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내려와서오전 늦은 시간에 사무실에 오면 제일 먼저 밀대로 바닥청소를 한다. 그리고 간단히 경 읽기를 끝낸 후 음악을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신다. 이때 바닥에 묻은 물기가 서서히 말라들어 가는 것을 보면 신비스럽기도 하고 어떤 삶의 실존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많게 된다.
되돌아보면 소소한 뉘우침과 보람된 일이 있지만 만인이 공감할 만한 그런 대단한 이야깃거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나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난 이제 삶의 긴 여정에서산을 내려온 처지이다. 지금 그 산길을 쳐다보았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에서 흩어져 나온 부스러기 같은 이야기가 혹시 뒷 사람들이 경계를 삼을 만한 하나의 예가 될까 싶어 적어보기로 한다.
나는 겉보기보다 상당히 조급한 성격이고 독선적인 데가 있다. 말을 빙 돌려서 비유적으로 못하고 직선적으로 하며 성을 잘 낸다. 회의에 가면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한다. 그리고 책임을 맡으면 너무 철두철미하여 모두 나와 같이 일하기를 꺼린다. 또, 속으로는 어떻게 도와줄까를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화를 내는 외강내유外剛內柔형이다. 그래서 손해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대학에 몸담고 있으니 아무도 나에게 잘못을 충고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만족하고 내 허물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한번은 모임에 갔더니 저녁 술자리에서“정 선생 아주 무섭다면서…”그런다. 또 한 사람은“이제 그만 학생들을 놓아주세요”한다. 또 언젠가 찾아온 졸업생은 이야기를 하던 중 느닷없이“교수님 좀 못됐지요”했다. 당황한 나는“그래”하고 엉겁결에 대답했다. 이어가는 말을 들어보니 나의 본심과는 달리 겉으로 보기에 매우 까다로워 재학 때 어려웠다는 표현을 잘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상당한 쇼크를 받아서 아직도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예가 있다. 나의 회갑기념으로 <평상심>이란 수상집을 출판하는데, 그때 별도로 내 연구실 출신들이 회고하는 글을 모아 책을 만들기로 했다. 책 제목은 <내 왔데이>였다. 이는 내가 아침에 연구실에 들어서면서‘내가 왔다’고 하는 사투리 말이다. 실린 원고는 모두 나와의 좋았던 관계와 즐거운 추억담이었는데, 내 연구실원이 아닌 한 사람이 충격적인 글을 보내왔다.
내용은 학생들이 졸업논문 지도교수를 신청할 때 대부분 정 교수 전공으로만 몰려서 자기는 다른 교수 전공을 택하여 갔는데 그때부터 내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냉정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교수님 생각납니까?’라며 직접 묻는 형식을 취했다. 물론 나는 기억이 없지만 그 졸업생이 거짓을 말할 리도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떻든 내가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한 원인 제공자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머리가 띵하고 등에 식은땀이 났다.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재직할 때는‘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야 학생들을 올바로 지도할 수 있는데 앞으로 걱정이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어리석게도 그때는 상당히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밖에 나오니 비판이 심하다
우리 집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인 것 같은데 한번은 저녁 밥상머리에서 큰아이가 제 엄마에게“아버지 국에 고기 넣지 마세요. 자꾸 우리들을 머라카는데(나무란다는 사투리)…”라고 하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웃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동료 교수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나의 퇴임식에서 이 일화를 소개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하여 사실관으로 사람을 대했다. 내가 비교적 엄하게 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 배운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경쟁에 이겨야 한다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추천한 사람이 취직을 하면 사장이 신뢰를 한다. 그래서 내가 부탁한다고 하면 무조건 입사를 시켜준 예가 아주 많았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의 가치관에 취한 나머지 나의 성격상 잘못은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정말 순진하게 오직 좋은 결과만을 좇았다. 그 때문에 일부 학생들에게는 경원警遠의 대상이었고 자식과는 잔정이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 확실한 것은 생물의 세계는 경쟁의 무대라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은 매우 엄격하다. 그 외에 모든 것은 잔인하게 도태淘汰된다. 이 도태는 영어로 선발(selection)이란 단어로 표현된다. 이 말은 자연에 선택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뜻이다.
나는 좀 실없는 사람이라서 운전을 할 때 앞에 가는 차에 무슨 이상이 있으면 꼭 알려주도록 애쓴다. 특히 차의 미등이나 방향등 같은 것이 들어오지 않으면 일부러 따라가서 말해준다. 그런데 한번은 회식에 갔다가 술을 먹게 되어 대리운전을 부탁하면서 내가 차 후진을 도와주는데 아! 내 차의 한쪽 미등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순간적으로 내가 그간 다른 사람의 차에 대해서 주의를 당부한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잘못은 살피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만 보았구나’하는 생각이 불현된다.
불이 들어오지 않은 미등은 순간 나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까 하는 자괴감을 느꼈다.
이 모든 과오에 대한 대가는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나도 남에게 베푼 얼마간의 선행이 있어 이 업보를 다만 얼마만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을 보다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랑은 만물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인데.□
정희돈 님은 일본 큐슈대학교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연대학장, 한국원예학회장, 법륜불자교 수회장, 전국 불자교수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 대구시 문화상, 과학기술우수논문상, 한국원예학회 학술상 등을 수상했고, 수상집(평상 심), (고지식과 외골수의 대회) 등 다수가 있다. 현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며 경북시설원예연구소 소장이다.
<<법보시 하셨습니다(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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