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으로 옮긴 지 10년이 넘었다. 생각할수록 이사를 잘 왔다고 여긴다. 옛 광산의 공장과 사무실이 있던 자리 곁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푸르른 능선들이 울멍줄멍하니 펼쳐져 사계절이 화려하다. 대구시내에 10여분이면 닿는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청정지역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사 온 첫날 짐을 정리하다가 창가로 흰 구름 같은 게 흘러가는 듯해 내다보니 백로였다. 그것만으로 아주 좋은 조짐인 양 좋아했다. 자주 집을 옮기는 걸 싫어해 평생 두번 밖에 이사를 하지 않은 나지만, 이곳은 오래 머물러도 될 것이라 자위하기에 충분했다. 한적한 시골이라 집값이 늘 제자리여서 돈이 되지 않긴 하지만, 돈과 거리가 먼 내게, 그게 뭐 크게 마음 쓸 일이냐고 자위해버린다.
이사 온 후 늘 그랬지만, 올해도 여름 기운이 왕성해지면서 나의 정원을 둘러보는 시간도 많아진다. 정원이라니? 가난한 서생에게 정원이 있을 턱이 있을까만, 나는 이 비슬산 기슭이 바로 나의 정원이라 여기고, 만끽한다. 언젠가 읽은,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이 옛날 머물던 집에다 한때 잠깐 동안이나마 십이화목당十二花木堂이라 당호를 걸어두고 의연해하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가 그의 초가집을 둘러보고“당신 집 안에 꽃나무 열두 그루가 어데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 사람의 귀를 잡고 방에 들어가 봉창문을 열었다. 들판 멀리 꽃나무들이 화사하게 꽃을 피운 게 눈에 들어왔다. 초정 선생은 그 꽃나무들을 하나하나 세어보이면서 저게 다 내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는게다.
소유의 관념을 떠나 보고 즐기는 게 임자라는 말이리라. 넉넉한 마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기도 하다. 나의 정원도 그러하다. 집 앞의 주암산과 최정산 골짜기는 깊고도 서늘하다.
수림이 빽빽하고, 물도 꽤 많이 흐른다. 온갖 꽃들이 사철 피고, 멧돼지와 고라니, 토끼 같은 온갖 짐승들이 많이 서식한다. 그런 산을 나는 늘 나의 것으로 간주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만하면 최상의 정원을 가진게 아니겠는가.
비슬산은 그 품이 넉넉하다. 내가 주로 다니는 곳은 비슬산의 동북쪽 기슭이다. 주암산 일대와 최정산 아래의 운흥사, 그리고 가창댐 상류인 헐티재 고개 바로 너머에 있는 용천사 주변이다. 운흥사는 절 마당에 심어놓은 오래된 산벚나무가 볼 만하다. 벚꽃이 필 때쯤이면 대구의 문우들이 언제 운흥사의 벚꽃이 활짝 핀 걸 볼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들이 쇄도하곤 한다. 그들도 이 지역이 나의 정원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용천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절이다. 고려 중기의 일연 스님이 비슬산 기슭에 오래 머물렀는데, 이곳에 자주 들렀다고 전해진다. 이절은 달고 시원한 샘물이 유명하다.
절들이 참으로 적소에 앉았다는 생각을 늘 한다. 절을 보면 절을 품은 산세의 아름다움이 바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고요한 세계가 늘 그윽하게 있게 마련이다. 한 생각이 일어나기전의 본디 깨끗한 마음 세계를 육조스님은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했다. 산사는 그런 세계의 외양이다. 그런 곳에서 비로소 분별없이 일체를 보고 아는 마음을 닦아나가려는 분발심도 생기는 것이다. 내가 자주 절을 찾는 이유도 그런 데서 찾아야 하리라. 청정한 세계와 불심의 적정함은 참으로 잘 어울린다. 그런 만큼 산의 깊음과 아름다움은 절이 있어야 배가 된다는 생각을 늘 한다. 절이 산세와 잘 어울리게 조성돼야 함은 이 때문이다.
비슬산은 명산답게 오랜 옛날부터 산신이 주석했다고 전해진다. 산신의 이름은 정성천왕이다. 산신은 이 산중에서 1천명의 출세자, 곧 성인이 출현하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일연 스님은 이 지역에서 취재한 설화를《삼국유사》에 실었다.‘ 포산의 두 성인’이 그것이다. 포산은 비슬산의 옛이름이다. 이 설화에 따르면 당시 산중에는 아홉 성인이 남긴 흔적이 있다 했다. 이 설화의 주인공인 관기와 도성스님도 그 성인들 가운데 포함된다.
두 성인의 얘기는 사뭇 낭만적이다. 산의 북쪽과 남쪽에서 각각 수도했는데,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면서 매양 서로 찾았다. 도성이 관기를 청하려 하면 산중의 나무들이 모두 관기가 있는 남쪽으로 엎어져서 환영하는 듯해 관기가 이를 보고 찾아갔다. 관기가 도성을 맞을 때 역시 나무가 북편을 향해 쓰러졌다고 한다. 이들의 만남은 천지의 감응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이 설화는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게다.
어쨌든 이 산에서 1천명의 성인이 난다하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성인이 출현할지 기다려진다. 천명의 성인이 다차려면 아직도 많은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이 산은 언제나 꿈과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관기와 도성의 만남이 천지의 감응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이 산은 만남의 꿈이 늘 구름처럼 서려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 산을 찾는 이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산이 참으로 각별하게 깊어보이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다는걸 실감할 것이다.
여름 동안 집주변의 산들을 뒤지는 걸 두고 자신의 마음을 뒤적이면서 자연에 몸과 마음을 의탁하는 순례자의 모습이라 여겨본다. 나는 집 가까운 곳을 뒤지지만, 멀리까지 원정을 하는 이들이더 많으리라. 여름은 산이 풍성하다. 그늘이 짙고 물빛이 맑은 곳을 찾아 등산을 많이 하는 계절이다. 등산길에는 꼭 절을 만나게 된다. 산을 오르다 절을 만나는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잠시 짬을 내어 경내를 둘러보고, 물도 한 잔 얻어마시며, 법당에 들러 절을 한다. 그런 다음 다시 훨훨 산길을 나서는 것이다. 여름을 맞아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여름의 산사를 감돌아 산 능선을 오르는 그 숨이 차면서도 환희심 가득한 순례길에 나서는 의미를 새삼 그윽하게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