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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약속을 지키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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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한명우 2008년 07월 317호
\"우리 가족이 약속을 지키게 해주세요\"
250글자 우리집 가훈이 태어나기까지 - 한명우


“아빠, 우리집 가훈이 뭐야?”

얼마 전 초등학교3학년인 작은 녀석이 불쑥 물었다. 학교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정직하게 살자’로 하자고 했더니, 옆에 있던 큰 녀석(초등학교 6년)이“아빠, 그러지 말고 가족회의를 열어서 가훈을 정해보는 게 어때?”하며 의견을 내놓더니, 자료를 준비하겠다며 인터넷에서 멋진(?) 가훈을 10여 가지를 스크랩해 가지고 와서는 그것들을 참고해서 가훈을 정하자고 했다. 사실 우리 집 가훈은‘정직하게 살자’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내 가훈’이지‘우리 집 가훈’은 아니었다. 혼자서 일방적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넷이서 둘러앉아 가족회의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았다. 난 모든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뜻의‘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아내는‘행복하게 살자’를 내세웠고, 작은 녀석은‘정직하게 살자’가 쉽고 외우기 좋다며 그대로 하자고 했다. 큰 녀석은“왜 아빠가 요전에 나한데 말했잖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라고”하면서‘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되자’가 좋겠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하지만 결론은 엉뚱하게도 1년전의 기억속에서 났다.

2007년 2월,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좋아했다. 경제적인 걱정보다는 남편이 집안일을 해주고 아빠가 자신들을 돌봐주는 것이 더 좋았던 모양이다. 아침 저녁을 같이 먹고, 함께 뒹굴며 웃음을 나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작은 녀석은 코알라처럼 내 등에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세상에서 아빠가 최고로 좋다”고 말하던 녀석이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회사일과 집안일로 녹초가 돼TV를 켜놓은 채 소파에서 새우잠이 든 아내, 아침을 거른 채 전날 내던져 놓았던 책가방을 그대로 메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 일 핑계 회식 핑계로 밤늦게 돌아와서는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기를 10년 넘게 반복해 온 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이렇듯 늘 힘겹다. 게다가 월급 들어오기가 무섭게 잔고 숫자가 0으로 변해버리는 통장을 바라보는 일도 쉽지 않다. 잠든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미안함과 막막함이 교차하고 초라한 삶의 그늘은 어둠보다도 더 짙은 색깔로 어깨를 짓누른다.

가족을 잊고 사는, 아니 잊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살이는 조금 비약하자면 전쟁과도 같다.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지만 세상을 살아내려면 가족은 그저 함께 기거하는 동거인쯤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더듬기 쉽지 않은 생활속에서 가족을 되찾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상에서‘실직’(나 스스로가 그만둔 것이지만 어쨌든 직장을 잃긴 잃은 것이니까)은 오히려 기회였다. 당분간은 새 직장을 구하기보다는 살림도 제대로 배우고, 아이들도 제대로 키워보고 싶었다. 8개월의‘불량 주부’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고, 난 가족을‘재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매주 한차례의 가족회의는 서로에 대한 불만과 필요한 것을 알게 했고, 정기적인 나들이는 이전의 나들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여유를 갖게 해주었다. 서툰 게 많은 초보살림이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돕는 일이 많아져서인지‘남편’으로서‘아빠’로서의 위상(?)은 최고였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우리 가족을 더 단단히 묶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들어낸 것이 바로‘우리 가족의 약속’이다.

■어려울 때 힘이 될 수 있는 가족이 되게 해주세요, 때로는 미울 때도, 이해하기 어려울때도 있겠지만 그럴때마다 우리가족은 하나라는 다짐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서로 칭찬해주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가족이 되게 해주세요. 때로는 화도 나고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를 사랑으로 바라보겠다는 우리 가족의 약속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때로는 귀찮고 게을러지기도 하겠지만 그럴때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우리 가족의 약속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때로는 나 먼저 생각하고 도리에 어긋난 행동도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우리 가족의 약속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아내가 언젠가부터 잊고 있던‘우리 가족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이것을 가훈으로 삼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도 흔쾌히 동의했다.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우리 가족의 약속’을 프린트해서 다시 벽에 붙였다. 1년전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우리 집 가훈은 이렇게 꽤 길다. 작은 녀석은 학교에서 가훈을‘가족끼리 한 약속 잘 지키기’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우리 집 가훈에는 일체유심조도, 자신을 이기는 방법도, 정직하고 행복하게살자는 다짐도 모두 들어 있다. 가족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셈이다.

가족은 나 자신보다 더 나를 더 걱정해주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견딜 수 있게 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다. 기쁨의 눈물과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내 가족에게 거칠고 투박할지는 모르지만 천년을 써도 낡지 않는 그런 사랑을 주고 싶다. 때로는 이런 다짐을 잊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가훈에서 약속한 대로 가족의 뜻을 기억하려 노력할 것이다. 내 아내로 살아줘서 고맙고, 아빠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오늘 저녁에는 꼭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