말씀을 조곤조곤 낮잠에 든 아이에게 이르듯 바닥에 늘어 놓으신다.

수행자로 살아가는 삶은 어떠신가?
심심할 때도 있고 감사할 때도 있어요. 부처님 곁에 사니 감사하고 산중에 있으니 심심하기도 한 삶. 그렇다면, 감사할 때야 상관없지만 심심할 땐 대체 어떻게 그것을 이겨내시는가. 세속에서야 이리저리 손 뻗으면 휘황찬란한 것들이 정신을 쏙 빼놓아 심심함을 잊게 하지만 이 산중에서 스님은 무얼 하실까 싶은데, 스님은 되레 묻는다.

감사할때가 좋은가, 심심할때가 좋은가?
당연히 감사할 때. 허나 스님은 말씀하신다. 감사한 것은, 그 동안의 불행이 사라진 것이니 감사한 것이고, 심심한것은 걱정이없으니 행복하다는 것. 그러면 심심함 다음엔 무엇이 올까? 심심함 때문에 쓸데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밖으로 나가 놀다보면 불행이 올 법. 그러니 심심할 땐 화들짝 놀라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미 불행이 잉태되었으니 참회로써 그것을 감사함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스님은, 우리나라가 부자이니 그것도 감사할 것이란다. 스님은 전남 해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걸망을 진 듯 태를 양쪽 어깨에 두르고 태어나 동네에선 스님이 태어났다고들 했다. 그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스님이 될 생각은 아니었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욕심이 많았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점심을 고구마로 때우곤 했는데 스님은 고구마가 싫었다. 어느 날 신경질이 나서 물고구마를 벽에 확 던져버렸다. 고구마는 욕망의 폭탄처럼 터졌고 그날 어머니께 종아리도 터졌다. 그러고나자 그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밥그릇에 쌀을 넣고 물을 부어 고구마 찌는 솥에 넣어 밥그릇 밥을 해주셨다. 찐 밥이라 별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고구마를 먹지 않기로 했으니 혼자 그 밥을 먹었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그것이 무슨 얘기냐면….
이런 얘기다. 어머니가 귀한 사과를 쪼개서 동생들과 나눠주니 내게 반쪽이 남더라. 그것도 감지덕지, 아껴 먹으려는데 옆집 친구 놈이 잘생긴 온 사과를 갖고 놀더라. 그것을 갖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반쪽 사과를 벽에 확 던져버렸더라. 남은 것은 빈손이더라. 스님은 그 욕심으로 인해 출가한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욕심이 많아서, 더 많은 욕심을 부리다가 그게 성에 안차니 오히려 다 놓아버린것.

만25세, 송광사로 출가했다. 속가에 있을 때 선을 봤는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절에 사는 게 낫겠다 싶어 나섰다. 그저 산중에 사는 스님들만 보고 그 삶을 쫓아왔는데, 법흥 스님에게서《초발심자경문》강의를 듣고는불교가 좋다는 것을, 스님이 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왜 이리 늦게 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수행하며 멋지게 살고 싶었다.
처음부터 경전을 봤던 것은 아니다. 은사스님인 구산 스님은 참선을 강조했다. 계를 받고는 이리저리 선방으로만 다녔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절에 와 주련의 뜻을 묻는데 알 수가 있나. 아무래도 참선만 하는 것은 아니지 싶어 해인사 강원에 들어갔다. 1년 반쯤 지났을까, 은사스님을 시봉하기 위해 다시 송광사로 오자니 마침 그해 송광사에 강원이 생겨 송광사에서 졸업하게 됐다. 내내 강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원과 강원을 계속해서 오갔으니 졸업은 늦고 늦었다. 그러다가 송광사에서 강의를 하게됐다.

선원에 다니면서, 아침 저녁으로는 참선을 하고 낮엔 책도 보고 토론도 하면서 지냈으면 싶었다. 마침 송광사에 율원이 없던 터, 뜻 맞는 도반끼리 모여 참선과 토론을 함께하는 모임을 만들어 그것이 송광사의 율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송광사로 출가해 송광사 강원을 졸업하고 송광사 강사가 되고 지금의 강주까지. 송광사를 떠나지않고 맴돈 셈이다. 어느 말사의 주지로 살기보다는 밥 걱정 불 걱정 없이 사는 큰절에서의 하루가 감사하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나이 먹으면 여기 송광사 뒷방 하나 얻어 밥 얻어먹고 살면서 누구든 찾아오면 부처님 말씀을 나누다가, 그 사람 가버리면 혼자 조용히 졸지 뭐. 그렇게 살다가 여기서 가고 싶어요.

스님은 학인들과 함께 하는게 좋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그러면서 즐겁기 때문이다. 스님은 학인들에게 이른다. 강의를 받기 위한 강의 준비가 아닌 강의를 하기 위한 강의 준비를 하라고. 주입식 교육이 아니다. 스스로 준비한 것을 발표하고 모두 함께 토론하게 한다. 스님은 방관자로 있다가 학인들이 막히거나 오해가 생겼을 때 옆에서 툭툭 건드려 줄 뿐이다. 자신의 지혜가 가장 큰 지혜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님은《치문》에나오는‘왕래삼계지빈출몰위타작칙往來三界之賓出沒爲他作則’,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산다. 살아가는 데 있어 손님처럼 살되, 남을 위해 본보기가 돼야한다. 나서지 않지만 늘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원래 영웅은 그 자리에 있으나 평소에는 조용히 살다가 어려움이 있을때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보살의 모습이 아닐까. 스님은 그렇게 살고자 한다. 그래서 스님은 그것이 불교 수행이 아닐까 말한다. 그것은 다만 스님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관계안에서도 참으로 필요한 말이지 싶다.

스님은, 세상에 수많은 즐거움이 있지만 토론하거나 말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즐겁다. 경전을 읽는 것 또한 부처님과의 대화이고, 성인이든 거리의 방랑자든 걸인이든 대화할 수 있는게 행복하다. 엊그제 찾아온 방랑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많은것을 배웠다며 또 즐거워한다. 그렇게 계속 공부하며 살고 싶은가 보다.

나는 참선을 하면서 내 공부를 위해서 경전을 봤고, 지금 강주 자리에 앉아 있지만 내 내면에서는 처음이나 끝이나 수행을 하고 싶은 입장이지. 그것에는 변함이 없어요. 스님은《능엄경》과《기신론》을 꼽는다. 한국불교선 수행에 있어서,《 서장》은 구체적인 방법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 방법론을 찾다보니 능엄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그래서 은해사에서 졸업 논문을 쓸 때도 능엄경으로 썼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게 책으로 나오고 나니 내가 다른 건 모르고 능엄경만 아는 줄 안다고. 오히려 능엄경은 모른다고, 허허 웃는다. 그러면, 스님은 책 보기 싫을땐 없으십니까?
책 보기 싫을 때 있죠. 그럼, 참선하지. 차 마시거나. 스님 다탁엔 차 종류도 많고 자그마한 다구도 많다. 요즘엔 이 차 저 차 먹으며 마음을 다스린단다. 그래서 그럴 땐 손님이 오면 반갑단다. 허나, 어찌됐든 심심하면 참회해야 된단다.
스님이 학인스님들에게 강조하는 건, 삼시 예불 삼시 공양 그리고 울력이다. 이것만 철저히 하면 모든 게 다 된다고.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요즘 출가 나이가 늦어서 체력이 약하다는 것. 공부를 하려 해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스님은 심장이 안 좋아 수술을 받고 난 후론 선방에 앉는 게 힘들어지다보니 체력을 강조한다. 허면, 스님이 강주로 있으면서 바뀐것은 무엇일까.
하나도 없어요. 하던 그대로를 끌고 가고 있을 뿐. 전통이 있을 때는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이라며 바뀜이 중요한게 아니라 흐름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고여있는 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물길을 내자는것도 아니다. 댐을 쌓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흘러가는 물이, 늘 그렇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송광사의 옛적부터의 큰 흐름이 거칠 것 없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스님의 할 일이란다. 그저 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옛절집의 문화가 토론이었는데 최근 주입식 교육이 되어 버려 토론 문화를 되살리는것 쯤.

절집에 산지 약 삼십년인 일귀스님께여쭙는다. 스님으로 사시니 뭐가 그리 좋습니까?
뭐가 좋아?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어. 예전에는 신심이 났을 땐 한 일주일 좋지만 싫을 땐 한 이틀 밥도 먹기 싫고 물도 먹기 싫었단다. 그러면 그냥 자버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데 그 울퉁불퉁했던 굴곡들이 조금씩 깎이고 깎이더니 이젠 그 굴곡이 좀 완만해졌다고.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말씀이다. 허나, 스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다. 뭐가 좋아? 심심할 땐 어쩌고? 그래도 아직은 굴곡이 있는지 심심할때가 있단 말이오.
그런데 심심할 땐 어쩌냐는 스님의 얼굴엔 부처님의 미소가 솜솜이 배어 있다. 하루하루가 심심한 나는 법당에 가 백팔배를 한다. 땀이 뚝뚝 떨어진다. 덥다고 입을 삐죽대봤자 달라질 게 없는 뜨거운 오후다. 여름이니 덥지, 겨울인데 덥나. 뜨거운 차를 몸속에 털어 넣으니 속이 뜨끈해진다. 속이 뜨거워 살갗의 더위를 잊으니, 날이 금세 선선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