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저녁 노을에 고요히 피었으니두보杜甫의 일생이 행복했었다는 이야기는 전해 오지 않는다.
많은 시인의 풀잎 같은 감성이 그러하겠지만, 감정적 인행ㆍ불행의 문제가 아닌, 일상의 행복조차 그리 넉넉하지 않았었다는 말이다. 그의 감성은 매우 여렸고, 생활은 너무나 곤궁하였다. 그래서인지 두보의 시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찾을 수 없다.
물론 노래가 모두 호연지기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연과 현실, 자신의 처지 같은 것들을 유장悠長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으니 그의 시를 맞대면하면 대나무 우거진 강남의 진한 숲빛 속으로 한없이 끌려들어간다.
그의 감성은 깊이를 알 수 없어 그 만큼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 잡는 힘이 있다.
그가 노래한구절을 보면 오랜만에만난 벗을잡을 수 있는것은 그의대접과 술이 아니요, 오직 연꽃과 같이 피어난 저녁 노을뿐이었다. 마주한 벗의 잔이 비고, 술병에 술이 줄어가는데 따라 노심초사 하는 마음은 그지경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일이었다.
연꽃이 저녁 노을에 고요히 피었으니 수화만색정水花晩色靜
객 더 머물게하기에 충분하리라. 서족충엄류庶足充淹留
술잔이 빌까 벌써부터 걱정되어, 예공준중진預恐樽中盡
다시 일어나 그대 위해 마음 쓴다네. 갱기위군모更起爲君謀
‘여름날 이공이 방문하여(夏日李公見訪)’라는 오언시五言詩의 끝 구절이다. 오언시의 매력은 문자 속에 깃든 상황의 함축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인이 길게 머물렀던 성도成都는 언제나 꽃이 피는 곳이라 춘성春城이라 할 만큼 계절이 너그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힘들었고, 푸른 대나무 숲 아래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내가 오늘 대숲에서 키큰 대나무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를 듣는 듯한 그림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 그 그림의 제목이 바로‘두보시의 뜻을 기리며(杜甫詩意圖)’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나무 숲 사이사이엔 냇물이 흐르고 오솔길이 나 있는, 그곳에 나도 한켠 허락받아 숨을 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긴 두루마리 그림은 난간이 있는 평상에 붙여놓고 누워서 앉아서 감상하고픈 그림인데, 두보의 시가 어디 누워서 한가로이 읽을 만한 감성인가.
남송시대 화가 조규(趙葵, 1186-1266)란 이가 그린 그림이다. 기록을 보니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통했던 모양이지만 두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참 좋다. 사르락 사르락 거리는 댓잎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대나무사이에는 충분히 물기가 묻어 있어 밤새 비가 내렸는지, 아니면 아직도 안개가 내려 있는지 숲 가운데로 난 길목이 희뿌옇게 아득하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두보의 칠언시 한 구절 또 읽고 가야겠다.
맑은 위수동으로 흐르고 검문각 계곡 깊으니
청위동류검각심淸渭東流劍閣深
떠난 사람남은 사람 모두다소식없네.
거주피차무소식去住彼此無消息
인간은 본디 정이 있어 눈물이 가슴을 적시는데,
인생유정누첨억人生有情淚沾臆
강물과 강가에 핀 꽃이야 어찌 다하는 날 있으랴.
강수강화기종극江水江花豈終極
‘강가에서 슬퍼함(哀江頭)’의 몇 구절이다.
어느 사람이 강물 하나에 어떻게 저리도 애절함을 담을 수 있을까. 강물은 천년을 두고 그 자리를 흐르고 강물에 마음을 담아 흘려보낸이도 한 둘이 아닐것이지만 두보만큼이나 오가는 이를 그 강물에 붙들어 매 놓은 시인도 드물다 싶다. 시 한 구절 잡고 있는 내 귀에 산비둘기 꾸륵꾸륵 참으로 처량하다. 날씨도 수상하고, 마음도 봄날 같지않게 울적한데, 오늘 괜히 두보를 잡았는가 후회가 되었다. 이럴 땐 진묵 스님을 모셔야지 단칼에 기분을 풀어낼 수 있겠다 싶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로 하며 달은 촛불로 하고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동이로 하여 크게 취해서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하노라.
진묵 대사의 전기는 따로 없을 뿐 아니라 기타 문헌상에도 대사에 대한 언급이 있음을 찾아볼 수 없어 미상하다. 그러나 다만《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라는 소책자가 있어서 그의 편영을 전해주고 있다.
조선 명종 17년 임술(1562)에 전라도 만경현萬頃縣불거촌佛居村에서 태어나시고 출가하여 크게 선풍을 떨치셨으나 기록이 남아 있는 바가 없어 상세히 전하지는 않는다. 인조 11년계유(1633)에 입적入寂하실 때까지 대사께서 떨치신 선지禪旨는 현실의 답답함을 떨쳐버리고도 남는다. 하늘을 이불 삼고 산을 베개 삼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호연지기인가. 시성詩聖 두보의 애절함은 진묵 대사에게 맡겨야 하겠다.
현실에서 오늘도 역시 어제 내린 비 끝에 바람이 묻어와 하늘은 뿌옇고 창 밖 여린 잎들이 힘겹게 몸을 부비며 꽃분을 날리고 있다. 앞산 자락도 함께 일렁이는 것이 그동안 너무 재촉하여 숨차게 달려왔던 봄이 잠시 숨을 고른다.
마당에 나가 옷깃을 여미고 있노라니 곧 초파일을 당하여 피어날 모란들 꽃이 붉은 보자기를 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푸른 옷을 갈아 입은 앞산이 파란 풍선처럼 둥실 떠오르고 있으니 오늘은 산에 올라 붉은 등을 켜고 한 번 놀아 볼까 싶다.□