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보양식 / 박재은
과로 탓인지 연일 눈이 뻑뻑하고 기운이 없었다. 비타민 부족일 것이라며 보는 사람들마다 약국이나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러다 외국 출장을 바로 떠나게 되니 의료보험증이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 병원은 가기 어렵고, 약국에 비치된 비타민은 종류도 많고 값도 비싸 선뜻 사게 되지를 않는 거였다. 약국을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골목 장터에서 과일을 조금 살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철이 거의 끝났지만, 프랑스는 아직 딸기며 산딸기, 각 종 붉은 열매들이 가득한 것이었다. 보기만 해도 혀뿌리에 침이 삭 고이는 것이, 내 몸에 생기를 줄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딸기와 산딸기, 앵두를 푸짐하게 섞어 담고 설탕을 툭툭 뿌려 먹는 맛은 예술이었다.
거기에 갓 딴 싱싱한 민트 잎을 쭉쭉 찢어 더하니 과일이 더 신선하게 느껴지면서 기분이 맑아졌다. 딸기 한 움큼, 산딸기 한 움큼을 천천히 음미하며 혼자 다 먹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졸린 기운이 싹 가시면서 의욕이 솟고, 기분이 개운해지는 것이었다. 와, 싱싱한 과일 한 접시 먹었을 뿐인데 몇 주간 처져 있던 기력이 이렇게 좋아지나! 조상들이 예로부터 왜‘약선 음식’을 공부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 천연 보양식
보통 ‘사찰음식’ 혹은 ‘채식’이라하면, 소화가 가볍고 칼로리 낮은 음식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혹자는 “풀만 먹고 무슨 힘이나?“라고 빈정대며, 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적합지 않은 식단이라 한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 꼭 지글지글 불에 구운 고기 덩어리를 먹어야, 물에 푹 삶은 고기 물을 먹어야만 힘이 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는 토종 식물이 아닌지라 낯설게 들리지만, 파프리카처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슬슬 재배가 시작되고 있으니 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필리핀 산은 담배처럼 가늘고 길이도 짧은 편. 아스파라거스 중 최고로 치는 프랑스산은 연중 재배기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전 세계의 미식가들이 쟁탈전을 벌이는 식재료다. 그 굵기만 해도 100원짜리 동전 정도, 튼튼한 대가 쭉 뻗어있어 보기만 해도 싱싱하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아스파라거스는 필리핀 산보다는 굵고, 아직 프랑스산보다는 가늘다. 그래도 나름대로 맛이 좋다. 아스파라거스는 살짝 데치거나 다진 마늘과 함께 기름에 살짝 볶아서 소금 간만으로 먹으면 제 맛. 중국 사람들은 여기에 간장과 설탕을 더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여기에 버터를 더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기에 올리브기름과 다진 허브를 더한다. 아스파라거스 줄기마다 영양이 들어 차있어서 채소지만, 서양에서는 ‘스태미나’식으로 손꼽힌다.
기력이 없으면 소화 기능도 떨어지게 되어 있다. 몸의 순환이 전반적으로 느려지는데, 소화 기관도 평소보다 약하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얘기. 그런데 대게는 기운이 없다고 고칼로리 보양식을 먹는다. 몸이 건강할 때에도 소화가 오래 걸리는 보양식을, 예컨대 보양 탕이나 각종 부위의 육 고기, 몸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에서 들이 붓는 격이다. 이럴 때 나는 ‘버섯전골’을 권한다. 다시마, 배추, 양파, 대파, 버섯 기둥 등을 모아 끓여 육수를 내고, 그 육수를 기본으로 갖은 야채와 버섯을 넣고 끓여내면 된다. 느타리, 표고, 새 송이, 팽이 등 몸을 젊게 만든다는 버섯을 잔뜩, 여기에 국물 맛을 시원하게 해주는 배춧잎을 쭉쭉 찢어 더하고, 당면이나 쑥갓을 넣어 간장으로 국물 간을 맞춘다. 기타 천연 조미료를 더 넣어 간을 딱 맞추고 나면 자작하게 끓여가면서 보양하기 좋은 메뉴가 된다. 따끈한 국물과 갖은 버섯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나면, 땀도 나고 포만감도 있으되 소화는 더디지 않게 된다.
힘이 떨어지면 찾아먹는 또 하나의 마로 솥 밥. 밤, 은행, 대추, 표고버섯만 잔뜩 넣고 지은 밥 한 그릇이면 식욕과 기력을 함께 되찾고, 찹쌀을 조금 섞어 콩이나 팥을 더하면 별미다. 양념간장을 조금씩 더하면서 맨 김에 싸먹으면, 혹은 맨 김을 구워서 부순 김 가루를 솔솔 뿌려 먹으면 밥 한 그릇이 모자라다.
죽도 좋은 보양식이다. 절집에서 가끔 얻어먹는 흑임자죽이나 들깨죽이 그 예다. 이른 아침, 108배를 올리고 들깨죽 한 그릇을 빈속에 흘리면 배 속이 뜨끈해지면서 원기가 난다. ‘쌀’자체가 기력을 회복시키는 식재료이니, 온 몸이 오슬거리며 컨디션이 안 좋을 때에는 흰 쌀 죽만 끓여 먹어도 몸 상태가 호전된다.
이 밖에 지친 몸에는 비타민을 주는 과일을, 소화가 더딜 때에는 양배추를 다져서 샐러드로, 식욕을 잃었을 때에는 오미자 담근 물을 한 컵만, 몸이 찰 때는 생강 한 쪽에 대추를 한 줌 집어 달인 차를 꿀 타서 마신다. 먹는 것만 잘 가려도 약국 갈 일이 줄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