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롱은 귀 기울이고 노주가 고개를 끄덕이니
노주소아아 露柱笑啞啞하고
등롱초불조 燈籠超佛祖로다
중용이변몰 中涌而邊沒하니
서천급동토 西天及東土로다
노주는 깔깔 거리고 웃고 등롱은 불조를 초월하는구나
가운데는 솟고 가장자리는 꺼지니 서천과 동토일세.
석두희천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노주에게 물어보아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선능善能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노주에게 물어보아라.”
“노주의 뜻은 어떤 것입니까?”
“조금전에 내가 그대에게 뭐라고 했는가?”
노주露柱는 불전밖에 건물과 떨어진 자리의 정면에 세워 놓은 두개의 둥근 기둥을 말합니다.
하지만 선가에서는 이를 본래의 기능보다는 생명이 없는 무정물無情物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해 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짝을 이루면서 같은 뜻으로 함께 사용되는 것은 등롱燈籠입니다.
등롱은 등불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벌레들이 날아와 불에 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등롱과 노주는 늘 같은 대구를 이루면서 비정물非情物을 의미하는 말로 쓰여왔습니다.
석두스님께서‘조사서래의를 노주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은 지각知覺이 없기때문이요, ‘나도 모르겠다’고 한 것은 목인木人이 노래하면 석녀石女가 일어나 춤추는 것은 식정識情으로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계교사량함을 용납하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승이 굳이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면‘노주가 깔깔 웃는다’는 것은 체體가 곧 용用이라는 말이요, ‘등롱이 불조佛祖를 초월한다’는 말은 용用이 곧 체體라는 뜻인 것입니다. 하지만 임제선사는 그 노주를 가리키면서 납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범속凡俗한 것인가? 성聖스러운 것인가?”
하지만 대중들은 모두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노주를 때리면서 말했습니다.
“설령 그 무엇이라고 대답할지라도 사실 이것은 한개의 그저 그런 돌기둥일 뿐이다.”
그리하여 노주를 통하여 범성凡聖의 분별을 넘어선 안목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선사들의 법문에서 노주와 등롱은 함께 등장합니다.
대혜선사는“노주는 적삼을 입고 남악산으로 가고 등롱은 모자를 벗고 천태산에 올라간다”고 했고, 대위해평大海評선사는“등롱위에서 춤을 추고 노주안에다가 몸을 숨긴다”고 했습니다.
등롱위에서 춤을 춘다는 말인 등롱 상작무燈籠上作舞는 어느 곳에서나 제약을 받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경지를 가리키며, 무정물인 등롱이 모자를 벗는다고 하는 등롱탈모燈籠脫帽는 격외도리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는 나무와 돌이 설법하고 또 사람이 듣는 것이며, 등롱과 노주 또한 서로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경지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노주점두露柱點頭라고 했습니다. 무정물인 노주가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정과 무정의 차별 없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부용도해芙蓉道楷선사는 ‘법의 요지를 들려주니 등롱이 귀를 기울이고 노주가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것입니다.
비슷한 노주회태露柱懷胎는 생명이 없는 무정물인 노주가 생명이 있는 유정有情인 사람의 아기를 가졌으니 이 역시 무정과 유정 등 모든 만물이 무차별의 일체가 된 경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영운지근선사는
“태초에 혼돈으로부터 아직 만물이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 중생은 어떻게 나오느냐”고 물으니
‘마치 노주가 아이를 가진 것과 같다’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운문선사는‘고불古佛과 노주가 서로 사귄다’고 했습니다.
고불은 오래된 불상이요, 노주는 법당 앞의 돌기둥이니 모두가 만가지법의 하나라고 할 것입니다.
노주는 지각知覺이 없는 일이요 고불은 화신化身의 차별입니다. 이는 사람과 경계가 서로 어울린 것입니다.
고불이 노주와 한판 붙었다면 자연히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엔 비가 내릴 일입니다
사향노루는 풀을 뜯어 먹고 사향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될 때 높고 낮은 산과 물이 함께 법륜을 굴릴 것이며 크고 작은 물고기와 들짐승이 두루 색신삼매色身三昧를 나타낼 것입니다
좋고 나쁜것을 제대로 모르는 죽반승들은 늘 동쪽과 서쪽을 구별하며, 갠날과 비오는 날을 구별하며 그리고 등롱과 노주를 구별하여 시비분별로 세월만 보냅니다.
참공부인은 언제나 비장한 마음으로
‘금생에 철저히 깨치지 못한다면 맹세코 이부자리를 펴고 자지 않겠다’라고 발원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단지 노주에 기대어 선채로 수행하는 모습이 마치 부모의 상을 당한 사람 같이하여 정진한다면 마침내 크게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산승이 이 자리에 앉아 이렇게 주장자를 곧게 세우고서 묻겠습니다.
“승당과 불전은 모두 이 산승의 주장자가 삼켜 버렸으니 노주와 등롱은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하겠는가?”
대중 가운데 이 도리를 안다고 한다면 산승이 말을 잘못한 것이며, 만약 모른다고 한다면 이 산승이 매우 손해를 본 것입니다.
보시환중복배상 布施中福倍常이요
화개금상최난량 花開錦上最難量이로다
취중찰도공왕전 就中到空王殿이니
노주등롱진방광 露柱燈籠盡放光이로구나
천하에 보배를 베푸니 복이 보통의 갑절이요 비단위에 꽃이 피니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 경계속에서 공왕의 궁전에 들이닥치니 노주와 등롱이 모두 빛을 뿜어내는구나.□
불기 2552(2008)년 하안거 반산림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