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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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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담善雨情談 - 김선우 2008년 07월 317호
비로자나 부처님 비로자나 부처님

칠월이 오면 꿈이 많아집니다. 충만한 자비로 사랑하라 속삭이며 진흙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들이 긴 하루의 꿈속으로 자주 찾아옵니다. 보고 있는데도 당신이 그리워 눈 감아버린 날이 있었다고 말해도 될까요.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내 곁에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하면 당신은 웃을까요. 안 보이는 곳에서 당신이 웃어주어서 우리 마음속 깊은 진흙밭이 따뜻합니다.

어느 날은 연꽃의 자태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수인手印인 지권인을 떠올립니다. 진흙 속에 묻힌 뿌리와 수면 위의 꽃을 연결하는 푸른 외줄기. 연의 푸른 꽃대궁을 보고 있으면 감아쥔 두 손을 연결하는 길고 푸른 손가락이 겹쳐 떠오릅니다. 뿌리와 꽃의 통로인 유연하고 강한 꽃줄기. 하여 비로자나 부처님이 보이시는 수인의 핵심이 뿌리나 꽃에 있는것이 아니라 이둘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통로에 있음을 문득압니다. 뿌리와 꽃이 실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너와 나, 차안과 피안, 물속과 물밖이 둘이 아니라는 듯 바람에 연줄기 흔들리는 것 봅니다. 불이不二…,불이不二…풍경소리 퍼집니다.

오래 전부터 비로자나 부처님이 좋았습니다. 신비한 수수께끼 같은 부처님의 수인이 문학적 감성을 자극한 측면도있을 테고요. 비로자나… 발음할 때 물 흐르듯 마음에 감겨오는 환한 빛의 느낌도 사모합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한 비로자나를 원문에 가깝게 쓰면 vairocana가 된다고 하는데요. 산스크리트어나 한자어 발음보다 한글화한 이 발음이 저는 가장 좋습니다. 비로자나…태양과 달의 빛. 비로자나…근원의 그림자들.

기억하는 아름다운 비로자나 부처님 중에 도피안사 부처님이 있습니다. 빈약한 듯 가느다란 체구에 청년의 모습이 서린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같은 이름을 떠오르게 하는 섬세한 미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부드러운 파격이랄까요. 일몰 무렵 저는 오랫동안 법당에 앉아 아름다운 철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불상이 주는 순수한 미감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아름다운 조우였어요. 한동안 지인들에게 도피안사 비로자나 부처님을 꼭 뵈라고 말해주었지요. 그런데 몇 년 후 한 벗이 제게 말하길, 어렵게 도피안사를 찾아가 부처님을 뵈었지만 아주 슬픈 부처님만 계시더라는 거예요. 이 친구가 찍어온 사진을 보고 저는 엉엉 울어버리고 싶을 만큼 참혹한 심정이 되었답니다. 철불에 개금을 하여 너무도 어설픈 금박 부처님이 되어버린 거예요. 다행히 도피안사 비로자나 부처님은 몇 년 전, 금옷을 벗겨내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개금불사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동안 참 많은 불상들을 보았지만 금불에서 종교적 예우 이외의 미적 감흥을 받은 적이 별로 없음을 고백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웠던 불상들은 목불, 철불, 청동불, 석불을 막론하고 주재료 본래의 질감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모하는 해인사의 쌍둥이 비로자나 부처님들. 이분들께도 어쩌면 개금이 아닌 다른 방식의 보존법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골몰히 생각합니다. 다행히 해인사의 비로자나 부처님들은 개금 후에도 비교적 온화한 품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목조로 조성된 부처님의 여운과 여백을 십분 살리기엔 저 찬란한 금빛은 너무도 현세 중심적, 인간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통상적인 개금 외엔 없는것일까요.
불이不二…불이不二… 쌍둥이 비로자나 부처님들은 여전히 미소로 굽어보시는데, 한낱 범부인 저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으니 이 마음을 어쩔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