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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순간의 알아차림에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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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효민 / 대구불교방송 진행 2008년 07월 317호
이달의 이야기 1 행복은 순간의 알아차림에 있을 뿐
- 효민 / BBS대구불교방송‘아름다운 만남 효민입니다’진행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고, 졸리니까 잠을 잔다.”

일찍이 옛 선사들은 깨달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뜻을 들여다보면 가장 단순한 일이 가장 어렵다는 가르침이다.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순리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일러주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의 법칙들은 참으로 단순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가 단순하듯이, 알고 보면 이 단순함이 곧‘행복’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다. 오죽하면‘행복 추구권’이라 하여 법으로까지 정해졌을까? 병이 많으면 약방문도 다양해지듯 행복이라는 용어도 약방의 감초처럼 안 쓰이는 곳이 없다. 방송인들도 글쟁이들도 예술인들도… 또 나아가서 종교에서도‘가난한 마음에 행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언젠가 도반들과 차를 나누며“행복이 뭐죠?”라는 우문을 던져봤다.
대답은, “행복… 음… 너무 추상적이죠. 그건 기쁨 아닌가요?”
“욕구가 충족 된 상태가 아닌가?”
“행복이 뭐 별건가요? 살아 있다는 느낌 그런거 아닙니까?”
“심(스님)은 안 행복하나? 그 정도면 행복할낀데….”
참으로‘우문현답’이었다. 뚝배기 보단 장맛의 소유자인 마지막 도반의 대답이 화두였다. 문제의 출발점을 나에게로, 즉 나에게로 떠나는 행복 여행이랄까?

남들은 나를‘온실 속의 화초’라고 부른다. 그러나 난 다르다.‘ 나름 대로 만만한 인생을 산 건 아니다’라고 내심 항변해 본다. 시쳇말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는데 어찌‘네 정도면 행복할 것 같다’는 말을 할까? 왜?

여기서‘난 아닌데…’라고 말하면‘호강에 받쳐 요강에 ○싼다’라는 핀잔이 돌아올 터, 슬그머니 화안 미소로 침묵 할뿐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행복과 내가 느끼는 행복은 분명 다른 것 같다. 흘러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는 없는 것. 오직 현재의 한 점으로 존재하는 감정이 행복감일까?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장면이 떠 오른다. 이즈음에선 붓다의 애제자아난존자의 기억력이 부러워진다. 더듬더듬 책의 내용을 대충 떠올려 보면, 어느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한 사람은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클래식을 들으며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하고, 늘 고급차에 몸을 의지하며 별 어려움 없이 살았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남편의 외도와 부도, 바람 잘 날 없는 애물단지 자식들, 거기다 자신의 병고까지 겹쳐 지지리 궁상을 떨며 천신만고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후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때 전자의 부유한 그녀는 상주인 조카딸을 붙잡고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너희 엄만 사는 것 같이 살았잖아, 행복했잖아”라고 두 여인의 일생. 누가 더 행복했을까? 돈이 행복의 필수조건이 아님은 전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럼 순간 순간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 온 파란 만장한 인생이 행복이란 말인가? 부자인 그녀는 늘 삶에 좌충 우돌하며 미운정으로 티격태격하는 그녀가 부러웠을 것이고, 그러한 삶을 그녀의 행복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반면 삶이 너무나도 역동적이었던 후자의 여인은 경제적인 여건을 행복의 요소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행복’이 참으로 주관적인 것에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두 여인 중 누가 더 행복한 삶이었는지 결론지을 수 없는 것처럼.

가끔은‘행복맵(map)’이란 게 있어 지름길을 달려 행복이란 곳으로 인도해 줬으면 싶을 때도 있다. 아마‘행복인로왕보살’이 있다면 행복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앞 다투어 주불로 모실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대한민국 지도처럼 그렇게 정확하게 로드맵 되어 있지 않다.‘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아 하루 종일 헤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천인 세잎클로버가 행복임을 알고 저 토끼풀 밭을 행복 투성이로 보는 이가 있는 것처럼.

행복이란 놈은 확정금리의 은행예금통장 잔고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의 환경에 노출된 변액 펀드다. 순간의‘깨어 있음’‘알아차림’에 따라 행복의 질량도 달라진다. 먹을 땐 먹는 일에, 잠잘땐 자는 일에, 기도할 땐 기도에…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얼마나 삼매에 들 수 있느냐가 행복의 조건이다.

불행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영원한 지금, 이‘찰나’엔 그리 큰 고통이 없다. 그래서 사바 세계를 살 만한 세상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순간의 알아차림에 있을 뿐, 절대적 행복도 없고 정답은 더 더욱 없다.

자! 이제부터 행복의 출발점인 나를 돌아보자. 물속에서 물이 보이지 않듯 행복해서 자신의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감복 행’을 하고 있진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