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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학연구소장 현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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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8년 06월 316호
불학연구소장 현종 스님 불학연구소장 현종 스님

아침엔 명주바람이 슬쩍 부는가 싶더니 나무들이 이슬을 털자 바람 한 점 없이 볕이 바짝 짱짱해졌다. 조계사에 들어서니 여태 매달린 초파일 연등도 금세 그 빛에 베일듯 아슬아슬하다.

조계종교육원으로 들어가 연구소장실에 들어서니 빈의 자위에도 냉철하고 빳빳한, 군살 하나 없는 햇살이 앉아 있다. 온화한 듯 그러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듯한, 쌓여 있는 책무더기이지만 그 안에도 질서가 있는 듯 한 방 안의 분위기. 스님이 들어와 앉으니 빈 의자 위에서 짱짱하게 버티던 햇살도 냉큼 달아나 버린다. 나는 금방 부러질 삭정이처럼 놓여 스님이 뿜어내는 칼 같은 햇무리에 눈이 부시다.

“내가 다섯 살 무렵부터 어머니 손잡고 다니던 나주 다보사에 우화雨華스님이라고 계셨어. 큰 도인이셨지. 그분의 삶은 흘러가는 물 같았어.”
어려서 보았던 그 큰스님은 현종 스님의 눈엔 별천지의 도인이었다. 그것이 금생에 스님이 절집과 맺은 친밀하고 귀한 첫 인연이었다. 고향이 나주인 스님은 신심이 깊은 어머니 손을 잡고 중학교 때까지 다녔던 다보사에 대한 기억이 많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절집과 친했다.
“전생, 그 전생… 저 오래된 전생에 수행을 좀 깊이 해왔던 것 같아. 중간에 길을 좀 잘못 들었을까? 그래서인지 내가 업이 많은것 같아. 살면서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겼거든.”

강인한 듯 보이는 스님은 몸이 아프다며 어깨를 주무른다. 그러나 저 어깨에도 힘이 확 들어가있던 젊은 시절이 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공사판에서 두 달 동안 노동일을 했다. 그 일을 하고 받은 돈으로 대학 예비고사와 4급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책을 샀다. 대학 전 학년 장학생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책을 들고 그저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다보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달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출가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75년 봄이었는데, 절에 있다 보니 절집 안 소식도 듣고 이런저런 스님들 다녀가는 모습도 봤지. 말 그대로 운수행각자들이야. 그때 행원스님이 엮은 <오도의 길>이라는 조사어록하고 동국대에서 출판한 <불교 성전>이란 책을 읽었어. 그러면서 이런 길도 있구나, 이쪽길로 살아도 되겠다 싶더라고.”

다보사는 분위기가 깨끗하고 온화했는데, 우화 스님의 삶이 그러했다. 스님의 하심이 절집을 편안하게 했다. 현종 스님은 도인의 모습을 봤다. 새벽 2시면 일어나 참선을 하고 계시는 모습, 혼자 죽비를 치고 대중이 없으면 혼자 발우 공양을 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그 많은 나이에, 절 이쪽 마당에서 만난 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잠시 후 저쪽 마당에서 또 마주치면 또 다시 먼저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까지도. 그 도인의 모습이 현종스님의 마음을 이끌었던게 아니었을까. 말씀 한마디 없이.

스님은 집을 나와 걸어 걸어, 그러다가 도둑 열차도 타고 버스도 얻어 타고 결국 해인사에 닿았다. 그곳에서 은사스님인 세민 스님을 만났다. 그렇게 해인사에서 1년 동안 행자로 있다가 해인사에서 나와서는 현재 총무원장인지관스님을1년동안시봉했다. 그러고는 동국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을 마치고 몇 년이 지났을 때지. 우리 스님이 나한테 일본에 가래. 싫다는데도 거듭 세 번을 말씀하셨어. 그래도 싫다하니 그럼 구경삼아 한 번 다녀와 보래. 그래서 갔지.”

동경에 도착하니 놀라웠다. 89년도, 우리나라는 헐레벌떡 뛰어오르면서 밀치고 넘어지는 형국인데 일본에 가니 고요한 강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살기만 해도 수행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유식학으로 유명한 용곡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일본에 8년을 살았다.

일본에서 돌아와서는 진주 두방사 주지를 하면서 약4년 넘게 동대 강의를 했다. 그러다가 은사스님의 청에 해인사에서 재무를 살았다. 그러고는 지금의 불학연구소장자리에 앉았다.

“성격상으로는 선을 하고 싶었지. 그런데 교리를 하나로 꿰뚫어서 정리하고 싶은 원도 있었어. 원시 불교부터 화엄사상까지. 내가 야무진 사람 같았으면 교리 정리를 하고 선의 경지에 들어가기도 했을 텐데, 시원찮아서 이론정리도 제대로 못했고 참선도 깊이 하지 못하네.”

스님이 좋아하는 말은《대승기신론》에 나오는‘능관무념자 즉위향불지고能觀無念者卽爲向佛智故’다. 그래서 무념을 관觀하는 것이 공부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수행을 하는 것은 무념을 관觀하는 것으로 통해진다고 본다.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했다.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이라 했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무념을 관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묘유를 비춰보는게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삶이 습관과 관념의 놀음이야. 그 안에는‘나’라는 게 먼저 있어. 내 생각, 내 기분, 내 재산, 내 자식. 그러니 저사람과 안맞으면 부딪혀서 화내고 싸우는 거지. 그러니 무념을 관觀하는 공부를 해야하는거지.”

1찰나에 900 생멸을 한다고 하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나’를 비워버리려 해도 그토록 강하고 세밀하니 우리는‘나’라는 실체 때문에 몸부림친다. 오늘도 저 하늘엔 허망한 생각과도 같은 구름들이 생멸한다.
스님은 현재 주지로 있는 서울 수유동 삼각산 아래 있는 삼성암에서 매주 철야기도 중이다. 삼성암은 독성기도 도량이라 나반존자의 명호를 부르는데,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참회도 하고 대비주와 정근을 하고 공양을 올리며 회향하고 예불한다. 현종 스님의 양쪽 눈썹의 가운데 눈썹 하나씩이 유독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해 깨우친 나반존자의 흰눈썹처럼 희다. 혼자 산에 많이 살았다더니 그래서 저리 흰 빛인가.

“공부를 하다보면 믿음이 가는 단계가 있는 것 같아. 무념을 관觀하려고 계속 가다보면, 아무리 깊이 박힌 관념이라도 뿌리뽑히게 돼 있구나, 온전한 본마음 상태가 나타나는 게 분명하구나, 그 믿음이 확실하게 점점 강해지지. 믿음을 성취하는거지.”
십우도에 나오는 흰 소의 꼬리쯤을 보았다는 얘기인가. 그러니 이젠 여타의 말도 필요 없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믿음 위에 발을 확확 디디며간다는 말씀이신가.
스님의 원력은 불교에 새 옷을 입히는 것이다. 스님이 생각하는 새 옷은, 명상과 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다. 이 세상 모든 문제 해결의 근본에 명상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고요히 앉아서 그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명상을 통해 연기법을 터득해 그 거울에 세상을 비춰 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현 시대가 급변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어. 그러니 뒤돌아보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때, 불교가 작용을 해줘야한다고 생각해.”

지금도 많은 사찰에서 행하고 있지만 더 내실화, 체계화되고 보편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스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명상대학과 명상고등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사회에 나와 불교 명상·상담센터에서 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절에서 후원을 받고 재정을 투명하게 해서 그러한 공간과 시스템을 마련하고 명상대학을 나온 이들이 그곳에서 성실하게 명상, 상담에 곁들여 복지까지 한다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삶을 봉사하는 데 다한다면 그들의 가족들의 생계까지 보장을 해줄 수 있게 만들 생각이다. 휴식년 제도도 보장하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줄 생각이다. 명상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온전히 편안하게 자기의 모든 힘들을 수행하고 세상을 위해 베풀 수 있게 하고 자함이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무소유 의식이 형성되지 않겠어요? 뜻이 있으면 되리라고 생각해.
간절한 원력을 굳게 가지고 가면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참선은 너무 차원이 높아서 일반인들에게 바로 주입시키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 보편화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늘 모색한다.
불학연구소에서는 참선을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하기 위해서 참선하는 법이나 화두를 드는 법 등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수행 지침서인 <간화선 입문> <절수행 입문> <염불수행 입문> 책들을 발간했다. 한 달 후에는 <간경수행 입문>이 발간될 계획이다. 신도들이 실제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침서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학연구소에서는 스님들이 강원에서 배우는 교재를 편찬한다. 금강경, 반야심경 통일본을 만들어 번역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또 지난해부터는 선원수좌회와 함께 조계종 청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그리고 간화선 대중화 사업도 하는 중이다. 간화선을 보급해서 일반인들이 실천할 수 있게 하고 그로 인해 혜택을 입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조계종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서 조계종사와 불교사를 연구하는 불교사연구위원회를 두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일들을 가름하고 마무리짓느라 힘겹지 않을까 싶은데, 현종 스님은 연구원들과 함께 하며 긍지를 느낄 수 있어 좋단다. 금생에 스님으로 살 수 있어 좋단다.

“내가 스님 생활을 제대로 못한 것을 바보스럽게 여겨 참회하지만, 이길이 근본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해. 내게 확실한 길이지.”

말을 너무 많이 했다며 스님은 서슴없이 자리를 갈무리한다. 그리고 스님은 해탈로 가는 길이라는 믿음 위에 성큼성큼 발을 디딘다. 한걸음과 한걸음 사이가 투명한 얼음처럼 차고 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