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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바다,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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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서도東話西道 - 이겸 2008년 06월 316호
동화서도 웃음, 바다, 섬 / 이겸


손에 잡히는 침대 시트의 촉감이 좋다. 따뜻함과 상쾌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다닌다. 창문 틈새로 스민 맑은 공기가 바다가 지척임을 알리려는지 바다의 향을 실어 나른다. 뒤뜰로 나가니, 닥스훈트 두 마리가 돌아다닌다. 새끼와 어미라는데, 어떤 놈이 큰 놈이고, 어린 놈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끈에다 나뭇잎을 묶어서는 닥스훈트 한 놈을 잡아 꼬리에 달아주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막 웃으며 나뭇잎을 단 녀석이 어미라고 일러준다. 꼬리를 흔들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니 한동안 뒤뜰에서 웃음이 넘쳐났다. 웃음이 잦아들어 미소가 남아 있는 무렵. 학교를 가려는지 한 꼬마가 주인아저씨에게 인사
를 한다. 녀석은 손자였는데, 할아버지를 쏙 빼다 박았다. 그때 마침 꼬마의 아버지가 나왔는데, 나의 예상대로 세 사람의 얼굴이 정말 판박이, 붕어빵이다. 나는 조금전‘닥스훈트 사건’이 생각나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그러면서 속으론‘나뭇잎을 다시 찾아봐야 하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이어 갔다. 다정한 모습의 삼부자. 아비의 용모와 성격이 자식에게 이어지고, 다시 그 다음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그렇다면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자식의 몸 안엔 그의 부모가 살아 있는 것일 게다.‘ 씨’는 새로운 생명이며, 동시에 유전자를 공유하는‘가계도家系圖’의 근원이다. 그래서‘a family tree’라고 하나 보다.
아침을 한바탕 웃음으로 시작한다.

매일같이 바다를 만나고, 바다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심정과 가끔씩 바다를 찾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나는 이곳‘플라야 히롱Playa Giron’에서 제주도를 떠올린다. 그곳으로 이사를 가고자 계획을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먹고살 것을 걱정해 주었고, 그 다음으론 바다가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할 것이냐고 물었었다.
“ 바다가 보이면 좋잖아? 탁 트인 전망에 파도 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시원하고… 이왕이면 그런 곳을 구해. 대문을 열고 모래사장을 밟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참으로 근사한 일 아닌가? 정원처럼 바다가 붙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상상 속의 일이다.
현실은 그와 다르다. 바다와 가까운 집들과 그곳에 사는 이들은 습기와 염분을 견뎌내야 한다.
여름날의 거센 바람과 파도와도 싸워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바다 가까이 집을 얻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삶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눅눅해진 책을 읽는 기분 같은 것이다.‘ 플라야히롱Playa Giron’의 해안은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속에서 탄성이 나올 지경이다. 해안과 붙어 있는 집들엔 대부분 가난한 어부들이 산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해안을 굽어보는 언덕엔 값나가는 집들이 들어서 있다. 어부의 집과는 대조적이다. 어부의 물고기는 그이들의 식탁에도 오를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다. 삶이란 비정한 바다와 같고, 태풍을 몰고 오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름다운 빛으로 반짝이는 물결을 보여주기도 한다. 난 바다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망망대해는 원치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바라보는 슬픈 일이다. 기다림은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하여 가까운 곳에 섬이 보이는 다도해 같은 곳이 좋다. 이제는 외딴곳에서 홀로 사는 것보단 마을 안에서 살고 싶다. 혼자하는 여행은 자유롭고도 외롭다.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은 내게‘사람’은 언제나 반가움의 대상이다.
지금처럼 먼 바다를 바라볼 때도 사람을 떠올린다. ‘섬’ 같은 사람들, ‘물새’같은 사람들, \'바위’같은 사람들, ‘파도’같이성내는 사람들이 모두 그립다. 서울의 사람들이 그립고, 제주도의 사람들이 그립고, 해남과 악양, 담양과 영암에 있는 이들이 생각난다. 영천 산속에 있는 이도 보고 싶다. 오늘 따라 바다는 그리움을 불러들인다. 이렇게 좋은 파도와 따뜻하고 시원한 바다향이 있으니, 내안의 섬이 잘 있는지 향해가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