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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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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8년 05월 315호
얼갈이 부침 봄의 기약
박재은

얼갈이배추는 아직 속이 차오르지 않은 채로 뽑아 단으로 묶어 판다.
속이 꽉 들어차지 않으면서 옆으로 퍼진 모양의 봄동 배추랑 얼갈이 배추랑 다 맛있다. 얼갈이는 얼었다 녹았다하며 큰다 하여 얼갈이라 하고, 또 겨우내 언 땅을 갈아엎어 기른다하여 얼갈이라 한다고, 그 설이 분분하다. 얼갈이배추는 사계절 내내 팔지만, 특히 봄에 맛있다. 물김치를
담그면 소면을 삶아 말아 먹거나, 맨밥에 곁들일 찬이 부족할 때에 반갑다. 된장에 무치거나, 아예 토장국으로 끓여도 비타민 섭취에 아주 좋다.
이도저도 귀찮을 땐 부침가루 술술 물에 개어 얼갈이 잎에 대충 묻혀서 부쳐버림 간단하다. 간장에 톡 찍어 입에 넣으면 따뜻하고 여린 배추 맛이 봄을 알린다.

봄이 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쑥.
쑥은 뜯는 재미로부터 그 맛이 시작된다. 인적이 닿는 곳이면 대한민국 어디나 수월히 자라주는 쑥은 영양 넘치는 약초다. 장복하면 몸의 잔병이 서서히 옅어진다. 고마운 마음으로 쑥을 뜯을 때에는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 소쿠리가 금방 채워지면 갖고 들어와 잘 다듬어 씻는다. 일부는 쪄서 그늘에 말렸다 쓰고, 일부는 싱싱한 채로 요리에 이용한다. 쑥 한 줌으로 무엇을 만들든, 그 향기가 넓게 퍼지면서 행복한 마음이 든다. ‘다시 봄이 와 주었구나!’하는 새삼스러운 감상에 젖는다.

아, 딸기. 봄에는 딸기가 있다. 얼마 전 지인이 논산에 딸기 따러 다녀왔다며 애써 들고 온 딸기를 한 상자나 나눠주었다. 화학 비료를 안 쓰고 길렀다는 딸기는 씻어서 몇 알담아 식탁에 잠시 두기만 했는데도 온 집에 딸기 향이 진동을 했다. 이런 화려한 것 같으니라고. 착한 얼갈이나 쌉쌀한 쑥에 비하면 딸기가 주는 봄맛은 총천연색이다. 지 생긴대로 맛이 난다. 물이 오른 딸기 맛
을 연중 즐기고 싶은 마음에 잼을 만든다. 잼을 다 먹을 때쯤 나는 가을을 즐기고 있겠지. 잼 만들고 남은 딸기에는 소주를 부어 약술을 만들 수 있다. 딸기 주는 피로해소와 식욕증진에 용하다 하니, 한 여름 무더위에 입맛을 잃었을 때 한 모금씩 약으로 마시면 되겠다.

미나리를 사러 다녔다. 그런데 서울에는 대가 튼실한 봄 미나리를 찾기 힘들더라. 미나리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맛으로 반 단쯤 툭 꺾어 상에 올려 밥이랑 먹는다. 오동통한 미나리를 입에 물고 씹으면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미나리 줄기에서 즙이 쪽 딸려 나온다. 그 향기! 그 상쾌함! 생으로 씹은 미나리 즙이 목을 타고 체내로 흘러들어 묵은 때를 씻어주어야 비로서 내 몸은 새 계절이 왔음을 알게 된다. 미나리를 듬뿍 넣은 맑은 국을 마시면 저하된 기력이 살아난다. 땀을 비질거리며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정수리에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개운해진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봄철 먹을 거리가 있어 다행이다. 지구온난화로 점차 사라져가는 봄을 그나마 느낄 수 있어서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하늘은 공해로 막혀버리고,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미적지근해지고 있다. 우리는 늘‘생성과 소멸의 관계’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이었고, 그래서 절에 올 때마다 늘 가슴에 다시 새기고 돌아가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써 저것이생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 잡아함경》
태양이 있기에 비와 바람이 있고, 그래서 땅에 싹이 돋고, 그래서 쑥이며 얼갈이며 딸기가 자라고, 그래서 우리는 봄을 느끼며, 그렇게 촉촉해진 감성으로 인간은 시를 쓰는 것이다.
지구의 환경이 점점 나빠져 태양이 지고, 비바람이 멈추고, 땅이 싹을 틔우지 않고, 쑥이며 얼갈이가 사라지고, 우리는 봄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은 생각만으로도 악몽이다. 나부터라도 욕심 하나씩 더 버리고 살아야겠다. 다음에 태어나도 미나리 씹으며 봄놀이 하고 싶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